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각해 보는 습관에 대해
산이 많았던 시골에서 근무하던 내가 더 시골로, 그것도 바닷가 마을로 발령을 받았다. 논이 더 많이 보이는 곳이지만,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풍경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수업으로 채웠다면, 지금의 나는 관리와 조율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다 보니, 동료 선생님들을 모으고 의견을 나누며 방향을 맞추는 일이 잦아졌다. 큰 굴곡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던 나의 삶에도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 셈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 에너지를 쏟다 보니, 매주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글은 번번이 미뤄졌고 그렇게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러던 중, 낯선 환경 속에서 생각의 중심을 다시 잡아 준 책 한 권을 만났다. 조용민 작가의 『언바운스』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이 책에서 마음에 깊이 남은 문장들과 그 문장들이 나에게 던진 질문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래 인용문은 『언바운스』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변화의 의미와 영향력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 해석에 근거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얘기다.”
이 문장을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변화에도 쉽게 마음이 닫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왜 굳이 바꿔야 하지? 그냥 하던 대로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수시로 떠올랐다. 심지어는 과연 내가 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따라왔다.
“어떤 관점을 갖고 일하느냐에 따라 결과와 최종 가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동료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기로 했다.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살피며 의사결정을 내리자, 일의 결도 결과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계를 가진 사람은 그 너머의 새로운 것을 볼 수 없고, 새로운 인사이트도 얻을 수 없다.”
이 문장을 통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경계, 보이지 않는 벽을 떠올렸다. 과거에 성공적으로 해냈던 일들과 그로 인해 굳어진 신념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들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교사는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존재다. 그것도 성실하게, 꾸준히 배울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이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서서히 뒤처지기 시작하고, 결국 소멸의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공부하지 않는 교사를 ’선생’이라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젊었을 때의 나는 관점이 분명했다. 시간이 흐르며 그 관점은 조금씩 느슨해졌다.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사람을 이해하려 한다. 예전 같았으면 끝까지 밀어붙였을 의견도,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된다. 사람에 대한 나의 관점은 점점 ’옳고 그름’에서 ’다름의 가능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10퍼센트 개선을 목표로 하면 기존의 것을 조금 바꾸는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10배 성장을 목표로 삼으면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마음에 깊이 와닿는 문장이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10배 성장을 꿈꾸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야 할 일은 끝까지 해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분명히 지키는 태도만큼은 갖추고 싶다. 놀랍게도, 이런 기본을 끝까지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지닌 인지적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언제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오픈마인드 위에서 딥씽킹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끔은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 얼마나 자주 내가 옳다고, 내 말이 정답이라고 우겼던가.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분명 꼰대였다.
“아무리 성공 경험이 많아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성이 없다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될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 머릿속을 자주 맴도는 단어가 있다. 진정성과 포용성이다. 수십 년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내가 모든 동료와 학생을 온전히 이해하고 도울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옳음을 증명하기보다 진심으로 이해하려 애쓰며 한 템포 늦춰 입을 다물고 귀를 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의 변화는, 그렇게 나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