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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는, 여든 하나가 된 엄마의 하루와 닮았다

엄마의 여든 인생을 닮고 싶지 않은 이유

by 비긴어게인

"네가 제일 엄마 많이 닮았어!!"

우리집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금칙어이다.


타국에 사는 동생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어제 오래간만에 알바 뛰고 몸살 났나 봐. 안좋은 성격이랑 툭하면 아픈거 엄마 닮았어"라고. 나는 위로가 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엄마 닮은게 아니라 그 나이에 알바까지 하니까 몸살이 나는 거지"라며 애써 답 메시지를 한다.


며칠 전, 언니와 같이 엄마집에 갔을때이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로 쓱싹쓱싹 반찬을 만들고 점심을 차렸더니 언니가 한마디 한다. "얼굴은 네가 엄마를 제일 많이 닮았는데 손은 엄마를 안 닮고 할매 닮았나 봐. 부지런하고, 잘해"라고. 나는 씩 웃었다.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뭐그리 반갑고 즐거운 말이라고. 엄마의 외모나 말 안하고 삐치는 성격을 제일 많이 닮은 나였기에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말이 좋았나보다.



솔직한 이유는... 엄마의 인생을 닮는 것이 싫은 것이겠지!!


나를 포함 우리 자매는 '엄마와 닮았다는 것'을 싫어한다. 늘 자식들이 최우선으로 엄마를 위해야 하고, 모든 일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으셔야 했다. 각자의 삶이 있는데 몇십 년 지속되는, 반복적인 상황들이 이제는 각자에게도 버거운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서로서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한다. 누가 더 엄마를 닮았냐고... 아무 의미도 없는데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힘든 인생'을 닮고 싶지 않은 그 이유일 것이다. 엄마의 인생은 '결혼'이라는 둘레에 갇히면서 평탄하지 않았다. 경제력이 없는 남편!! 여덟명의 자녀들!! 한 명의 자녀가 하루에 '엄마' 한 번만 불러도 여덟 번이다. 엄마로 불리는 것이 지긋지긋하기도 할 것 같다. 외동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나름 괜찮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 탓이었을까? 엄마의 성격도, 인생도 평온하지도 평탄하지도 않으셨다. 그 삶을 닮고 싶지 않아서이다.



싫다고 해도, 여든 하나의 엄마의 삶에 내가 보인다!!

닮기 싫다고 했는데 외모도, 성격도, 그리고 하루도 닮았다


여든 하나가 된 엄마의 하루는 시간이 많다. 자녀들이 모임 통장을 만들고, 체크카드를 발급해 드렸다. 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엄마의 동선이 보인다. 참 바쁘시다. 갈 곳도 많으시고, 살 것도 많고, 할 일이 많으시다.


엄마의 이동 동선은 길고, 엄마의 인생은 여전히 바쁘시다. 편히 더 주무셔도 되는데 정해진 시간에 기상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약과 식사를 챙겨드시고, 2시간여 직접 다려서 약초물을 드신다. 자녀들의 잔소리에 안마의자에서 몸을 풀고, 저녁이면 필사를 하신다. 총 700페이지가 되는 불경을 몇 권째 필사를 하고 계신다. 하루에 1~2시간씩 손이 저리다고, 허리가 아프시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정한 루틴을 지키시는 건 대단하다. 틈틈이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이입되어 울고 웃으시고, 일주일에 2회 노래교실에도 꼬박꼬박 개근상에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


엄마의 인생에는 왜 틈이 없을까? "좀 쉬어 참내..."라고 하면서 잔소리를 하다 엄마를 닮은 나의 하루를 생각하고는 웃음이 나온다.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면 손해 본듯한, 내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잘 못 보낸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든다. 5시에 기상해서 할 일을 계획하고, 다이어리에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운동이며, 공부며, 독서며 해야 할 일만 무진장 정리를 한다.


엄마를 닮아서, 그래서 나의 하루가 엄마의 하루를 닮은 듯하다.



고단했던 엄마의 여든 인생을 닮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마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엄마를 응원한다


마음 한편에는 '우리 엄마 대단하시다'라는 생각이 든다. 여든 하나의 삶이 중년의 삶과 비슷하다는 건 그만큼 엄마가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사시는 거란 것이다.


언제 갈지 모르니...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라는 생각보다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그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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