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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Oct 14. 2022

교육 때문에 김포에서 목동으로
간다는 쌍둥이네

이상한 나라의 뜨거운 교육열

김포에 있는 연주네 60평대 아파트는 입구부터 달랐다. 신발을 벗어 놓는 곳이 영국에 있는 우리 집 화장실만 한 것이 아닌가. 현관부터 거실로 이어지는 바닥에는 원목 나무가 깔려 있고 꼭대기 층이라 천장이 깊게 파인 덕분에 호텔 로비에 들어선 줄 알았다. 거실에는 5인용 소파 세트와 별도의 1인용 소파가 자리 잡고 있는데 주방으로 가니 싱크대 옆에 또 다른 소파가 있다. 것도 4인용 짜리로다가.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두 개나 된다. 베스트 프렌드 신혜와 함께 후배 연주네 간 날이었다. 


"이 집이랑 비교하면 우리 집은 창고 같다, 야."


김포에 있는 4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신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모든 건 상대적인가 보다고 생각하는 찰나, 이어진 연주의 말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언니들, 나 이 집 팔 거예요."

"왜!?" 

"애들 땜에. 이거 팔고 목동으로 이사 가려고요."


연주네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 쌍둥이다. 그렇잖아도 김포에서 목동으로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씩 태워다 주고 태워 오는데 그럴 바엔 목동으로 가는 게 낫겠다고. 결정적으로 김포에는 괜찮은 중학교가 없다는 것이 이사를 결정한 이유였다. 목동 집값은 김포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이 집을 팔고 전세로 들어갈 계획이라는 말에 신혜와 나는 아프리카 사막의 늙은 여우 같은 소리를 내며 탄식했다. 어우야~~~ 


"그냥 살면 안 돼? 이 집 너무 좋은데."

"나도 그러고 싶죠. 근데 애들 키워보니 교육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언니, 여기 교육열은 목동 못 따라가요. 우리 애들은 환경이 받쳐줘야 공부할 애들이야. 안 그러면 안 한다니까요."


연주, 신혜 그리고 나는 대학 때 노래 동아리에서 만났다. 나나 계네나 똑같이 밤새 술 퍼먹으며 철없던 시절을 공유하기 때문이었을까. 연주가 동아리 선배와 결혼한 것도 신기했는데 이제 사춘기 학부형이 되어 저런 말을 술술 하고 있다니 새삼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깨달았다.  


"요즘엔 애들도 줄고 대학도 준다잖아."


내가 말했다. 


"지방 대학부터 없어지겠지. 어떻게든 먹고살려면 인 서울 대학은 가야죠."


그래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문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냥 집이 너무 아깝다는 말로 대신했다. 한국의 교육현장 속에 없는 나는 섣불리 말할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대화 속에 연주네 부부가 얼마나 고심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다 하고 싶다는 연주의 말을 나는 가만 듣고만 있었다. 


"대한민국은 기술직이 대우받는 유럽 같지 않잖아요. 노동력이 싸니까. 아파트에 수도 고장 나서 사람 불러도 2만 원 주는 걸 아까워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무직과 기술직을 차별하는 구조 탓에 근무환경을 생각하면 결국 좋은 대학에 가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게 연주의 결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목동이 김포보다는 나은 선택지고.


"요즘엔 탈목동, 탈대치라는 말도 있기는 해요. 내신 생각하면 그게 낫다는 건데 각자 자기 애들 성향 파악해서 판단할 일이죠. 우리 집 쌍둥이들한테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게 나의 판단이고."


5년 만에 한국에 나왔더니 아이를 키우는 여러 친구, 선후배들이 강남으로 갔다. 무선이는 논현동에, 수아는 대치동에, 사촌오빠는 도곡동에. 그들은 결코 <스카이 캐슬>이나 <그린 마더스 클럽>에 나오는 극성 엄마, 아빠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저 아이를 잘 키워 내고 싶은 사랑 넘치는 부모일 뿐이다. 애들이 너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 숨 한 번 내쉬며 그 세계로 밀어 넣고 있는 나의 지인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을 저버리고 9급 공무원으로 몰려든단다. 임홍택 님의 책 <90년대 생이 온다>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할 수밖에 없는지 한국 사회의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뜻하지 않게 영국에 살게 된 나는 이상한 나라의 뜨거운 교육열을 피하게 되었다. 그것은 영국에 사는 수많은 단점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큰 장점이다. 모두가 시키지 않는 곳에서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아이만 대학에 가면 된다. 그래서 우리 딸들이 한국에서보다는 더 편하게 대학에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안 가도 되는 게 아니라 편히 갔으면 하는 마음.  


오래전부터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생각해 왔지만 막상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가서 뒤처지는 모습을 본다면 그때도 맘 편히 바라만 볼 수 있을까. 대학만이 답은 아니라고, 네가 원하는 길을 찾으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하는 건 영국에 사는 한국인 부모에게도 용기와 신념이 필요한 일이다. 


미국에서 펀드매니저를 했던 존리 님은 유튜브와 자신의 책을 통해 부모들에게 사교육비 대신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사라고 조언했다. 어릴 때부터 경제 개념도 심어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 목돈을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야기인데 똑똑한 한국 부모들이 사교육도 시키고, 주식도 사주고, 경제 수업도 과외로 붙일까 봐 무섭다.  




서울의 여름은 거리마다 매미 소리로 꽉 찼다. 70 먹은 엄마는 말했다. 매미를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혹시 아느냐고. 하나는 주야장천 이어지게 우는 매미, 또 하나는 울다가 일제히 멈춰버리는 매미가 있다고. 그 후로 잘 들어보니 정말 그랬다. 어떤 동네에는 "맴맴" 시끄러운 소리를 주욱 내는 매미가 있는가 하면 다른 동네에는 "매애-엠-" 길게 울다가 한 순간 칼로 무 자르듯 울음소리를 뚝 끊어내는 매미가 있다.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뚝.  


이 매미들은 동시에 언제 울음을 멈춰야 할지 어떻게 아는 것일까. 몇십, 몇 백의 매미에게 이제 그만 울고 쉬어 보자고 지령을 내리는 대장이라도 있는 것일까. 한국의 과열된 교육열을 멈추기 위해서는 매미들처럼 한꺼번에 모두가 멈추는 방법밖에는 없는 듯하다. 내 아이만 안 시키면 불안하지만 모두가 안 시키면 평화가 찾아온다. 누가 대장 노릇을 할 것인가. 누가 먼저 멈출 것인가. 다 같이 맴맴 울며 과열된 교육의 지옥행을 타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동아리에서 술자리 때마다 사람이 먼저냐, 음악이 먼저냐를 두고 끝없는 토론을 벌이던 우리들, 술에 취하면 회오리춤을 추고 흥에 겨워 목청껏 노래를 뽑아내던 선배와 후배와 동기는 이제 한두 아이의 엄빠가 되어 거대한 대한민국의 교육경쟁이라는 바다 위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다. 파도는 언제나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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