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

#1 시아가 자라는 오늘들 - 02

by ㅇㅅㅅㅇ

입원 수속을 마치고 자연 출산을 위한 입원실에 짐을 풀었다.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내는 밀려오는 진통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과정은 교육을 통해 잘 알고 있었지만 출산의 진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한웅재 목사님의 찬송가를 틀었다. 아내가 진통이 오기까지 옆에서 등을 쓸어주며 이완을 시켰다. 그리고 진통이 시작되면 아내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는 오늘 아내의 출산을 돕는 둘라(Doula)였다.



둘라(Doula)


둘라(Doula)는 산모를 도와 '안도감'을 심어주고 산모와 남편을 이완시키는 정신적인 지지와 실제적인 출산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둘라를 '인간 진통제'라 부르기도 한다. 아내의 진통은 대신해줄 수 없지만 둘라로 곁에서 지지하고 격려하여 출산을 도울 수 있었다. 생명의 탄생을 가장 먼저 마중할 수 있다는 것은 둘라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래서 둘라를 자쳐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내의 진통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아내의 버팀목으로, 수족으로 섬겨야 한다. 그래서 무통주사 대신 아내의 인간 진통제가 되어야 한다.



진통


진통은 배웠던 대로 주기가 있었다. 아내는 진통에 지쳐갔다. 그래서 이완을 시키기 위해 진통 마사지와 호흡을 이어갔다. 아내는 잘 견디고 있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진통 주기가 짧아지고, 아기도 나올 준비를 마치면 제대로 힘을 줘야 한다는 것을. 그 시간까지 아내는 서 있기도 했고, 내게 기대 있기도 했고, 심지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기도 했다.

오후가 되니 산파 간호사님은 힘을 줘보자고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힘을 잘 주어야 한다. 소리를 내서도 부산하게 움직이지도 말아야 한다. 아랫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마치 윗몸 일으키는 자세에서 다리와 턱을 당기는 것처럼 힘을 줘야 한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막상 힘을 줘야 할 때 제대로 힘을 주기 어려웠다. 호흡도 깊지 못해 아기가 위험할 수 있었다. 계속 아내를 격려했지만 진통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없이 아내는 산소 호흡기를 꼈다. 호흡이 안정되자 다시 힘을 주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힘을 주었다.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작은 소리도 허락할 수 없다. 소리와 함께 힘도 빠지기 때문이다. 다시 힘을 주었다. 아내는 온 힘을 다했다. 놀랍게도 아기 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초음파로 보았던 머리카락이 검게 보였다. 아마 정수리 뒤쪽 뒤통수 위쪽일 것이다. 햇살이가 이제 곧 나온다.



출산(birth)과 출생(birth)


출산(birth)은 신비롭다. 생명의 탄생 앞에 느끼는 경의일 것이다. 생명은 진통을 통해 얻어졌다. 진통은 생명을 더욱 가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은 진통의 과정을 더욱 보람 있게 할 것이다.

산파 간호사님은 말씀하셨다.

"이제 더 힘을 주어야 아기가 위험하지 않아요."

머리가 끼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첫 고비는 넘겼으니 이제 머리가 잘 나와야 한다고 격려하셨다. 아내는 지쳐 보이는 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힘을 주었다. 나도 아내의 다리를 당기고 손으로 배를 누르며 출산을 도왔다.

"턱을 더 당기고 힘줘."

갑자기 아내에게 쏟아낸 한마디에 아내는 힘을 아랫배에 집중했고, 난 처음으로 햇살이의 머리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난생처음 마주한 햇살이는 고통을 감내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생생한 출산의 과정 앞에 두렵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안도하기는 이르다. 이제 어깨가 빠져나와야 한다.

다시 힘을 주었다. 온 힘을 다하자 햇살이의 어깨와 함께 온 몸이 아내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드디어 아내는 햇살이를 출산(birth)했고, 햇살이는 세상에 출생(birth)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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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에서 '셋'으로


햇살이는 첫 호흡을 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햇살이는 세상에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것이다. 생명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 한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다. 바로 '탯줄 분리'다. 탯줄을 자르면 모태와 신체적으로 분리된다. 그리고 비로소 햇살이는 독립적인 생명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탯줄 분리는 아빠의 몫이다. 질긴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햇살이와 아내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다. 감사와 간구의 간절한 기도였다.

"하나님 감사해요. 햇살이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기도를 마친 뒤 준비한 카드를 읽었다. 햇살이와 아내를 향한 소소한 사랑 고백이었다. 아내는 햇살이를 잠시 안아보고는 2차 출산을 준비했다. 태반은 출산 과정의 마지막이다. 출산의 고통은 출혈로 가늠할 수 있었다. 마지막 태반까지 출산하고 아내는 비로소 쉴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캥거루 케어를 준비했고, 햇살이는 내 품에 안겼다. 사랑스러운 딸이 내 품에서 잠들었다. 아직 안는 것도 어색한 '초보 아빠'다. 좋은 아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햇살이 생일은 9월 30일이다. 예정일보다 10일 빨리 나왔다. 햇살이는 선물과도 같이 우리에게 와주었다. 이제 우리는 세 식구가 되었다. 햇살이를 안아보고서야 실감했다. 햇살이와 함께 할 시간들이 기대된다. 설렌다.


'햇살아, 고생했어. 아빠가 햇살이를 너무 사랑해. 아빠가 햇살이 아빠여서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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