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게 진짜 이기는 걸까? 7
나 내년 여름까지만 회사 다니고 그만둘까 봐.
팀장과 면담을 하고 나서 복잡해진 마음을 정리하기라도 하듯 한 번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던 말을 선언하듯 내뱉었다. 카톡을 본 선우는 놀랐다. 어쩌면 애써 눈감아온 현실을 마주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중간에 육아휴직을 내고 잠시 한국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했다고는 했지만, 그건 고작 6개월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나머지시간들은 겨울에게 그 모든 것을 미뤄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예전에 중동으로 떠난 산업역군 마냥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이었다면 한국과 두세 배씩 차이나는 연봉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스웨덴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새로 이직을 하면서 연봉이 올랐다고는 그래봤자 한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연봉만 따져서 이직했다면 선우는 한국에서 그보다 훨씬 많은 연봉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스웨덴에서의 커리어는 가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선우를 위한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겨울은 자신이 이제까지 마냥 선우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선우가 스웨덴으로 간 덕분에 겨울도 해외생활이라는 걸 해볼 수 있던 것이 아닌가. 한국 외의 삶을 그려볼 수 있게 된 것도 선우 덕분이었다. 선우의 업무나 커리어적인 면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나 육아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과 선택지를 준다는 것도 선우의 이직 덕분이긴 했다. 이런 역기러기 맞벌이 생활에서는 그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다 해도 말이다. 그 가능성을 남겨두기 위해 겨울이 두배로 고생하고 있다 해도.
주위에서 여자인 지인들이 결혼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임신출산을 하면서 일을 그만둬도 겨울은 자신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건 선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선우가 외국에 나가서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겨울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것이다. 힘들어도 견뎠을 것이고 지금 회사에서 답이 안 보인다고 생각했다면 이직을 고려했을 것이다.
좀 더 방법을 찾아보자. 내가 한국을 들어가도 되니까.
하지만, 겨울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디로 이직할 건데라는 물음이 머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스트레스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예전 회사? 그 회사가 아니라면 대부분 선우가 갈 만한 회사는 집에서 한 시간은 더 걸렸다. 회사가 바쁘지 않아 야근을 하지 않는다 해도 편도 1시간이 넘는 거리로 출퇴근을 하면서 맞벌이로 아이들을 돌본다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이제까지 경험으로 야근을 안 하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조차 되지 않았다. 만약 선우가 이직하는 회사를 고려해서 집을 이사한다고 해도, 어차피 등하원에는 손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나마 겨울의 친정집이 가까워 겨울의 부모님이 도와주시지만, 이사를 하게 되면 그 도움도 쉽지 않아 진다. 그래서 다들 신혼 때는 출퇴근 편한 데서 살다가도 애들 낳으면 부모님 댁 근처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나. 아니면 예전이 수민이 했던 것처럼 방한칸을 더 마련해 주중에 집에 계시며 도와달라고 부탁하던지 말이다. 결국 선우가 돌아온다고 한들 생활이 더 나아질 거란 기대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종류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겠지. 최대한 부모님의 신세 안 지고 부부의 힘으로 해내려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안 되어서 힘들고 화가 나는 그런 나날 말이다.
선우가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올 일자리를 찾는다면, 그렸던 직업 성취는 이룰 수 없는 자리일 것이다. 아마 3년 전 떠나왔던 곳과 다르지 않은 곳으로 다시 들어갈 확률이 컸다. 언제 떠났냐는 듯 말이다. 한국에서 회사를 쭉 다녔을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을... 선우가 첫 번째 회사를 이직하고 나서 겨울이 느끼기에도 선우의 프로그래머로써의 능력은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최신의 기술을 발 빠르게 적용해 가며 일을 할 수 있었기에 같은 일을 훨씬 가볍고 빠르게 해낼 수 있다고 했다. 덩치 큰 한국 대기업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업무 진행이었다. 이제 새롭게 이직하기로 한 회사는 세계 3대 IT 기업, B였다. 연애시절부터 늘 선우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바로 그곳들 중 하나. 코딩의 수준이 분명 다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선우가 다시 한국회사로 들어간다면 답답한 프로세스를 따르느라 누더기 같은 코드를 짜고 있을 터였다. 맨날 급하다며 야근을 하겠지.
선우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세계 3대 IT 기업 중 한국에 개발부서를 가지고 있는 곳은 딱 한 군데였다. 스웨덴을 가기 전에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던 K회사였다. 그 이후에도 수없이 시도를 했지만, 때론 서류에서 때론 코딩 시험에서 때론 면접에서 탈락하고 말았었다. 선우의 커리어와 한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얻으려고 한다면 K가 답이었지만 이렇게 급하게 와서는 K로 이직할 수 없었다. 충분히 준비해도 떨어지지 않았는가.
겨울은 선우의 커리어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건 ’ 여자는 남편 내조해야지 ‘라던가 ‘암탉이 울면 집이 망한다’ 같은 남존여비 사상이랑은 관계가 없었다. 겨울은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를 바라볼 때 더 높이 올라가기 쉽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리고 높이 올라간다고 해도 크게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겨울이 바라보는 임원들은 늘 매출에 쫓기고, 답 없는 시장상황에 괴로운 사람들이었다. 위로 올라가면 위로 올라갈수록 부담은 커졌고 고민은 많아졌다. 아마 겨울이 위로 올라가서 해내고 싶은 게 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근데 사실 겨울은 이 회사에서 엄청나게 이루고 싶은 게 없었다. 그저 내 일을 깔끔히 해서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 같이 일하기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면 충분했다. 초고속 승진을 해 임원을 단 시현처럼 내 저녁시간을 희생하고 윗분들의 입맛에 맞게 해내기 위해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럴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선우는 다르지 않은가. 더 잘하고 싶어 했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 했다. 스웨덴에서 다녔던 그리고 앞으로 다닐 회사는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래서 겨울은 그 꿈을 응원하고 싶었다. 만약 겨울이 이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었다면 선우는 그 꿈을 응원했을 것이다. 겨울이 시현처럼 회사에서 하는 MBA를 갔다면, 선우는 아이들 걱정은 하지 말고 가라고 했을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든 단축근무를 하든 겨울의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든 이모님을 구하든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이다. 그래서 겨울은 자신의 결정이 희생이 아니라 응원이라고 생각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