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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Sep 09. 2020

연근전, 아삭한 소리를 느껴보길 바래

아들이 웃으며 문워크를 한다

마트에 햇연근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한 봉지를 카트에 담으면서 '벌써 여름이 다 지났나'하는 서운한 마음이 든다. 연근을 수확한다는 것은 초여름 연못에 떠 있던 넓은 연잎과 한 여름 햇살을 받고 물 위에 살포시 꽃잎을 피우는 연꽃을 다 걷어내고 연못 바닥의 진흙 속 연근을 캐내었다는 이니 여름을 걷어냈다는 말이다. 온몸으로 여름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연 잎과 연 꽃이 여름과 함께 가고 그 뿌리인 연근이 가을보다 저 우리에게 와,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고 여름내 여물었던 길쭉한 종아리를 내민다. 가을이 오는 반가움보다 여름이 끝나버렸다는 아쉬움이 큰 것은 긴 장마로 여름 햇볕을 즐길 수 있었던 날이 짧기도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 갇혀 이 여름은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는 서운함이 짙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다른 이 때문에 잃어버린 듯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작금의 사태에 화가 난다. "너 때문에 올여름을 잃어버렸어! 어떻게 할 거야?" 따지듯 코로나바이러스에 대고 사나운 대거리를 하고 싶지만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잃고 삶의 힘겨운 파도와 싸우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 여름을 즐기지 못한 나의 서운함 따위 포시라운 투정이어서 화를 가라앉히고 감자칼로 연근 껍질을 얌전히 벗겼다.


맛이나 냄새로 기억되는 음식은 많지만 소리로 기억되는 음식은 많지 않다. 연근은 소리로 기억되는 음식이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처음 연근전을 입에 넣고 씹었을 때 깜짝 놀랐다. 아사삭 투명한 소리가 귀 밑 바로 아래 입속에서 터져 나와 내 몸속으로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하게 생긴 음식이 아사삭 투명하고 강단 있는 소리로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연근을 처음 씹고 그 소리에 놀란 경이로웠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나는 햇연근을 사면 늘 연근전을 한다. 나중에 연근 조림도 하고 연근밥도 지어먹지만 언제나 연근은 전으로 그 해 처음 밥상에 오른다. 아이들도 연근으로 한 다른 반찬에는 손이 덜 가도 연근전은 좋아한다. 아들 사랑이 남다른 시어머님은 "입 속에 씹고 있는 것이라도 맛있는 게 있으면 꺼내서 아들 입에 넣어주고 싶었다"라고 갓 결혼한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보니 좋은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나도 내 아이들에게 내 것을 도려내어서라도 다 내어주고 싶다.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좋은 경험을 내 아이도 느끼기 바라는 마음에, 내 아이들도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아삭한 투명함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 연근전을 부쳐내 상을 차린다.


아이를 기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내 속으로 낳아 기른 내 아이라고 해도 나와 꼭 같을 수는 없다. 내 아이지만 또 다른 우주를 품은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느꼈던 또는 지금 느끼는 좋은 것을 내 아이도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것을 아이에게 주었을 때 아이가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난다. 왜 너는 그 좋은 걸 모르니? 아직 네가 어려서 그런 거야. 내 기준을 계속 들이 민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게 부담스럽고 부모가 자기가 어떤지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 같아서 또 화가 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무작정 내버려 둬야 할까? 남편과 상의 끝에 고등학생 큰 아이가 이제 더 이상 학원에 다니지 않기로 했다. 고등학교 과정의 목적을 졸업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고등학교 졸업의 목적은 졸업 그 자체가 아니라 진학이라고 대학을 진학했을 때의 좋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는 시큰둥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것만 좋은 모양이다. 부모로부터 공식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매일매일이 즐거운 모양이다. 거실에서 아이를 부르면 제 방문을 열고 털이 숭숭 난 다리로 엉터리 문워크를 하며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언제까지 저 아이가 이 험한 세상에서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을까, 밀려오는 삶의 힘겨운 파도에 좌절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덮친다.


이제 아이들이 커 손이 덜 가게 되어 나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좋다고 생각했다. 이제 기나긴 육아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홀가분하다고. 출퇴근하며 어린이집 등 하원 시키면서 바쁘게 돌아가던 날들이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안도의 달콤함은 짧았고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중간중간 또 다른 터널이 복병처럼 숨어있다. 나는 지금 진로와 진학의 터널에 들어와 있는 모양이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놔둬야 할까? 그래도 어떻게라도 마음을 돌려서 공부를 하도록 설득해야 할까? 이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아이를 제대로 기르지 못한 내 실패를 확인하는 날이 될 것만 같아서.


직장 동료가 아이가 아파서 애타는 마음으로 소아과 의사 앞에 앉았는데 의사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낳은 게 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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