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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27. 2018

자아실현 못하면 어때, 밥벌이면 어때

일이 자아실현의 도구일 순 있지만, 설령 아니라고 해도 어떤가

일을 통해 욕망을 충족하고 자아를 실현한다


한 출판사의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는 직업(職業)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직(職)은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개인의 직분을 의미하며 업(業)은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을 뜻한다...칼뱅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신의 부르심을 받고 있으며 이 부르심에 따라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매슬로는 일의 성취와 관련된 자아실현 욕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편 맹자에게 직업은 생계유지 수단, 사회 역할 분담 등의 의의를 갖는다. 이처럼 인간은 일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고 삶을 유지하며 자아를 실현한다.


교과명은 달라졌지만 나 역시 학창시절 '사회', 또는 '윤리'라는 이름의 과목으로 직업의 의의를 이렇게 배웠다. 직업이 '생계 유지의 도구' 뿐만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도구'로도 쓰일수 있다면 일거양득이다.


다만 10년간 사회생활 끝에 쉼을 시작한 지금 곱씹어보면 학창시절 직업관 교육은 밥벌이로서 직업을 상대적으로 홀대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직업은 생계유지뿐만이 아니라 자아실현까지 해내야 한다는 강박, 또는 직업이 생계유지의 도구가 아닌 자아실현의 도구로 더욱 방점이 찍혀서 교육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핑계지만) 더 긴 노동시간과 더 적은 월급을 감수하고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것은,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는 강박같은 믿음도 일정부분 작용한 것 같다. 실제로 입사 초기에는 물리적인 것들(노동시간과 월급)이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 자체에 도취됐기 때문이 아닐까.


성공적인 업무로 처리로 인해 얻는 조직 내 칭찬과 인정, 대외적인 평판 등은 냉정하게 말하면 내 생계유지에 더 큰 도움을 주진 않았다. 몸담았던 조직은 고용이 안정적인 조직으로 더 많은 일을 한다고 고용보장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성과가 우수하다고 해서 인센티브를 받는 조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아실현을 할수(도) 있는, 교과서에 나온 '이상적인 직업활동'을 영위하고 있다는 자평만으로 당시 회사생활은 꽤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업무를 통한 자아실현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기현상을 발견하게 됐다. 직업은, 업무는 자아실현의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직업이 곧 나 자신은 아닌데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엔 몰랐다.)


하나의 업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혹은 실패했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고,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부정당한 것은 아니며, 결과적으로 내 업무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나의 노력과 그 노력을 행한 나 자산이 의미없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런데 나는 업무에 실패한 것을 내 인생의 조각이 실패하는 것처럼 좌절했고,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처럼 힘들어 했으며,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노력을 폄하하며 자책했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은 직업이, 업무가 내 삶을 더 행복하게 잘 살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교과서 속 직업의 의의를 제대로 다시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 기대했던 것만큼 근사하고, 좋은 직업이 아님을 알게 되는 조각들을 마주했을때 느꼈던 좌절감 역시, 어쩌면 직업과 업무에 대한 과도한 환상 또는 너무 큰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꼭 사회의 어떤 존재로 기여해야 하고, 자아실현을 해야 하고, 내가 누군각 되어 무엇을 해야한다는 그 욕심이 스스로를 옥죄어 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 자신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에서 배운 '이상적인 직업관'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는 것.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땅이 꺼지는 것도 아닌데.


그저 오늘 웃을 수 있고, 상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나라면, 그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있는 것 만으로 사랑스럽고 가치있음을 잊지 않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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