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밤 Oct 12. 2023

7년 만에 긴 머리를 자르다

사랑은 무엇도 해치지 않으니까.

“그럼 자를게요.”  

   

확인하듯 미용사가 말했다. “네, 그럼요.” 나는 경쾌하게 답했다. 삼십 센티가 넘는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잘려나갔다.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달고 다녔을까. 바닥에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머리를 짧게, 그것도 아주 짧게 잘라달라고 했을 때 미용사는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괜찮지 않을 건 또 뭔가. 괜찮다고 하니 “아깝다”라고 했다. 나도 아깝다. 그동안 긴 머리를 위해 매일 삼십 분 넘게 들인 시간, 비싼 샴푸, 빨래와 다름없이 치열했던 머리 감기 노동이 나도 너무 아깝다.      


7년 전만 해도 나는 귀밑을 찰랑거리는 짧은 머리를 고수했다. 그 덕에 어딜 가나 남자로 오해받았다. 한 번은 찜질방에 갔는데, 한 여자가 나를 보고 “악”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계산대에서 받은 옷이 남자 옷(?)이었다. 심지어 여자 옷은 분홍, 남자 옷은 파랑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옷을 사러 갈 때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어릴 적부터 ‘터프걸’이라느니, ‘남자 같다’느니 하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지만, 칭찬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놀리는 투면 그나마 양반이고, 대부분 말속에 비난과 무시가 섞여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깟 머리 기르고 치마 입어서 ‘여자 노릇’ 한 번 해주면 그만이라 생각했지만, 그러자니 비난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거 같아 왠지 싫었다.      


스무 살이 넘자 사람들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날 ‘덜 자란 존재’ 취급했다. ‘동안’이라는 칭찬(?) 속에는 묘하게 ‘여성스럽지 못해서 미성숙하다’는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제 나이에 맞는 얼굴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동안’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불쾌했다. 마치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외모의 기준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한참 못 미친다는 소리로 들려서다.     


한 친구는 “화장은 예의”이기 때문에 “너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화장하게 될 것”이라며, 비영리단체에서 팔 년 넘게 일한 나를 비(非) 사회인, 비(非) 성인 취급했다.      


왜 헤어스타일 하나 내 맘대로 못할까?      


끝도 없는 이런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는 이십 대 초반에 만난 남자친구다. 그는 끊임없이 ‘여자답게’ 머리를 기르라며 요구했고, 호시탐탐 ‘여성스러운’ 옷을 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짓을 하면 당장 헤어지겠다며 수도 없이 선전 포고했지만, 그는 결국 나를 속옷 가게로 끌고 갔다. 사람들이 안 보는 곳부터 바꿔가며 용기를 가지라는 남자친구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는 내가 아직 ‘덜 진화한 존재’라며, 원석은 정말 예쁜데, 가꾸지 않아서 그 미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칭찬(회유)했다. 그의 말에 속이 왈칵 뒤집혀서 난 “그럼 대체 왜 나를 만나는 거냐!”라고 소리 지르며 뛰쳐나왔다.      


그의 소원대로 내가 여성스러워지진 않았지만,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남자들이 나를 볼 때마다 “남자같이 하고 다니는 이상한 애”라고 수군거릴 것 같았다. “예쁘지도 않은 게 착각한다고” 모욕당할까 봐, 성추행을 당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다. 나는 너무 여성스럽지도, 너무 남자 같지도 않은 스타일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적당한 수준을 찾아 외모 평가에 매일 노출되지 않을 만한 딱 그만큼의 스타일, 한마디로 평범해지고 싶었다.      


머리를 기르니 남자로 오해받는 일이 사라졌다.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혐의(?)에서도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얼마나 틀 하나로 상대를 재단하는지 알게 됐다. 긴 머리 하나로 ‘정상인’이라는 특수를 누리는 대신, 매일 빨래와 다름없는 치열한 머리 감기 노동을 해야 했다. 내 머리는 숱이 많아 대충 감으면 금방 비듬이 덕지덕지 붙었다. 대야에서 머리를 빨듯이 감는 데 매일 삼십 분. 한 달에 15시간, 일 년이면 180시간, 지난 7년간 꼬박 두 달을 화장실 대야에 머리를 처박고 보낸 거나 다름없다.     


여름이면 더 고역이었다. 매년 8월, 땀띠 나는 긴 머리를 자르겠다고 벼르고 별렀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자친구와 사귀는 지금, 머리까지 자르면 자동 커밍아웃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엄마는 가장 예쁠 때 왜 아줌마처럼 짧은 머리를 하냐며, 머리를 자르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머리 짧을수록 티 쪼가리 입으면 안 되는 거 알지?”하는 친구의 말에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성 코너’에서 옷을 사는 것 이상의 어떤 노력을 해야 ‘여성스러움’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게다가 난 전혀 '여성스럽'고 싶지가 않다.) 아, 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째 숫자는 나 모르게 내 머리와 옷 스타일까지 미리 정해둔 걸까?     


사람들이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머리를 짧게, 그것도 아주 짧게 자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당시 여친은 의외로 고심했다. “둘 다 머리 짧으면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녀를 나는 눈만 껌뻑이며 쳐다봤다. 길거리에서의 작은 스킨십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내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다독이던 그녀가 아닌가. 웃음이 터졌다. “너도 그런 걱정하는구나.” 막상 내뱉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의심하라지. 의심이 다 뭐야, 사실인걸.      


머리를 자르게 한 결정타는 FTM(Female-to-Male)인 친구의 말이었다. “여자화장실 갈 때마다 사람들이 놀라잖아요. 그럼 미안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분 좋은 거예요. 날 남자로 봐주는 거잖아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나 기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럼 나는 왜 기분이 나빴을까? 내가 여자라서? 아니, 난 내가 성별이 모호한 이상한 존재로 보이는 게 싫었다.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놀랄 때마다 가까운 사람들도 사실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신경 쓰였다. 그래서 정작 내가 무얼 원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와의 대화 이후 칠 년 만에 긴 머리를 잘랐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머리 길이 하나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나를 벗어나고 싶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인가.     


내친김에 친구들을 만나 십삼 년만의 커밍아웃을 했다. “남친은 잘 지내?” 라는 말에 “여자야” 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그 뜻을 바로 이해했다. “그래서 남자도 사귈 수 있다는 거지?” 라고 확인하는 친구 말에 뜨끔했다. 커밍아웃하면서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도 만날 수 있는 범성애자, 즉 이성애자/정상인이기도 한 거지. 그런 말을 하고 싶던, 그러니까 어떻게든 정상성의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싶던, 그 최후의 선 안에 어떻게든 발 디디며 살고 싶던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아! 이 욕망도 머리카락처럼 잘라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애 초기에는 그녀로 인해 내 삶을 망치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누구인가?’ 싶을 만큼 나는 달라져 있었다. 삼십 년을 숨겨온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난 느낌, 그 이질감이 두려웠다. 대나무숲이 있다면 가서 ‘내가 여자랑 껴안고, 뽀뽀한다!’ 라고 외치고 싶었다. 무섭고, 이상하고, 두려운 데도 행복했다. 사람들이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사랑은 무엇도 해치지 않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