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형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형을 만들기 위해 건축학과 학생들은 저마다 갖은 노력과 투자를 한다. 돈을 투자해서 퀄리티 있는 모형을 만들어 내거나, 시간을 투자해서 한 땀 한 땀 쌓아 올리거나, 인맥을 온통 끌어다 지인들에게 밥과 커피를 사내며 공장을 돌리거나 하는 식이다. 그 기간 동안은 온통 예민해져 누가 지나가다 만들던 모형에 슬쩍 부딪히기만 해도 신경이 바짝 곤두서게 된다.
모형을 만드는 시간 동안은 그 작업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잘라놓은 바닥 조각 하나 잃어버린다면 (심지어 그것이 곡선이라면…!) 같은 작업을 또 해야 할 생각에 짜증이 솟구치게 된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 놓았는데, 바닥 구석에서 잃어버린 조각을 약간의 신발 자국과 함께 발견하는 기분이란.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겠지만, 아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팔 하나 손가락 하나 직접 디자인하고 빚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형은, 기둥 하나 벽 하나 직접 치수를 재고 자르고 붙여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게 속속들이 고생의 과정을 뻔히 알고 있는 그것을, 그렇게 인생의 한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공들인 이 것을, 내 손으로 다시 부수어 쓰레기통에 처 박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미련이고 집착이라고 생각할지 몰라고, 이제 이 모형이 어디에도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미주는 이 것들을 버릴 수 없었다. 마음을 먹고 모형을 드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서 조금도 건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 좁은 자취방 안의 애물단지가 되더라도 미주는 이 모든 모형을 챙겨가기로 했다. 이 것들이 시간이 지나 먼지가 쌓이고 접착부가 저절로 떨어져 나가고 색이 바래지고 나서 그때쯤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끼고 신줏단지로 모시던 것이 짐덩이로 느껴질 때가 올 것이다. 미주는 그것이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품고 그때서야 놓아줄 수 있을 것이다. 미주는 스스로의 마음에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다들 너무 빨리 모형을 버리고 다음 단계로 구름다리 넘듯 넘어가지만 미주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남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버리지 못한 짐 때문에 더 느릿느릿 갈 뿐일 테다. 그녀는 커다란 모형들을 이고 지며 집으로 옮기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모형들을 버릴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