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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May 07. 2019

함께 차리는 캠핑 밥상

우럭 숯불구이

캠핑을 다녀오면 한동안 머리카락에서 불냄새가 난다. 산에 떨어져 있는 나무를 주워와 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앉아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좋다. 이렇게 불 앞에 앉아있기 위해서 캠핑의 그 모든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과연 이 사람과 끝까지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그때 캠핑을 시작했다. 이제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없지만 우리는 다툼이 잦았다. 나와 다툰 남편이 어린이날 여덟 살 첫째를 데리고 나에게 말도 없이 첫 캠핑을 떠났다. 캠핑에서 돌아온 아이는 너무나 춥고 힘들었다고 했고, 남편은 캠핑 장비를 마구 사들였다. 둘째가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은 두 살이라 나는 함께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얼마간은 남편과 첫째 아이 둘 만의 캠핑이 계속되었다. 둘째가 세 살이 되던 봄, 처음으로 우리 네 식구가 함께 텐트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 잠에서 깨 혼자 캠핑장 근처 숲길을 걷는데 길이 꽃나무에서 떨어진 꽃 천지였다. 꽃 카펫이 깔린 듯 밟기조차 아까운 그 길 옆으로 내가 흐르고 새벽의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아름다웠다. 일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매일이 바쁘고 지친 나의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바쁜 일상에 코를 박고 사느라 세상 어딘가에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 아름다움도 모르고 살아가는가 싶었다. 그 새벽의 숲 속에서 닫혀 있던 나의 감각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숲을 만나고 캠핑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숲 속에서는 여유로웠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자유로웠다. 숲 속의 밤은 소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 증폭된다.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 연약한 생명들의 울음소리, 강을 돌아 흐르는 바람소리. 내 아이의 잠든 숨소리가 전부였던 일상의 밤을 벗어나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들의 작은 소리에 귀가 열렸다. 마음이 서너 배쯤 확장되는 듯했다.


숲으로 캠핑을 가서 내가 여유로워지니 아이들도 유순하게 대하고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졌다. 게다가 남편과는 파트너십이 생겼다. 보통은 금요일에 퇴근해 이박 삼일의 캠핑을 떠난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저녁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텐트를 치고 캠핑 살림살이를 차리기 위해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일을 나눠하며 서로를 돕게 된다. 텐트 치고 캠핑 세팅 빨리 하는 대회가 있다면 남편과 함께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만큼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 캠핑 파트너가 되었다. 그리고 캠핑을 가면 할 일이 별로 없다. 집에서 처럼 청소나 빨래를 할 필요도 없고, TV도 없고, 밖에 나가 누구를 만날 수도 없다. 오직 그 장소 그곳에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 그래서 캠핑을 가면 밥 해 먹고, 산에 가서 나무하고, 불 피우고,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치고 또 친다. 그고 불 앞에 앉아 있는다. 그 불 앞에서 마음이 스르르 풀어져 속마음이 흘러나온다.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고, 이해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나는 혼자만 간직한 감동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말로 뱉어내는 게 어쩐지 부끄럽고 수줍다. 내 감정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창피하기도 하다. 그런데 모닥불 앞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이 극복되고 내 마음이 그대로 불위로 쏟아진다. 아마 남편도 그러하리라.


그러나 모닥불 앞에 앉자마자 사이가 바로 좋아졌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서로에 대해 사나웠다. 모닥불 앞에 앉을 때는 기분 좋게 시작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동안 서로 할퀴었던 상처를 들쑤시게 되고 그래서 캠핑장에서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막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는 우리 부부를 보고 "역시 부부는 대화를 오래 하면 안 된다"라는 이웃 캠퍼들의 농담 섞인 말에 부끄러웠다. 그때도 모닥불은 타고 있었겠지만 우리는 아직 예열이 덜 되어 있었다. 이제 캠핑 십 년 차에 들어 서고 보니 우리는 참 좋은 캠핑 파트너가 되어있다.


남편은 밥을 참 맛있게 잘 먹는다. 나는 밥상 차리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밥을 맛있게 먹으니 우리는 참 잘 맞는 커플이라고, 신혼에 별 것 아닌 것에 나의 행복을 과장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차려놓은 밥상을 받고 싶어 하지 스스로 밥상을 차려 먹을 줄을 모른다. 내가 집에 없을 때 라면 정도는 끓여먹지만,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려먹느니 차라리 나가서 밥을 사 먹는다. 위로 다섯 명의 누나가 있고 막내였기 때문에 자라면서 스스로 밥상을 차려 먹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혼하고도 설거지는 해도 내가 차려주지 않으면 직접 밥을 차려 먹는 일이 없다. 그런데 캠핑을 가면 남편도 함께 밥상을 차린다. 불을 만지는 일은 남편의 몫이고 불에 구워내는 음식을 하는 이 역시 남편이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이 내가 주워 온 나무를 잘라 불을 피워 만든 숯불에 우럭을 굽는다. 캠핑장의 뚱뚱한 고양이들이 군침을 흘리고, 나는 기분이 좋은 채로 솥밥을 하고 국을 끓인다. 우럭 두 마리를 한꺼번에 굽느라 한 마리는 조금 오버 쿡 되었지만 불맛이 강하고 고소하다.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에 바지락과 아귀를 넣어 끓인 국과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으로 차린 밥상으로 아침을 먹는다.


벌써 낮에 불을 피우기에는 더운 날씨다. 그러나 또 남편은 불을 피워 석쇠에는 새우를 굽고, 숯에는 고구마를 은박지에 싸 익힌다. 나는 오랜만에 소꿉놀이하듯 카나페를 만들고, 남편이 바삭하게 익힌 새우구이를 곁들인 점심상에 맥주를 마셨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술을 좋아한다. 참으로 다행이다.   


십 년째 캠핑. 여전히 많은 이야기가 불 위로 쏟아진다. 운동회를 마치고 바로 캠핑에 따라온 둘째는 자기의 청군이 단 십 점 차이로 져서 너무 안타깝단다. 시험을 마치고 함께 온 첫째는 자신 있었던 영어를 망친 것 같아 속상하단다. 나는 사십 대 조기 폐경을 걱정하고, 남편은 연로하신 시부모님이 걱정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마시멜로처럼 달콤한 봄날의 밤공기 사이로 떠 다닌다.


행복한 봄, 달콤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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