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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Jan 28. 2019

가지볶음과 마늘종

기억과 상상

가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식은 아다. 가지를 쪄내 먹기 좋게 찢어서 간장이나 고추장에 무쳐 낸 가지나물을 지금은 좋아한다. 그러나 어렸을 땐 입안에서 물컹거리는 그 식감 때문에 가지나물을 싫어했다. 가지나물에 대한 나의 나쁜 기억을 한순간에 없애준 가지 음식이 바로 가지볶음이다.


대학 때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을 가르치는 과외를 아르바이트로 했는데 공부를 다 가르치고 나면 늘 조금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그 집 어머님은 참 넉넉한 심성을 가진 분이었는데 늘 가족 식탁에 내 밥과 국을 함께 차려놓고 공부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저녁 상을 준비하셨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집을 떠나와 기숙사와 식당 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나는 그 저녁상에서 집밥에 대한 나의 허기를 채웠다. 그 밥상에서 만난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우리 집에서 자주 먹어보지 못했던 노각 무침이나 양념이 엄마가 해주는 것과는 달랐던 김치나 여러 가지 국. 특히 가지볶음은 내가 몰랐던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가지의 식감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주었던 음식이어서 먹을 때마다 감탄했다. "어머님 가지볶음이 참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가지는 처음 먹어봐요." 다만 그 저녁까지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다 보면 늘 시간이 너무 늦었다. 다음날 제출 마감인 과제가 있는 날이나 동아리 사람들과 술 약속이 있는 날이면 그 저녁상이 부담스러웠다.


그 댁 어머님은 시집오셔서 시부모님 모시며 직장까지 다니는 슈퍼 워킹맘이었다. 그 댁 어머님이 일이 늦게 끝나거나 다른 일이 있을 때는 그 댁 할머니가 나에게 저녁상을 차려주셨다. 연세가 여든 가까이 되어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구부러지셨지만 늘 손을 움직여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계셨다. 콩을 고르거나, 양말을 개거나, 걸레를 들고 넓은 거실의 한 켠을 훔치고 계셨는데 한 평생 농사를 지으며 몸에 밴 부지런함이 세월이 흐르고, 몸이 쇠약해져도 어디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온 몸에 습관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그렇게 나이가 많으신 분이 밥을 차려주시니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늘 감사했다. 할머니도 내가 가면 "선상 왔어?" "밥 먹고 가." "할머니는 살아계셔?" 하시며 나를 살뜰하게 대해 주셨다. 내가 밥 먹으면서 말동무도 되어주고 살갑게 대해드려서인지, 그리고 아이들 가르치러 오는 선생에게 밥을 차려주는 일쯤은 아직도 당신께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는지 할머니는 나에게 저녁상을 차려주시며 참 즐거워하셨다.
   

그날도 할머니가 저녁상을 차려주셨는데 나는 아마 다른 약속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볼 일이 있어 빨리 가야겠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는데 할머니께서 "가지볶음도 했단 말이여. 밥 먹고 가!!!" 하시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나도 아이들도 그리고 그 집 아버님도 여간해선 잘 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큰 목소리에 당황했다. 당황해서였을까 나는 황망히 신발을 신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나와버렸다. 그렇게 나와서 깊이 후회했다.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에 스스로가 바보처럼 미웠다. 가지볶음을 하려고 보라색 가지에 칼집을 낼 때마다 후회하며 걸어가던 내 발걸음이 떠오른다. 어쩔 줄 몰라 황망스러워 스스로에게 화풀이하듯 아무렇게나 어둠을 발로 차며 걸었던 그날 밤의 후회와 한숨이 검은 어둠처럼 짙은 가지의 보랏빛에서 들리는 듯하다.  

마늘종은 남편이 좋아한다. 농사짓는 부모님 그리고 다섯 누나 형과 함께 남편은 어린 시절을 막내로 산골에서 보냈다. 마늘종을 보고 시어머님이 남편 어릴 적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 아무개가 어릴 때 마늘이 나면 마늘종을 똑, 똑,  뽑아 손에 뽀끈 붙잡고 누나들이 달라고 하면 '아무도 안 줄 거다. 내 혼자 장 찍어 먹을 거다!' 이래 말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다섯 살의 남편을 상상한다. 마늘종을 들고 있는 집중하는 작은 손.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아이들의 손이 귀엽다. 특히 무언가 집중해서 잡고 뭘 하고 있을 때의 작은 손. 그 작지만 세상 진지한 어린 손의 집중. 그런 손으로 마늘종을 '뽀끈' 붙잡고 있었던 봄날의 어린 남편을 상상한다. 그 어깨에 쏟아졌던 햇살과 바람. 그리고 집중하는 다섯 살 남편의 작은 손.


다섯 살 어린아이였던 남편의 집중하는 손을 상하는 마늘종. 오늘은 그 마늘종을 마른 새우와 견과류와 함께 요리한다. 고추장과 지난 설에 선물 받은 조청과 간장을 넣고 조려낸 양념에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낸 마늘종과 프라이팬에 볶아낸 마른 새우를 넣고 조금 더 볶다가 슬라이스 아몬드와 해바라기씨 통깨를 넣고 마무리한다.

가지볶음과 마늘종. 기억과 상상이 넘쳐나는 오늘 저녁 식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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