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게 진짜 이기는 걸까? 2
평범한 일상 2주, 그리고 가족 여행을 하며 1주를 보내자 선우는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여러 차례 배웅한 덕분에 인사는 길지 않았다.
처음 선우가 돌아갈 때는 온 가족에 겨울의 친정부모님까지 함께 공항으로 배웅을 나갔었다. 하지만 그때 공항에서 선우를 보내고 난 뒤 돌아오는 길은 무성 영화같았다. 아이들은 지쳐서 잠들었고, 어른들은 말없이 창 밖으로 이미 봤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겨울의 마음은 조금 쓸쓸했고 허전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 심장이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을 슬프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슬프다고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괜찮아,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최선을 선택한 것일 뿐이야.
겨울은 슬프다는 약한 소리 대신,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나면 너무 지쳤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공항으로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인사를 했다. 선우가 떠나고 난 뒤의 집은 마치 스위치를 껐다 켠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선우가 없는 게 당연한 그 상태로 말이다. 애들도 선우가 왔다 갔다 하는 생활에 익숙해진 듯했다.
처음 스웨덴에서 돌아오고 난 뒤, 떨어져 있던 기간이 1년이 가까워오자, 겨울은 독박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선우가 중간에 1주일이라도 짬을 내서 한국을 왔다 갔지만 하루하루가 다른 때였다. 아장아장 걷던 2살 하린이는 아빠가 없는 사이 발로 공을 차며 뛰어다니는 3살이 되었다. 아는 글자를 하나둘 읽던 4살 하준이는 어느새 짧은 책을 곧잘 읽어내는 5살이 되었다. 선우는 거의 매일 페이스톡으로 아이들 얼굴을 봤지만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더 커지고 여문 아이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가장 예쁠 때,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 한 채 커가는 게 안타까웠다. 하지만 겨울이 다시 휴직을 하고 스웨덴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선우가 육아휴직을 쓰기로 결정했다. 6개월 이상 EU 밖으로 나가있으면 나중에 비자 갱신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해서 육아휴직은 5개월만 냈다. 그래도 유럽에서 만난 여름휴가를 합해 거의 6개월 넘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떠난 게 올해 초였다. 있다 없으니까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여느 때처럼 겨울의 부모님이 채워주셨다. 애들이 아프면 달려오고, 아이들 아침 등원도 친청부모님 몫이 되었다. 육아도 살림도 조금 어설픈 선우 대신 육아도 살림도 경험자이신 엄마가 겨울의 육아와 살림에 등판하고 나면 오히려 집과 아이들이 더 정돈되어 보였다. 시키면 군말 없이 하는 선우 대신 스스로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시는 엄마와의 차이였다. 선우가 있으면 마음은 편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고, 엄마가 도와주시면 마음에는 찼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여름휴가는 그렇게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이 된 지 6개월에 다시 만나는 거였다. 그런데도 겨울은 야근할 수 있다며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며 좋아하고 있던 셈이다.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헤어질 시간이 된 것뿐이었다.
이번에도 집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선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겨울은 바로 '선우 없음'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움직였다. 겨울은 다 돌아간 세탁기에 옷을 골라 빨래대에 걸었고 나머지는 건조를 돌렸다. 그리고 선우의 흔적이 가득한 집을 치웠다. 수화물 무게를 확인하기 위해 꺼내놓은 체중계며 더 많이 넣으려고 제거한 포장들이 아직 거실에 있었다. 이렇게 치워도 한동안은 선우의 흔적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당장 지금부터 겨울은 원래부터 선우가 없었던 것처럼 굴 수 있었다. 여러 번의 헤어짐을 겪은 노하우였다. 마치 왔다간 일이 없는 것처럼 구는 거. 바로 그게 선우의 빈자리에 허전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기 위한 겨울만의 노하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