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씀
그냥의 사전적 의미는 '더 이상 변화 없이 있는 그대로 또는 그런 모양으로 줄곧'이다. 하지만 학교 수업에서 아이들이 자주 하는 그냥의 의미는 대부분 '아무 이유 없음'이다. 어떤 일을 했을 때 또는 어떤 현상에 대해 이유와 생각을 물어보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요'라는 답을 한다.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지 뭘 그리 따지니?' 하다가도 이런 답변이 반복될 때면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느끼는 그냥이라는 이 대답의 느낌은 '난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와 활동, 체험 등등의 것들은 사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기계적으로 암기해 문제 풀이만 잘하면 출세하는 세상은 사라졌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화되고 있으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싫어한다.
교육과 관련해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독서'이다. 일부 사람들은 책 읽기의 목적을 단순히 재미와 정보 습득 정도로 여기는데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궁극적 목표는 책 읽기를 통해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다. 통찰의 명사적 의미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어떤 사태나 현상에 직면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자원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통찰 역시 생각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미래 시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술이 AI 인공지능기술이다. 이 기술로 인해 통찰력은 더욱 대체 불가한 능력이 되어가고 있다. 단순 반복, 창의성이 발휘될 필요 없는 일자리는 인공지능과 이를 탑재한 로봇으로 대부분 대체될 전망이다. 세상은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데 이 세상을 개척할 무기인 '생각하는 힘'은 학교 현장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학부모와 교육 당국은 학생 인권을 이야기하며 학생들이 원하는 학생들 개개인에 맞춘 교육을 운영하라고 학교에 압력을 넣고 있다. 말로는 자율적 학교 운영을 이야기하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상명 하달식 공문들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사를 단순 지식 전달자 정도로 만들고 있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결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학교 속에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이를 막막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교사가 있을 뿐이다.
생각하는 힘은 스스로 주인이 되는 힘이며, 자신의 삶을 이끄는 능력이다. 이 시대의 모든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이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 도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