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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보 Mar 16. 2022

월국 건축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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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집 이후 가벼운 맥주집으로, 맥주집에서 조금 가격대가 있는 칵테일 바로 자리를 옮겼다. 맥주집에서 500  잔을 비웠을 즈음 슬그머니 집으로 빠지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아무도 제정신으로 남아있지 않은 3차의 술자리까지 남아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맥주집에서부터 유리와 다른 테이블로 떨어져 그녀의 이야기는 이어 듣지 못했으니,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워서는 아니었다. 다른 술집으로 옮겨가며 그녀와 함께 다시 구석자리를 차지할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던  같기도 하다. 하지만 칵테일 바로 옮겨 생소한 메뉴판  그나마 익숙한 것을 시키고  모금 마셨을 때서야 나는 그녀 나보다 먼저 빠져나가 집에 가버리고  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일 월국의 대중교통은 조금 이르게 끊기고, 집으로 가는 길은 어림잡아 걸어서 40분쯤 되었다. 나는 걷다 힘들면 택시를 탈 요량으로 걷기 시작했다. 월국에선 어디나 해안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에 아닌 밤 중의 산책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유리가 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녀가 살았던, 대한민국의 어디에나 비슷비슷 자리했을 그 동네의 풍경과 죽어가던 건물을 생각했다. 아주 작은 섬의 나라, 월국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많았다. 이곳의 모든 건물들은 19세기 이전부터 계획된 터 위에 만들어졌고, 그것 자체가 통틀어 문화 유적이라고도 불렸기 때문에 쉬이리 건물을 철거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정되어 있다. 건축업계에 종사하는 월국인인 유리가 그것을 몰랐을 리는 없고, 그녀가 ‘월국인 들은 수용적이기 때문에 건물을 있는 대로 고쳐서 쓴다’라고 했던 것은 어떤 겸손함에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실제로 월국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건물을 보수하고, 보수해서 원래의 형태가 남지 않을지언정 온전히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그녀가 보았던 어떤 건물의 죽음은 충격적이었을만하다. 나는 중학교 시절 등교 길에 본 쥐 시체를 떠올렸다. 어느 날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인도와 차도 사이에서 죽은 쥐를 발견한 것이다. 바퀴에 짓눌려 내장이 죄다 튀어나온 쥐 시체는 누구도 치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매일 등굣길마다 그 시체가 부페하며 점점 까맣고 작은 껍질이 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쥐를 위해 한 번도 기도를 해보지 않았다.


회식 이후 한동안 건축 회사의 미팅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한국 식품 업체의 코디네이팅에 불려 다녔다. 그리고 유리와 유리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언제나 그렇듯 직장에서는 70%만의 전력을 사용하여 적당히만 일을 했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간단한 식사와 맥주를 준비하고 그저 이렇게 흘러가는 삶이 적막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느 날처럼 맥주 한 캔을 막 딴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퇴근 후의 전화는 이러저러한 핑계로 거의 받지 않아 왔지만 그날따라 전화 벨소리가 날카롭게 느껴졌다.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에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선주 씨. 밤 중에 미안해요, 통화 괜찮나요? 아니.. 지금 급하게 와줘야 할 것 같아요.”

안 괜찮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내가 괜찮아야 할 것 같은, 한국 쪽 건축 팀 팀장의 전화였다.

그는 한참을 횡설수설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었지만, 듣다 보니 꽤나 심각한 사안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본능적으로 겉옷을 찾아 꿰어 입었다.


“그러니까, 한국 쪽에서 마감 일자를 맞추려고 무리해서 강행한 공사였는데, 야간 공사로 이어지는 바람에 사고가 크게 났고 실종된 인부를 찾을 수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 일단은..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월국어를 좀 한다고, 현지 생활을 몇 년 했다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사실 그 현장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나의 고요한 월국 생활에서, 기껏해야 회의나 참여하고 현지 맛집이나 소개하던 나의 일이 갑자기 전생 같았다. 바깥바람이 유난히 차게 느껴지며 나는 거칠게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현실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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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시는 원래 척박한 땅이었고, 농지를 차지하는 세력 다툼에서 밀려나거나 유배를 떠난 사람들이나 사는 곳이었다. 이렇다 할 논 터가 마땅치 않았고 바다와도 멀었기 때문에 그곳의 백성들은 밭을 일구어 먹거리를 마련해야 했다. 그 외 유일한 소일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근처의 대도시 대평과 수도를 오가는 양반네와 수레를 이끄는 일꾼들을 재워주고 먹여준 값을 받는 일이었다. 사는 것이 워낙 척박했기 때문에 손님 대접도 박하기로 유명했지만 딱히 대안도 없었던 나그네들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룻밤을 청하곤 했다. 영암의 사람들은 수레꾼들이 각 지방에서 한양으로 공납품을 바치러 가는 그 한 때, 3년에 한 번 양반들이 과거를 치러 이동하는 그 한 때를 위해 살았다.

그래서 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목표는 그 짧은 시기에 어떻게 하면 임시적인 잠자리 공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열심히 나무를 해다가 별채를 만들어봤자, 그들의 발걸음이 뚝 끊기는 시기 보릿고개도 찾아오고, 그들은 무엇이라도 태우고 먹어야 했기 때문에 별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3년마다 엉성한 별채를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다, 누군가는 아예 먹거리 및 땔감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진흙에 자갈을 섞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애초에 부서질 것을 염두하여 대나무로 엉성히 움막 비슷한 걸 지어놓기도 했다.

나라가 몇 번의 쑥대밭이 되며 뒤집히고 사료가 소실되지 않았다면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되었을, 영암의 다채로운 임시 주거 건축의 가능성은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졌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뉴타운을 개발하고 개발하다 못해 영암시까지 뻗친 재개발의 환상은 이곳을 적당히 멀끔한 주거지의 숲으로 만들어 놓았다.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오고, 휴대폰 대리점이 사거리마다 생겼다. 유리가 영암에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아이스크림 바 하나에 400원씩 하는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여름을 거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올리브영에서 세일 상품을 구경하고, 집 앞 상가의 치킨 집에서 주문한 포장 프라이드를 가져와 CU에서 세계 맥주를 4캔씩 골라 오는 그런 여름 말이다.


   하지만 유리는 그녀가 대학 입시를 정해야 하는 시기에 월국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누군가는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안타까워하며 수의사의 꿈을 갖고, 누군가는 형편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명품에 대한 동경으로 패션의 꿈을 갖는다고 하지만, 그녀의 진로 선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날 본 충격적인 건물의 단면에서 어떤 강력한 이미지적 매료를 느꼈다.

  어렸을 적 그녀는 막연하게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아예 다른 세계라고 생각해 왔다. 촌스러운 벽지와 장판으로 이루어진 실내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의 안에 필연적인 설계에 의해 조성되었다고는 직관적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의 벽은 아무런 표정도 힌트도 주지 않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면 집주인이 전 날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마법처럼 그냥 내부의 공간은 뿅 하고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다 부수어져 가는 건물의 반토막을 통해 다시 깨달은 것이다. 외부가 내부를 정의하고, 내부가 외부를 형성하고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그것은 유리가 어렸을 적 너무나도 갖고 싶어 하던 인형의 집과 같은 원리였다. 인형의 집은 여닫을 수 있는 두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위에는 손잡이도 달려있었다. 닫혀있을 때는 하나의 성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열면 미미의 방은 반쪽으로 나눠지는 대신 인형의 방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그 벽에는 조악한 분홍 화장대와 거울이 붙어있었다. 무너지고 있던 건물의 내부 벽에는 장난감 화장대는 없었지만, 안방 문이 있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체리 몰딩과 나무 문, 쇠 손잡이였다.

그때 유리는 저곳에 누군가의 삶이 오랜 시간 거쳐갔음을, 도시의 수많은 네모 각진 건물 들 속에는 가지각색의 삶이 담겨있음을, 그것이 수도와 전선들로 둘러싸여 생을 영위토록 한다는 것을 번개에 맞듯 한 순간에 깨달았다. 그녀의 삶의 토막 나 부유하던 지식들이 어떤 큰 조각으로 꿰어지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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