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밤 Oct 10. 2023

애프터 커밍아웃

레즈비언이란 말도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친구들

8년 전,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생겼다. 들뜬 마음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나 애인 생겼다”라고 말해 버렸다. 성별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으니까. “야, 네 남친 어떻게 생겼냐 좀 보자.” 순간 당황했다. 맞다, 애인이 생기면 우린 사진부터 보여주곤 했다. 괜찮은 사진이 없다고 둘러댔다. 친구들은 집요했다. “왜 오빠가 못생겼어? 괜찮아.” 나이와 성별을 밝힌 적도 없는데 다짜고짜 오빠라니.


나는 애인이 생겼다고 말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술을 마실 때마다 “맞다, 봄밤 남친 얼굴 좀 보자.”라며 핸드폰 사진 앱을 열라고 강요했다. 헤어졌다고 할까. 멀쩡히 잘 만나는 애인을 헤어졌다고 하는 게 맞을까. 말을 하지 말 걸. 왜 입방정을 떨었을까. 10년 넘게 만나는 내 고등학교 친구는 세 명. 친구들은 내 연애사를 꿰고 있었다. 내가 남자 후배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도, 그 후배가 나한테 차인 뒤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도망칠 때도, 결국 그 후배와 순댓국집에서 술을 마시다 사귀기로 했을 때도, 셋은 늘 곁에 있었다. 그놈이 우리와 친한 언니와 결혼할 때도 결혼식에 가지 않은 유일한 친구들이기도 했다. 여자든 남자든 애인이 생겼을 때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애인과 싸워 속이 상했을 때 같이 욕해줄 동지들이었으니까.


반년 넘게 사진을 보여주지 않자 연주가 말했다. “얘 이상하다? 왜 남친 사진을 안 보여줘?” 연주가 운을 떼자, 하은이 “여자 아니야?”하고 웃었다. 평소 고지식하던 미정은 “너네 봄밤한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라며 화를 냈다. 아, 이대로 친구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다음 모임,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친구들에게 보여줄 애인 사진도 몇 장 골랐다.


어김없이 사진 보여달란 소리가 나왔다. “내 애인 여자야.” 순간 정적. 정적을 깬 건 하은이었다. “뭐 어때, 나 유럽 여행 갔을 때 게이 많이 봤어.” 오케이. 유럽 나이스. 하은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우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없잖아.” 그래, 그렇지. “그래서 사진을 못 보여준 거구나.” 응, 그럼 이제 사진을 보여줄 차례인가? 하는데 아무도 사진 보자는 소리를 안 했다. 이상하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닌데. 순간 화제가 다른 쪽으로 옮겨 붙었다.


하은이 말했다. “설마, 봄밤이 우리 중에 누구 좋아한 거 아니야.”(웃음) 하은이는 멈추지 않았다. “미정이 너 좋아한 거 아니야? 늦을 때마다 봄밤이 네 자리 맡아줬잖아.” 하은아 그건 내가 착하고 성실해서 그런 거고. 하은의 말에 발끈한 미정이 말했다. “야, 그렇게 따지면 하은이 네가 더 심하지. 우리 싸울 때마다 봄밤이 네 편들었잖아.” 아니, 그건 하은이가 항상 밀리니까. 주변의 성소수자는 다 자기를 좋아했을 거라는 편견이 얼마나 공고했는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친구들은 내가 셋 중 누구를 좋아했는지 따지며 다퉜다. 근데 얘들아, 내 애인 사진은 이제 안 궁금하니?


희한한 일이었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애인 사진 보겠다는 소동에서 시작했는데, 아무도 사진을 보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 모임에서도, 그다음 모임에서도. 커밍아웃을 한 이후 친구들은 습관처럼 건네던 너넨 안 싸워? 애인은 요즘 뭐 해?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조차 더는 히지 않았다. 어디서 만났냐, 누가 먼저 고백했냐, 남친이 생겼을 때는 흔히 하던 취조도 생략됐다. 나는 십 년 동안 숨겨온 비밀을 꺼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사 상사 얘기, 다이어트 얘기, 드라마 얘기만 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 혼자 남을 때면 내가 쟤들한테 커밍아웃한 게 맞나 싶었다.


석 달 뒤, 다시 만난 모임에서 술에 잔뜩 취한 미정이 말했다. “나 사실 그날 속상해서 집에 가서 한 잔 더 했다. 너 양성애자라며. 그냥 원래대로 남자 만나면 안 되냐?” 오, 이게 말로만 듣던 동성애 반대인가. 미정은 이왕이면(?) 남자를 만나라고 계속 떼를 썼지만, 뭐라도 자기 생각을 말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반대도 내가 성소수라자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날뿐이었다. 친구들은 다시 아무것도 묻지 않는 상태로 돌아갔다.


하루는 술을 마시다 연주와 둘이 화장실에 가 줄을 섰다. 대뜸 연주가 물었다. “그분은 잘 지내시냐?” 커밍아웃 5년 만에 처음 묻는 안부였다. 그래, 연주 네가 천방지축인 하은이, 고지식한 미정이보다는 속이 깊지. “(애인은 한 번 바뀌었지만) 잘 지내지. 근데 그분이 뭐야.” 내가 웃자 연주가 말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 그동안 내 애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겠구나. 우리는 늘 “남친 요즘 뭐 해? “, “오빠는 잘 지내?”라고 물었는데 내 동성 애인의 호칭은 낯설 수 있겠다 싶었다.


몽글이라고 불러, 내 애인은 몽글이야. 연주에게 처음으로 애인 이름을 말했다. 연주가 이름을 외우듯 몽글, 몽글하고 읊조렸다. 우리는 자리로 돌아갔고, 친구들은 시댁에서 누가 더 많은 김장을 담갔냐로 다투고 있었다. 결국 절이지 않은 배추 이백 포기 사진을 보여준 미정이 씁쓸한 승리를 하며 자리를 마쳤다. 술에 취해 집에 오는 길, 친구들이 김장 사진은 궁금해하면서, 내 애인 사진은 여전히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게 나는 이상했다.


여자라서 보기 싫은 건가? 5년 넘게 차마 속으로도 묻지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연주가 고마우면서도 둘이 있을 때만 그 얘기를 꺼낸 것도 마음에 걸렸다. 커밍아웃 전, 나는 친구들과 한 번도 편하게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취하면 실수로 말할까 봐, 사실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 얘기라서. 취기가 올라올 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찬물 세수를 했다. 커밍아웃하고 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술을 마시다 가끔 친구의 남편이 오는 것처럼 내 애인이 와도 이 애들이 반겨줄까. 애인을 데리고 친구들의 결혼식이나 아이 돌잔치에 가도 될까. 커플 여행을 가자던 우리의 오랜 소원에 아직 나도 포함되는 걸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피해 주는 것도 없잖아.” 커밍아웃했을 때 하은이 한 말이 떠올랐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도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친구들에게 내 애인을 보여주는 건 피해일까, 아닐까. 묻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코로나 3년을 거치며, 친구들은 번갈아 임신했고 술 모임은 끊어졌다. 가끔 카톡방에는 아기 사진이 좌르륵 올라온다. 코로나 초반에는 누워 있던 아기들이 이제는 킥보드를 타며 싱싱 달린다. 남편과 아이가 함께 한복을 입은 사진도 있다. 나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애인과 반려견 사진이 2천 장 넘지만, 꾹 눌러 담는다. SNS에 공유해도 되는 사진을 법으로 공인한다면 첫 번째가 아기 사진 아닐까. 두 번째는 고양이와 개의 박빙. 그다음은 음식 사진. 동성 애인 사진은 불법이 되는 거 아닐까. 근데 난 왜 여태 애인 사진 한 장 보여주지 못한 걸까. 발 벗고 말리는 이 하나 없고, 심지어 불법도 아닌데.

이전 01화 7년 만에 긴 머리를 자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