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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보 Oct 23. 2021

모형 버리기(2)

모형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형을 만들기 위해 건축학과 학생들은 저마다 갖은 노력과 투자를 한다. 돈을 투자해서 퀄리티 있는 모형을 만들어 내거나, 시간을 투자해서 한 땀 한 땀 쌓아 올리거나, 인맥을 온통 끌어다 지인들에게 밥과 커피를 사내며 공장을 돌리거나 하는 식이다. 그 기간 동안은 온통 예민해져 누가 지나가다 만들던 모형에 슬쩍 부딪히기만 해도 신경이 바짝 곤두서게 된다.

모형을 만드는 시간 동안은 그 작업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잘라놓은 바닥 조각 하나 잃어버린다면 (심지어 그것이 곡선이라면…!) 같은 작업을 또 해야 할 생각에 짜증이 솟구치게 된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 놓았는데, 바닥 구석에서 잃어버린 조각을 약간의 신발 자국과 함께 발견하는 기분이란.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겠지만, 아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팔 하나 손가락 하나 직접 디자인하고 빚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형은, 기둥 하나 벽 하나 직접 치수를 재고 자르고 붙여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게 속속들이 고생의 과정을 뻔히 알고 있는 그것을, 그렇게 인생의 한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공들인 이 것을, 내 손으로 다시 부수어 쓰레기통에 처 박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미련이고 집착이라고 생각할지 몰라고, 이제  모형이 어디에도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미주는  것들을 버릴  없었다. 마음을 먹고 모형을 드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서 조금도 건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 좁은 자취방 안의 애물단지가 되더라도 미주는  모든 모형을 챙겨가기로 했다.  것들이 시간이 지나 먼지가 쌓이고 접착부가 저절로 떨어져 나가고 색이 바래지고 나서 그때쯤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버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끼고 신줏단지로 모시던 것이 짐덩이로 느껴질 때가 올 것이다. 미주는 그것이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품고 그때서야 놓아줄 수 있을 것이다. 미주는 스스로의 마음에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다들 너무 빨리 모형을 버리고 다음 단계로 구름다리 넘듯 넘어가지만 미주는 그럴  없었다. 그녀는 남들보다 시간이  필요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버리지 못한  때문에  느릿느릿  뿐일 테다. 그녀는 커다란 모형들을 이고 지며 집으로 옮기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모형들을 버릴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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