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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Oct 21. 2024

비슷한 듯 다른 워킹맘의 생활

버티는 게 진짜 이기는 걸까? 4

오늘 점심은 수민과 겨울이 친하게 지내던 후배인 주원의 복직기념 식사였다. 임원 발표가 난 직후인 만큼은 점심 먹는 내내 임원발표에 관한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화제의 중심은 ‘최시현 상무’에 관한 이야기였다.  회사 내에서만 화제인 게 아니었다. 그룹사 내에서 최연소 임원인 탓에 뉴스에도 대문짝만 하게 나왔고 각종 커뮤니티들에서도 최연소 임원이야기는 화제였다. 심지어 겨울의 지인들까지 해당 기사링크를 보내며 물어볼 정도이니 말이다.


흔히 말하는 ‘로열패밀리’도 아닌 일반 직장인이 삼십 대 중반에 임원을 단다는 것도 놀라운데, 거기에 아이까지 있는 워킹맘이라니.


 남초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바탕으로 그 소식을 이해하고는 흥분했다. 군대도 안 다녀와서 새파랗게 어린 그녀 밑에 그녀보다 나이 많은 내가 깨지고 있을 걸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녀가 데리고 있는 팀들에 속한 직원은 대부분은 그녀보다 어렸다. 워낙 퇴사율이 높은 사업부라서 계속 신입들로 채워지고 있는 터였다. 물론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고, 입사가 빠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상상하는 만큼은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가 여자라서 입사가 빠른 것도 있었지만, 그녀가 최연소가 된 건 무엇보다도 성과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가 회사 밖에서 볼 때는 혁신적이기 이를 때 없는 삼십 대 여성 임원이 배출한 회사였지만, 여기도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근무 년수로 봤을 땐 여자보다 남자들이 승진이 빨랐다. 아무리 출산 휴가만 쓰고 3개월 만에 복직한다 쳐도, 인사적 불이익은 임신기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남자들 사이에 끈끈함도 큰 몫을 했다. 자신을 형님처럼 모시는 남자 후배들을 더 빨리 승진시키려고 노력하는 건 흔했다. 그래도 회사 밖에선 알리가 없었다. 사오십대 차장이나 팀장이 삼십 대 중반의 임원의 말을 따르고 있는 상상 자체가 그저 싫을 뿐이었다.


반면에, 워킹맘들 사이에서는 최시현은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대기업 여성임원은 드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결혼을 안 한 미혼들이 많았다. 남성임원 중에서 결혼 안 한 사람들은 손에 꼽았지만, 여성 임원 중에서는 결혼 한 사람이 손에 꼽았다. 입사할 때만 해도 의욕 넘치고 능력 있던 여성 직원들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동안에 생기는 공백 때문에 그녀들의 전력이 약화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특히나 남성들 중심으로 짜져 있는 회사생활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남성들과 비슷해서는 힘들었다. 그 이상이 되어도 올라갈까 말까 였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싱글이 아닌 이상 승진가도에서 낙오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시현은 심지어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수민, 겨울 그리고 주원에게 그녀의 승진은 더 인상적이었다. 겨울은 그나마 친정집 근처에서 살며 급할 때마다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수민이나 주원은 아니었다. 수민은 그래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친정 엄마가 주중이면 수민의 집으로 올라와 아이들을 케어해 줬었다. 하지만, 둘째가 4살이 되던 작년에 수민의 엄마는 육아영업종료를 선언하셨다. 애들도  충분히 컸으니, 이제부터 너희 둘이 알아서 키우라는 것이었다. 매주 5일을 친구도 없는 동네에서 딸네 집 방한칸에서 지내는 게 좋으셨을 리 없다. 첫째 낳고 복직한 뒤, 둘째 육아휴직 전까지, 그리고 둘째 낳고 복직한 뒤부터 봐주셨으니, 실제로는 한 3년 가까이 아이를 봐주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수민은 그런 엄마를 서운해했다. 최시현이 임원 승진한 데는 친정엄마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몫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 그랬다.


애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너는 회사일만 신경쓰라고 했데더라,
진짜 누군 복도 많지..


그렇다고 수민의 엄마가 육아를 해줬던 시간이 평탄하지만은 않았. 툭하면 수민의 엄마는 힘들어 못 하겠다고 이야기하셨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잠이라도 집에서 자게', 수민이네 가족이 본인이 사는 곳으로 이사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민의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서울 동쪽 끝이었고, 수민과 수민의 남편의 회사는 서울 서쪽과 인천이었다. 수민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이사하면 출퇴근만 각자 3시간, 4시간씩 걸렸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입주시터는 조선족도 280만 원씩 받고 한국인은 300만 원도 더 받는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본인은 그만도 못 하는 거냐며 섭섭해하는 티를 잔뜩 내시기도했다. 하지만, 수민의 월급도 세금과 건강보험료 떼고 나면 300만 원대였다. 그 월급으로는 생활비 필요하실 때 쓰시라고 엄마에게 드린 카드값 내고, 매달 150만 원씩 엄마께 드리고 나면 수민의 용돈도 안 남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수민은 자기가 일을 그만두는 게 맞는 게 아닌지를 수만 번 고민했다.


아예 수민의 엄마가 육아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신 뒤에는 차라리 나은 것도 같았다. 아이들이 좀 큰 탓도 있지만, 더 이상 변덕스러운 엄마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몸은 더 고되지기 시작했다. 등원도우미를 구해서 수민은 새벽처럼 회사에 갔고, 빨리 퇴근해 애들을 케어했다. 이제 5살, 7살이 된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학원버스를 타고 수민의 퇴근시간까지 버티고 있었다. 인천까지 회사를 가는 수민의 남편도 최대한 육아를 나눠할 수 있도록 얘기했지만, 그 짐은 생각처럼 절반으로 균등하게 나눠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수민은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다. 심지어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봐주니마니할 때도 시댁에서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수민의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시기에 ‘딸년 가진 게 죄’라는 말을 할 때면 수민은 미안함과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반면, 이번에 복직한 주원은 수민이 늘 서운해마지 않았던 친정엄마의 도움마저 받지 못했다. 주원의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 모두 아직 현역으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도와주려야 도와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일을 계속하고 계시다는 것만큼 복 받을 일도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입장에서는 그마저 아쉬웠다. 그래서 주원은 어렵사리 아이를 어린이집을 넣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해서 총 6시간 근무를 하는 걸로 복직했다고 한다. 찾아보면 이리저리 좋은 제도가 많지만, 사실, 이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는 회사가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좋다는 게 뭐겠는가. 이들이 다니는 회사가 여초 기업라는 것도 이러한 제도가 빠르게 도입되는데 한몫을 했다. ‘여성이 다니기 좋은 회사’가 한 때 회사의 입사 설명회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였지 않았나.


하지만, 대기업이라고 그 과정이 쉬울거라고 생각했다면 잘못된 예상이었다. 주원이 단축근무를 한다고 말했을 때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나마 비슷한 처지에 있는 팀장은 알았다고 했지만, 그 위에 있는 부문장은 주원을 불러서 강하게 설득했다. 네가 6시간을 일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일을 나눠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남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좀 무리하더라도 돈을 좀 더 줘서 좋은 이모님을 구해라는 것이었다. 부문장 역시 워킹맘이었지만, 좋은 시터이모님을 구해서 아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7년 동안 걱정 없이 아이를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원래 부잣집인 부문장님 부부와 주원의 부부는 상황이 달랐다. 아무리 대기업이래도 대리급 둘이 맞벌이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을 많지 않았다. 그 돈으로는 좋은 이모님이 다른데 눈 안 돌리고 계속 일해주실 수 있도록 넉넉히 드리기에 충분치 않았다. 자기 집을 가지고 결혼해서 애들 시터비용이며 영어유치원 비용을 조부모님이 대준다는 그런 집이랑은 상황이 달랐다. 퇴사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달려든 덕분에 단축근무 허락은 받았지만, 1시간 늦게 왔다 1시간 빨리 가는 주원의 마음도 편한 건 아니었나 보다. 6시간 근무를 해서 6시간치 월급을 받는다고 6시간치 일만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 8시간 다 일하는 겨울도 매번 일을 마무리짓지 못해 동동거리지 않는가. 그래도 이게 최선이다 생각하며 1시간 일찍 나와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도, 어린이집에 신발이 두어 개 남아있는 걸 보면 주원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갓 돌 지난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수민이과 겨울은 “애들 금방 크고, 크면 훨씬 낫다”는 말로 주원을 위로했다. 그렇다고 수민과 겨울의 워킹맘 상황이 평탄하지 않다는 건 그들도 알았다. 하지만,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 없이 버티기엔 그 시간이 너무 힘들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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