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될 준비 딱 대!
어느 날 친한 후배와 이런 대화를 했다.
후배 : 언니, 저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제가 뭘 못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나 : 어떤 면에서 일을 못한다고 느껴?
후배 : 모르겠어요..
나 : 문서 작업이라든가 지표 분석? 아님 마인드셋이나 커뮤니케이션..?
후배 : 그러니까... 종합적으로.. 그걸 모르겠어요... 제가 대체 '뭘' 못하는 건지.
사실 이런 대화는 내가 쌩신입 시절, 한 선배에게 토로한 고민과도 흡사하다. 내가 일을 못하는 것 같긴 한데 '대체 뭘 어떻게 못하는 것인지' 몰라서 답답한 그 마음...
그래서 오늘은 '일 못하는 주니어의 특징'에 대해 다뤄볼까 한다.
이 글을 읽기 전, 이전에 다뤘던 주제인 <주니어가 '일잘러' 소리 듣는 법> 아티클을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 이야기들은 '자신이 일을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는 주니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혹시나 불편한 포인트가 있더라도 '허허 이 녀석도 아직 주니어면서 동병상련이구만' 정도로 웃어넘겨주세요!
일 못하는 주니어 특징
이것은 마치 내가 PT를 끊으러 갈 때의 마음과도 비슷하다.
PT 끊어야 하는데..
-> 일단 장비 없으면 부끄러우니까 운동복과 레깅스부터 사야지!
-> 운동복이 있으니 이제 무선 이어폰을 사야겠다!
-> 장비는 됐는데... 나같은 초짜가 기구를 쓸 수 있을까? 기구 튜토리얼 영상 좀 봐야겠다.
-> 튜토리얼 보니까 대충 알겠네. 첫 날엔 인바디를 잰다는데 3kg만 빼고 갈까? 부끄러우니까...
-> 내일은 꼭 가서 끊어야지! (안감)
일을 하는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내가 아직 문서 작업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어서, 낯설어서, 실수할까봐 무서워서, 개발 지식이 없어서... 내가 부족한 것부터 보면 그 능력치를 끌어올리려 노력하게 되고, 그럼 능력치가 만땅이 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생각해보라. 지표 분석이라는 과제를 두고, 인강을 들으며 엑셀 단축기부터 공부하는 주니어와 일단 지표를 펼쳐두고 뭐라도 자기 식대로 분석하는 주니어. 누가 더 성장할까?
일단 일을 시작이라도 하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뭐라도 완성된다. 결과물이 부족하면 피드백을 받아 발전시키면 되고, 결과물이 생각보다 괜찮다면 #오히려좋아
드라마 <미생>의 레전드 명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네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인내심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피로감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승부 따위는 상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기고 싶다면 나의 고민을 충분히 견디어 줄 수 있는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결국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생>의 대사들은 문신으로 새겨도 아깝지 않을 만큼 직장인의 바이블이다.
여기서 체력은 말 그대로 신체적인 체력을 의미한다. 이 신체적인 체력이 정신적인 체력과 인내심을 관장한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나같은 경우, 체력이 떨어지면 어깨부터 결리기 시작고 점점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진다. 회의 때문에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이동하는 짧은 거리도 귀찮아지고, 회의에 집중이 안돼서 '뭐가 됐든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체력이 부족하면 일이 쉽게 피곤해지고 또 쉽게 예민해진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에 대해 감사한 마음보다 '왜 이걸 또 나한테..?'라는 마음이 우선해서 들기도 한다. 일을 하면서 자주 지치고 집중이 더 안된다면 가볍게 동네 산책부터 시작해보자. 실내에서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시작해도 좋다.
어느 회사든 '사수'의 개념이 당연히 있겠지 기대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회사에서 사수를 배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사수가 있더라도 모든 일을 알려주진 않는다. 사수든 선배든 버디든 자신의 일에 +a로 신입 관리를 부여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니어는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길 기대하지 말고 '모르는 건 물어가며 스스로'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주니어가 되어서야 왜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적 학습'을 부르짖어 왔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무조건 몸빵을 통해 실패하며 배우라는 말이 아니다. 효율적인 방법'만' 추구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미들급이나 시니어는 자신만의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효율을 추구했을 때의 리스크를 예측할 수 있지만, 주니어의 경우 이것이 쉽지 않다.
워라밸, 물론 좋다. 그러나 자신의 커리어 로드맵을 짜는 것도 본인의 몫이다. 하루가 아닌 10년 단위에서 워크-라이프의 밸런스를 잡는다면, 주니어 시절에는 '워크 비율이 높은' 시기로 잡아야 할 수도 있다.
긴긴 프로세스나 귀찮은 일들도 할 줄 알아야 나중에 어떤 일을 맡아도 구멍이 없다.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살다 보니까 틀린다는 게 정답을 맞춘다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경험치를 줄 때가 많더라고
그러니까 수없이 틀리고 경험치를 쌓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정답이 보이고
자연스럽게 적중률이 올라가는거지
역대 예보 적중률 1위의 비결은 어떻게 정답을 맞추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이 틀리는가야
틀려도 괜찮으니 일단 뭐라도 시작하고 보자.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일단 시작하는 게 빠를 수도 있다.
입사하면, 가이드라인을 전달 받을 때가 있다. 이전 업무 담당자의 인수인계 자료일 수도, 문서 템플릿일 수도 있고.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그 받은 문서를 크게 바꾸지 않고 알갱이만 쏙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백이면 백, 다시 문서를 만들어야 하더라.
딱! 가이드 받은 대로만 진행하다 보면 나에게도, 일에게도 발전이 없다. 게다가 받은 문서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내가 부여받은 업무와 결이 완전히 일치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가이드는 말 그대로 가이드일 뿐이다. 가이드를 맡은 일에 맞게 재해석하고, 내 색깔을 집어넣는 건 주니어의 몫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조직개편이 일어날 수도,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부여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에만 꽂혀 있으면, 그 생각이 진득한 뻘처럼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략 이렇다.
사내에서 인기 없는 팀이나 본인이 원하지 않던 팀의 배치되었을 경우
"팀이 왜 이렇게 배치되었지.. 같이 일하고 싶었던 팀원도 없네. 휴.. 고였다 고였어."
팀에 엘리트(?) 조직원들이 많은 경우
"이 팀은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는 주목 받지 못하겠지..? 이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기 눈치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밑도 끝도 없다. 내가 처한 상황과 조직에 대한 비관만 하면, 무슨 일을 맡아도 프로젝트 오너십이 생기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자.
사내에서 인기 없는 팀이나 본인이 원하지 않던 팀의 배치되었을 경우
"오케이. 기회가 왔다. 신입인 내가 말랑한 아이디어를 발제해서 기적적으로 이 팀을 살려보자. 어쩌면 내가 진짜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팀에 엘리트(?) 조직원들이 많은 경우
"주변에 배울 만한 사람들이 많은 난 정말 행운아다.. K님의 지표 보는 눈을, P님의 전략 스킬을, W님의 문서 작업 능력을 본받아서 올라운드 마케터가 되어야지. 흐흐 두고보십쇼"
일이든 인생이든 긍살 :>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주니어'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하다. 나도 마찬가지..
이는 [01. 모든 것을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하려고 한다]와 결이 비슷한데, '모든 것을 완벽한 상태에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런 실수를 반복한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 하나도 문서를 꼭 만들어 갈 때도 있고,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에 전략과 운영방안까지 고민해서 가져간다. 이런 업무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반복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자신의 아이디어에 고이기 마련이고, 금방 지치게 된다.
A를 논의하는 자리에 Z까지 고민하지 말고, A만 생각하자. 언제든 업무의 방향성이 바뀔 수도, 매체가 바뀔 수도, 메시지가 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자.
스타트 하자마자 전력질주 하는 마라토너를 본 적 있나요..? (일단 나는 없을 무)
마라톤 선수일수록 초장에 텐션을 잘 조절하기 마련이다.
마라토너는 아니지만 주니어에게도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2022 업무 버킷리스트에 '업무 고민은 침대에 가져오지 않기'가 있을 정도다.
주니어는 열정 뿜뿜인 시기여서 휴식에 각박하다. 아이데이션 과제를 받으면 집에 가면서도,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서도 아이데이션을 하며 메모장에 끄적거리기도 한다. 주말에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ㅠㅠ) 하지만 이럴 땐 마라토너를 생각하자..!
쉬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된다면, 취미를 가져볼 것을 추천한다.
나의 회사 동기들의 취미는 다양하다.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힐링된다. 식물 키우기, 뜨개질, 베이킹, 드럼... 나도 이런 취미들이 있다면 좋겠지만 거창하지는 않다. 나는 쉴 때 책을 읽거나 구몬수학 숙제를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틀어두거나 다이어리에 감사한 일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아직 적당한 취미를 찾는 중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잉여 에너지를 나름대로 생산-소비할 수 있는 '일 외의 시간 보내기'를 할 수 있는 구석을 만들어두자는 것이다. 연애면 더 좋고.
아무리 좋은 회사를 다니거나 만족스러운 업무를 하고 있어도 남의 좋은 소식은 잘 들린다. 어느 회사가 이번에 상장을 했다더라, 인센티브를 얼마 받았다더라,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했다더라... 괜히 내 작고 귀여운 지갑과 비교하게 되고 팀도 너무 작은 것 같고...
이렇게 되면 괜히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이직의 뿌리가 마음 속 어딘가에 단단하게 자리 잡으면, 내가 속한 회사의 애사심이나 맡은 프로덕트에 대한 오너십이 서서히 증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에 집중을 하고 잘해내겠는가!
부러워 하지 말자! 다른 회사 친구들의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의 한 꼭지 정도로 생각하자. 원래 남의 힘든 일은 작게 보이고, 좋은 일은 크게 보이는 편이니!
그래도 누군가가 부럽다면 이 노래를 추천한다.
장기하 - 부럽지가 않어 (영상 보러가기)
아 보시오!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승자다.
일 못하는 주니어 말고, 일잘러 주니어는 당최 어떻게 되는건지 궁금하다면 이전에 다뤘던 주제인 <주니어가 '일잘러' 소리 듣는 법> 아티클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