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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Feb 05. 2024

묻지 말고 체험하자

교양 강좌를 맡았다. '철학주제로 한 영상 제작'이 목표였다. 시나리오 제작에서 시사회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지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팀구성이었다. 교양 수업의 경우, 학과나 학년 구성이 달라지니, 예상되는 고충이 많았다.

  나는 고민 끝에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한 달간 시나리오 제작과 촬영, 편집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가장 힘든  팀원 간의 의견 조율이었다.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고 마음 상할 이 많았다. 시나리오 선정부터 촬영 방법, 편집 방향까지, 각각의 생각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나는 개강 이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창작물 외에 참여도, 기여도, 리더십 등 평가 기준을 세부화했다. 그 뒤 촬영 현장에 직접 동행하며, 문제 상황이나 소통 여부를 살폈다. 학습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 UCC로 제작했고, 시사회 당일 학생들에게 공개했다. 학생들은 서로 간의 영상을 보며, 환호, 웃음, 박수로 화답했다.


(삼원스케치북, 스텐들러, 신한물감)

몇 년 전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이 갔다. 나이가 들면 옛것에 흥미가 생긴다더니. 자개 하나를 들여놓은 뒤로, 이곳저곳 정보 수집에 바빴다. 언젠가 나전칠기 장인을 만났는, 자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으며, 그 노고가 얼마나 클지 짐작하게 되었다.

  사무실 입구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동안 실존 대상을 그리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현장 상황을 직접 담는 건 처음이었다. 펜을 드는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고 자개 서랍장, 그것과 맺어진 많은 인연생각하니 흐뭇한 마음이 밀려왔다. 냄새, 촉감, 시각 등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니 익숙함이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색을 입히는 과정에 애정이 갔고,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글쓰기', 연속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제공하여 글을 쓰는 과제였다. 사진의 순서를 달리하거나, 다른 소재를 삽입해도 무관하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선생님, 이건 뭐죠?"라는 질문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초등의 경우, 소재나 주제 찾기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이 많다.

  이에 다른 시도가 필요했다. 나는 촬영 목적은 알려주지 않고, 풍경 사진을 찍어오라 했다. 사진으로 대상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다고 믿었다. 촬영 전 과정에서 대상을 면밀히 관찰할 수 기 때문이다. 언젠가 1회용 카메라를 이용했는데, 학생들은 사진을 기다리며 소재 찾기에 들뜬 모습이었다.

  그 후 하나의 이미지에 생각을 담고, 그 생각들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데 기쁨을 느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니, 배움이 학습이 아닌 놀이가 되었다.


  묻지 말고 체험하자


우리는 체험을 통해 사물에 대한 인식을 넓힌다. 탐구하는 과정에서 오감을 경험하면, 다양한 각도에서 대상을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대상과의 소통으로 부족한 점은 채우고, 과한 부분은 덜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이 커진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인다. 이에 체험은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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