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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it Aug 29. 2024

행복은 성적순일 수도

공부의 필요에 대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님과 상담할 일이 많아진다. 그때마다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이다. (진부하지만 사실이다) 처음 선생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친구들과의 관계, 열심히 놀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에 비하면 '학력'이라는 것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초보 선생이 되고 2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씩 이러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학력'을 좁게 생각하면 단순히 문제를 잘 맞히는 시험성적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방향에서 살펴보면 글을 제대로 읽고 문맥을 파악하는 어휘력과 문해력, 배운 내용을 이해하여 적용하는 응용력, 이미 배운 것을 다른 것과 연결하는 창의력도 일종의 학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어느정도의 주입식 교육이다.


주입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하면 학부모와 젊은 동료 선생들에게 꼰대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기 싫더라도 머릿속에 넣어야 할 건 집어넣어야 한다.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책도 읽을 수 있고 배운 내용을 이해하여 삶에 적용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즐겁게 배우면야 좋겠지만 때로는 힘들게 익혀서 더욱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른들게도 주입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종종 나의 아들도 '공부를 꼭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특히 수학 같은 것은 더하기, 빼기 정도만 하더라도 인생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아마 아들은 기억이 없겠지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도 나름 맞받아치는 이야기가 있다. '성적 또는 학력이 높으면 행복해질 확률이 올라간다'와 '공부하지 않는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시골 학교에서 근무하며 더욱 커졌다. 도시에 비해 가정에서 학습에 대해 덜 신경 쓰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몇몇 아이들의 부족한 어휘력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어휘력과 문해력의 범위는 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의 범위와 정비례한다. 어휘력이 부족하니 책을 읽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으니 무언가를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어릴적 이런 어휘력의 차이는 성장하여 어른이 될 수록 더욱 큰 폭으로 벌어질 것이다.


우리의 문명은 언어(말과 글)로 이루어져 있다. 공부를 하며 살지 않는다면(책을 읽으며 살지 않는다면) 본인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시대의 개념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관성에 끌려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관성이나 타성은 건성과 비슷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반대말은 관심이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언어적 직관이 통한다는 의미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내가 옳다고 느끼면 옳은 것이라는 식으로 서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인격이며 인격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배움과 습관을 통해 갖출 수 있다.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https://www.youtube.com/watch?v=QfTh7dT-Ao0 유튜브 책 읽어주는 헬레네


성적이 좋으려면 어휘력이 뛰어나야만 한다.

고로 좀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갈 확률도 높고,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공부하며 살아갈 확률도 높다.

따라서 행복은 성적순일수도 있다. 어른이고 아이고 배우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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