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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위기

스웨덴이 힘들다

by 노랑연두

이번 주 수요일은 유독 힘든 날이었다. 아침 10시 반에 가서 노래 수업을 하고 1시 반에 스터디테크닉 수업을 듣는 거였는데, 아침 수업부터 스웨덴어가 잘 안 들리기 시작한 것. 집중력의 문제인지 아니면 진도가 나가면서 더 어려운 단어들이 나와서 내 스웨덴어 실력이 들통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노래 부르는 수업은 악보가 있으니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면 되니 어떻게든 따라가는데, 음악이 1도 없는 스터디테크닉 수업은 정말 나머지 공부라도 해야 하나 싶은 수준..


자괴감이 들었던 스터티테크닉 수업 전에 먼저 노래 수업를 들었다. 이번 시간에는 간단히 어깨를 풀더니 요가를 하듯이 한 발을 들고 두 손은 하늘 위로 모아 든 채로 균형을 잡으며 발성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소리를 앞으로 밀어내듯 내라고 하며 Z, S, F 같은 소리로 발성연습도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또 I gonna have a great day(도미솔-높은도-솔미도)을 시작음을 높여가며 발성 연습도 했다.


워밍업이 끝나자 첫 시간에 배웠던 노래를 성부를 나눠서 부르기 시작했다. 첫 시간에는 멜로디만 배웠지만, 이제는 나머지 음들도 배우기 시작한 것. 예전 합창에서 메조소프라노 있을 때 힘들었던 게 화음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멜로디는 그 자체로 완결된 음악이라서 괜찮은데, 화음을 넣어주는 음들은 아름답게 작곡된 곡이 아닌 이상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이상한 음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음을 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멜로디를 따라가버려서 그 이후로는 무조건 소프라노에 섰다. 하지만 이번에 연습하는 곡 중에 한 곡은 멜로디를 베이스-알토-메조-소프라노가 번갈아가며 갖는 곡이었다. 화음을 내는 부분을 연습할 때 헷갈릴 것 같았는지 교수님은 아래 사진처럼 조표를 보고 으뜸음을 찾아서 1234567로 음의 이름을 쓰라고 말했다. 근데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 갑자기 왜 솔어쩌구를 쓰라고 하지 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조표를 보고 으뜸음을 찾아서 음이름 도레미파를 적는걸 relativ solmisation, 영어로는 relative solmization이라고 한단다.


아무튼 중간중간에 한 설명은 절반도 못 알아듣기도 하고, 돌림노래처럼 부르라는 가이드도 잘못 알아듣고 먼저 불러 옆 사람이 뭐라 해서 좀 쪼그라들었지만, 그래도 노래시간은 그럭저럭 넘겼다.


문제는 바로 스터디테크닉. 이 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음악이 아니라는 거. 음악은 음악이라는 공통용어로 소통하니 언어가 좀 부족해도 어찌어찌 따라갈 수가 있는데 이 수업은 진짜 찐 스웨덴어 수업이라 너무 힘들었다. 같이 듣는 카린의 말에 의하면 교수님이 skånska라고 불리는 남부 사투리가 심하단다. 그래서 자기도 알아듣기 힘들 때가 있다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것 때문은 아닌 듯. 그냥 스웨덴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수업 끝나고 자괴감이 들었던 건 크게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첫 시간에 교수는 a4 반 장 짜리 이야기를 읽어줬다. 듣기 테스트도 아니고 저걸 왜 읽어주는지 의도도 모르겠고 내용도 거의 이해를 못 했다. 그리고 끝날 때 숙제를 내줬는데 하나는 수업시간에 보다가 만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고 인상적인 것 한두 가지를 적는 거였고 두 번째는 기억나는 만큼 적는 거였다. 그걸 보면서 왜 똑같은걸 다른 방식으로 두 번씩 적으라고 하나? 이랬었다. 알고 보니 기억나는 만큼 적는 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수업 시작할 때 읽어준 그 이야기였던 것! 근데 그 사실을 수업 시작해서 앞뒤 사람이랑 같이 써온 걸 읽을 때까지 몰랐었다.

문제의 이야기

번역기를 돌려보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유령 전쟁

어느 날 밤, 에굴락 출신의 두 젊은이가 물개를 사냥하러 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 강은 안개가 자욱하고 추워졌습니다. 그때 전투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들은 "아마 전쟁 무리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강둑으로 도망쳐 통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때 카누들이 도착했고, 노 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카누 한 척이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카누에는 다섯 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들을 데려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곳 사람들과 싸울 것입니다." 젊은이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저는 화살이 없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카누에 화살이 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죽을지도 모르고, 친척들은 제가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가 다른 남자에게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저와 함께 가셔도 됩니다." 그래서 젊은이 중 한 명은 저와 함께 갔고, 다른 한 명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전사들은 칼라마 강 건너편 마을로 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은 강가로 내려와 싸우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갑자기 젊은이는 전사 중 한 명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빨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인디언이 다쳤어." 이제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 저들은 유령이구나."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가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카누는 에굴락으로 돌아갔고, 젊은이는 집으로 가서 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두에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저는 유령들과 함께 갔고, 우리는 싸우러 나갔습니다. 우리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우리를 공격한 사람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맞았다고 했지만,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말하고 침묵했습니다. 해가 졌을 ​​때 그는 쓰러졌습니다. 그의 입에서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습니다.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는 죽은 것입니다.

(Ohlsson, Almkvist. Waern: 인지 심리학, 23페이지)

이 과제의 목적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지, 그 기억들이 사람들마다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실제 이야기와는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과제를 제대로 이해했다 했어도 사실 스웨덴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내용을 쓸 수 없었다. 그렇지만 과제조차 제대로 이해 못 하다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며 이 수업을 듣는 게 맞는가 싶어 좀 현타가 왔다.


그러고 나서 파워포인트도 없이 교수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이름이 나오고 누군가 총을 쐈고 무슨 색깔 신발을 신고 있었느니 하는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저 이야기를 왜 하나 싶었다. 저것도 듣고 외워서 써야 하는 건가 아니면 받아 적어도 되는 건가 모른 체로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끝나지가 않는 것. 뭔가 수업을 한 거 같긴 한데 내용을 20~30%밖에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챗지피티를 켜서 음성 인식기능을 켰다. 용량 때문에 중간에 자동으로 멈추긴 하지만, 그때까지 녹음된 걸 받아써주기 때문. 심지어 받아쓰기를 한 글을 전송하면 무슨 내용인지 정리도 해준다. 그런데 그 중간에 한 흑인 학생이 들어오더니 편지 같은 걸 전해주며 영어로 교수와 대화를 하더니 다시 나갔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교수는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챗지피티가 알려준 교수가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사례: Olof Palme-mordet (팔메 총격 사건)
• 1986년 스웨덴 총리 Olof Palme가 살해됨.
• 경찰은 Christer Pettersson을 용의자로 보고 vittneskonfrontation(목격자 대질)을 실시.
• Palme의 아내 Lisbet Palme가 유리창 너머에서 확인.
• 그러나 경찰이 두 가지 실수를 함:
1. Lisbet에게 “han är missbrukare” (그가 알코올 중독자라고) 알려줌 편향된 인식 유발.
2. Pettersson은 vita gymnastikskor(하얀 운동화), 나머지는 svarta skor(검은 구두) 눈에 띄게 만듦.
• Lisbet는 바로 Pettersson을 지목.
• 하지만 이런 procedurfel(절차적 오류) 때문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었고,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



2. 기억 테스트와 연결
• 교사는 “minnestester” 예시를 듬 만약 여러 자동차 브랜드 이름 나열 중에 tulpan(튤립)이 하나 들어가면, 학생들은 바로 그것을 기억한다.
• 즉, det som sticker ut (눈에 띄는 것)을 우리는 더 잘 기억함.
• 이 때문에 Pettersson의 하얀 운동화도 결정적으로 기억에 각인되었을 가능성이 큼.


그러더니 경찰이 와서 물어본다고 생각하고 용의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인상착의를 쓰란다. 총격사건의 용의자가 어땠다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서 멀뚱멀뚱 있었다. 다 쓴 뒤에는 아까처럼 옆의 사람들과 서로 쓴 글을 이야기하란다. 다른 사람들이 쓴 걸 얘기하고는 나에게도 물어봤는데 아까 교수가 말한 게 기억이 안 나서 못 썼다고 말했다. 내 말이 이해가 안 가는지 하라는 게 뭔지 아냐고 물었다. “사실 스웨덴어 잘 못 해서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챗지피티가 인상착의 쓰라더라, 근데 교수가 뭐라고 말했는지 몰라서 쓸 수가 없어,“라고 하자 사람들이 과제를 영어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모르는데 왜 자꾸 말하지 싶어서 내 스웨덴어 문제야라고 말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다음에는 옆 사람들끼리 얘기한 내용을 반 전체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기하게도 머리 색깔을 제외하곤 그 기억이 조금씩 달랐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쓴 용의자 인상착의를 듣다 보니 불현듯 지금 인상착의를 써야 하는 대상이 이야기 속 사람이 아니구나 싶은 게 아닌가.


“혹시 우리가 써야 하는 사람이 아까 들어왔던 학생이야?”라고 물으니 맞단다. 우와, 도대체 나는 뭐를 한 거지? 아까 그 학생이라면 나도 눈이 있으니 봤고 어떤지 쓸 수가 있었는데! 흑인이었고 아주 짧은 검은 곱슬머리에 흰색 윗옷이 매우 꼈으며 빨간색 학교 출입증을 목에 건체로 들어와 a4용지를 3등분으로 잡은 거 같은 크기의 종이를 교수님에게 줬더랬다. 어떤 사람은 재킷을 입었다고 쓰기도 했고 후드를 입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색깔만 기억나고 뭐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났다. 아마도 셔츠가 아니었을까?


모든 팀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다 말하자, 교실 문으로 아까 나갔던 학생이 다시 들어왔다. 그 학생은 흰색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까만색 트럼펫 가방을 멘 채로 목에는 빨간색 학교 출입증을 걸고 있었다. 잠바를 입었다는 사람, 파란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는 사람, 백팩을 메고 있었다는 사람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맞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냐는 것. 이걸로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알 수 있단다. 이게 스터디 테크닉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지만, 주제는 다시 첫 시간에 배운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돌아갔다. 학습이라는 건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인데 우리의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제대로 된 내용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가도록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이번 주 숙제는 같이 듣는 수업 중 최소 4번 이상 수업이 끝난 뒤 복기하는 문서를 작성해 오는 것이다. 문서에는 수업에서 무슨 내용을 배웠는지, 무엇이 새로웠고, 어렵고, 쉬웠는지 그리고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5가지 항목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다른 수업 내용을 한 번 더 되새기면서 오래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인가 보다. 다른 한 가지는 지난번에 봤던 다큐멘터리와 같은 시리즈에 들어 있는 나머지 3개도 보고 똑같이 기억에 남는 한두 가지 그리고 어떻게 현재 공부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적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숙제를 제대로 이해했으니 어떻게든 할 테지만, 앞으로 수업을 어찌 들어야 할지 참 걱정이다. 이렇게 꾸역 꾸역이라도 계속 들으면 과연 스웨덴어가 나아지는 게 맞긴 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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