선우가 떠나고 나자, 뜨거웠던 여름도 식기 시작했다. 선선해진 바람이 싸늘해지기 시작하면 회사는 11월 말에 있을 임원발표에 대한 예상으로 술렁거린다. 10월만 되도 벌써 누가 집으로 가느니, 누가 새로운 사업부장으로 올 거니 하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다. 내부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10월이면 연말 성과급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거라고 생각할테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이미 10월 실적이 마감되기도 전에 평가는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더 좋은 실적을 낸다 해도 회사 평가가 바뀌는 건 아니었다. 괜히 연말에 열심히 해서 연매출이 높아지면, 이듬해 실적 목표만 높아질 뿐이었다. 그래서 연말은 좀 힘을 빼고 연초 매출을 위한 룸을 남겨놓는 게 관행이었다.
이런저런 카더라가 무성한 몇 주를 보내고 나면 임원발표가 났다. 대기업 임원발표는 좋은 뉴스거리였기 때문에, 뉴스에서도 새로운 임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경우 회사 게시판보다 인터넷이 빨랐다.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임직원보다 외부에 있는 주주들을 더 챙기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겨울도 올해로 입사 12년째지만 이럴 때는 회사 주요 결정에는 하나도 관계없는 직원나부랭일 뿐이었다.
임원 발표가 나고 나면 으레 조직개편이 따라왔다. 조직개편이 날 때면 새로운 부문장이나 팀장 발표가 따라붙었다. 임원발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집에 가고 누군가는 올라갔다. ‘저 사람은 당연히 올라가야지’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저 사람이? 왜? 뭘 했다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능력 있고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일은 뒷전이고 윗사람 의전과 그럴싸하게 포장한 언변으로 올라간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대부분 일이 많고 실적에 대한 압박이 큰 자리에 갔고, 후자는 저 팀은 뭐 하지 싶은 자리에 갔다. 때로는 특정 사람을 올려주기 위해 다른 부문에 있던 팀들까지 끌어와 전에 없던 부문을 만들어 승진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색한 조합의 부문은 대부분 'A팀장 부문장 만들기 대작전'이라는 걸 인정하기라도 하는 듯, 이듬해 조직개편 때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라인을 잘 탄 사람이 누구나 중요하게 여기는 자리에 가기도 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을 깜냥이 안 된다는 걸 누구든 다 아는 상황에서 그 자리에 앉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속에서는 썩어 문드러져도 예쁜 포장지를 마련해 포장해서 모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위에서도 맨날 이건 이래서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사람보다, 시키면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하고 있는 일이 잘 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더 예쁘긴 할 것이다. 위에서 아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뭐이겠는가? 그냥 큰 방향을 지시하고 잘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면 곧 성과가 나겠거니 생각할 뿐. 하지만, 그런 경우에 밑에 있는 사람들만 죽어나기 쉽상이었다.
어찌 되었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온 회사는 술렁거렸다. 임원발표, 조직개편과 부문장과 팀장 발표가 끝나면 이제 본격적인 인사이동이 시작되었다. 가끔은 다 만든 블록을 다 분리하고 새로운 걸 만들듯이 조직이 개편되기 했다. 그러면 대규모 인사이동이 시작되었다. 팀이 합해지기도 했고, 부문이 나눠지거나 합해지기도 했다. 사람들 절반 이상 바뀌면서 죄다 뒤섞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규모 조직개편이 아니더라도 연말이 되면, 적어도 20 퍼센트의 팀장은 바뀌었고, 팀에서는 적어도 한두 명의 팀원은 이동했다. 새로운 임원은 새로운 조직과 이미 충분히 많은 내부규칙에 새로운 규칙을 더했다. 새로운 팀장은 이제까지 했던 활동들을 확인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내놓았다. 지난주까지 제일 중요하게 하던 일이 팀장이 바뀜과 동시에 ‘이 걸 굳이?’하는 일로 바뀌었다. 그래서 11월이 지나면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해내려고 아등바등거리는 게 눈에 띄게 줄었다. 연말 성과는 이미 거의 확정되어 있고, 지금 중요한 일도 사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바꿨기 때문이었다.
많은 인사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건 겨울과 비슷하게 입사한 시현의 상무 진급이었다. 회사에 입사한 지 만 12년, 나이는 고작 36살이었다. 겨울 동기 중에 팀장은 단 사람은 몇 있었지만, 그 연차에 임원은 단 건 회사에서도 유래없는 일이었다. 시현이 있는 사업부는 위에서 푸시가 심해서 퇴근해서도 매장을 돌아다니며 시장현황을 들어서 출근하자마자 보고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갈대처럼 빠르게 바뀌는 윗선의 요구에도 늘 빠르게 대응해줘야 해서 얼마 못 버티고 다른 사업부로 이동하거나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남아 있는 사람이 귀했다. 3년만 버텨도 선임급에 속했고, 팀장급마저도 자주 공석이 나는 탓에 다른 부서면 겨우 과장이나 달았을 7년 차에 팀장을 다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시현은 인턴시절부터 일욕심이 많았다. 도전을 즐겼고, 새로운 일도 특유의 추진력으로 성공시켰다. 위에서 하라는 일은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서 가져갔고, 무엇을 시키던 그날 안에 가능한 방안을 정리해서 보고했다. 내외부 가리지 않고 푸시하는 탓에 유관부서나 협력업체에서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니 어쩌니 해도 그녀는 성과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함께 하면 바쁘고 짜증은 나지만 올해 성과에 적을 수 있는 한 줄이 생겼다.
회사 동기와 결혼을 했지만, 남편보다는 시현이 높이 올라갈 재목이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시현은 회사에서 보내주는 미국 MBA 대상자가 되었다. 매일 늦게까지 일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GMAT이니 에세이, 인터뷰 준비를 해냈고, 결국 탑 5 대학에 합격 통지를 받아냈다. 어쩌면 그렇게 날짜도 기가 막히게 맞췄는지 겨울 방학이 되자마자 아이를 낳았다. 임신한 채로 과정을 해낸 것도 대단하지만, 원정출산 의혹에서조차 자유로운 원정출산을 해낸 것도 놀랄만했다. 학기 초부터 한국에서 따라간 친정엄마는 시현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최선을 다 했다. 임산부 시중부터 산후조리며 신생아 케어를 도맡아 하셨다고 했다. 딸내미 위해서 산후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니 정말 헌신적인 모정이었다. 아기가 나오자 입사 동기인 시현의 남편도 육아 휴직을 쓰고 미국으로 향해 그 짐을 나눠가졌다. 집안 전체가 ‘최시현 임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MBA에서 돌아오고 회사에 복직하자마 시현은 거의 바로 팀장을 달았고, 금세 부문장을 달았다. 부문장도 회사 내에서는 최연소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예전만큼 야근을 길게 하진 않았지만, 대신 각종 업무용 술자리가 많아졌다. 시현은 어떤 자리든 빼는 법이 없었다. 윗분들과의 자리는 물론이고, 데리고 있는 팀 회식이며 유관부서와 조인트회식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늘 애들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여타의 다른 맞벌이 부모들 뿐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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