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시댁 큰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내가 처음 시댁 큰어머님을 뵈었던 건 남편과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인사를 드리러 나와 함께 찾아간 남편에게 산비탈 딸기밭에서 따온 딸기로 만든 잼을 한 병 주셨다. 늘 그러셨다. 혼자 산에 둘러싸인 집에 살며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갈무리한 것들을 오는 사람들 손에 들려 보냈다. 고사리를 따 삶아 말리고, 깻잎을 차곡차곡 쌓아 장아찌를 담고, 더덕을 캐 고추장 항아리에 묻어두고, 국화꽃을 따 술을 담고 이파리와 함께 말린 꽃을 베개에 넣고, 가자미를 잘게 썰어 무를 많이 넣고 빨갛게 버무린 식해를 한 통 가득 꾹 눌러 담아 놓고, 부지런히 산을 올라 송이를 따 오셨다. 아직 아이 없이 단촐한 신혼이었던 우리 부부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큰 댁에 인사드리러 갔던 추석날,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에서 남편의 사촌 형제들과 솔잎에 쪄낸 참밤을 넣은 송편과 송이국에 국화주를 마셨다. 상위에서 향기가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큰어머님의 수고로움이 향기롭게 차려진 술상, 내가 마주한 최고로 화려한 술상이었다.
그 손이 재고 바른 큰 어머님께서 몇 해 전 주신 말린 고사리를 나는 어찌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만 있었다. 나의 비천한 솜씨가 함부로 다루기에는 장만하느라 들인 정성이 너무나 아까워서 감히 꺼내서 요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작년에 큰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보니 찬장에 오롯이 담겨있는 말린 고사리가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 소중함을 뜨끈하게 끓여 식구들에게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찬 바람이 분다. 아침에는 뜨끈한 국을 끓여 식구들을 먹이고 싶다. 뜨끈한 국물 한 그릇 먹고 각자 학교에서, 직장에서 힘을 내 어딘가에서 만날지도 모를 바이러스도 물리치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 내가 차린 저녁 식탁으로 무사히 다시 돌아와 앉기를 바라며 고사리를 푹 삶아 하룻밤 물에 담가 두었다 아침에 육개장을 끓여 아침상을 차린다. 바스락거리며 물기 한 점 없이 말라있던 고사리 줄기가 통통하게 부풀어 쫄깃하다. 몇 년이나 묵혔는데 마치 큰어머님께 어제 받아온 것처럼 봄 고사리 향이 짙다. 봄 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어 삶아 말렸던 큰어머님은 이제 곁에 없지만 큰어머님이 이 음식에 들인 정성은 어디로 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나 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해도 정성이 들어 있는 그 무언가에는 그 정성을 들인 이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구나 싶다. 뜨끈한 국물이 목으로 넘어가 더운 기운이 훅 올라온다. 하루를 준비하는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 첫 끼로 든든하다.
어제 고등학생 큰 아이의 조주기능사 자격증 필기시험이 있었다. 두 개의 마음이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싸웠다. 그래도 시험이니 떨어지는 것보다는 붙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별 소용도 없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바에 보기 좋게 떨어져 조주기능사 따위 미련 없이 마음을 접고 학교 공부에 매진하기를 바라는 두 개의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양주의 이름을 줄줄 외고, 칵테일 만드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바텐더의 한 달 월급이 얼마인지 인터넷 검색을 하는 큰 아이를 보면서 저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자격증 시험을 본다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뭔가 더 심각하다는 예감에 당황했다. 소설가 김영하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굳이 마주 앉아서 서로 카톡으로 대화하는 카카오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와 카톡 메시지로 말했다. 어쩌면 지금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하나도 쓸모없는 것일 수 있다고.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다고 한들, 마주 앉아서도 핸드폰으로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들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만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는 내 아이가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이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남들에게 업신여김 당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대학이 서열화된 현실에서 좀 더 상위에 위치한 대학의 졸업장으로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일단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좀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 이런 나의 바람이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지 모르고 글씨 연습을 시켰던 소설가 김영하의 아버지처럼 쓸모없는 것을 강요하는 것일까?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밀어붙이는 나를 합리화하면서도 문득 학교 공부 대신 조주기능사 자격증 시험 문제지를 책상에 펼쳐 놓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에게 좋은 것이 내 아이에게는 별로인 것이면 어떡하지?'라는 기분 나쁜 경우의 수가 생각나 쌔한 느낌이 감돈다.
사진출처: "톡이나 할까?" 화면 캡처
퇴근하고 시험 장소로 큰 아이를 데리러 운전해 가는 길에 '붙었으면 어떡하지?', '떨어졌으면 어떡하지?' 우산장수 부채장수 엄마처럼 마음이 걱정으로 가득했다. 시험장소에 사람들이 꽤 많다. 멀리서도 내 아이는 귀신같이 알아보는 엄마의 눈은 아이의 안색을 먼저 살핀다.
"어땠어? 어려웠어?"
"네, 처음 보는 문제가 많았어요."
순간 안심이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시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상기되어 밝지 않다. 위로를 하려는 순간,
"그런데 붙었어요. 다행히."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대를 꼭 붙잡고 말했다.
"어 그래? 시험에 합격한 거 축하해. 모든 시험은 일단은 붙고 봐야 해. 그치?"
그리고 잊지 않고 한 마디 덧붙였다.
"이제 내신도 신경 써야겠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은 실기 시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나 보다.
향기로웠던 술상 앞에서 행복했던 추석날 큰 댁 마당을 떠올린다. 내 아이도 그런 술상을 누군가에게 차려주는 일을 정말 직업으로 가지려고 하는 걸까? 나는 좋아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술상을 차려 내 본 기억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술을 만들어 주는 게 뭐가 좋을까? 짧은 젊은 날을 내 아이가 헛되이 보내게 될까 두렵다. 그러나 들인 정성은 어디로 가지 않고 정성을 쏟은 이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있다는 것을 믿기로 한다. 아직도 여전히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캄캄한 육아의 터널에 갇혀 더듬거리며 두려운 발검음을 옮기고 있지만 내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내 마음과 그 마음으로 정성 들여 기른 내 아이를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