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다시 원점 3
아이들이 학교로 보내고 돌아온 집, 겨울은 옷을 벗어 걸어놓고 회색 책상으로 간다. 이젠 더 이상 회사일도 과제도 없지만, 컴퓨터를 켠다. 구글 드라이브로 들어가 새로운 문서 하나 연다. 텅 빈 모니터 위에 커서가 깜빡인다. 겨울은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민 끝에 키보드 위의 손을 움직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세줄을 적고는 그 사이에 여러 번 엔터를 쳐서 공간을 만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다시 직업을 구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번 회사를 들어갈 때 취업에 급급해 영업관리에 가까운 포지션이라도 감지덕지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맞지 않는 옷에 자신을 구겨 넣는 실수를 반복할 순 없다.
그렇다면 무슨 직업을 찾아야 할 것인가..
마케팅 전문가?
그랬다면 한국에 있는 편이 맞았다. 여기에서 마케팅을 하려니 언어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스웨덴어 읽기 쓰기 능통 또는 스웨덴어와 영어 읽기 쓰기 능통. 매번 잡포스팅 끝에 적혀 있는 문구였다.
마케팅 연구원이나 교수?
그렇다면 박사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과연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겨울이 스웨덴 마케팅 학계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스웨덴에서 받은 박사학위가 의미가 있을까.
디지털 마케터?
트래픽 분석하고 광고 집행하는 거라면 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전문가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옆에서 본 건 있으니 조금만 배우면 잘 해낼 것도 같았다.
한국에서 하던 일, 대학원 전공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다 보니 마치 작년 이맘때 했던 고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모든 건 다 고려했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어 미용기기팀 팀장을 하고 있던 게 아닌가. 스웨덴에서 6개월이라는 경력이 더해지긴 했지만, 그게 재취업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저 중 무엇인가 하나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남은 인생을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까?’
겨울은 문득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이 맞긴 한지 의심스러웠다. 취업 아니면 공부.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가게를 내는 지인들을 보면서 자신이 가는 길만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결정의 순간에 오면 익숙한 선택지 중에 고르고 있었다. 마치 그게 아니면 길이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