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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Jun 25. 2018

누구를 위한 사명감인가

업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사명감의 정의)을 누가 강요하나


2217년 한국(출산절벽 상황을 감안하면 그때까지 한국이란 나라가 존재할지 의문이지만 아무튼)의 청소년들은 2017년 사회에서 '사명감타령'이 여러형태로 구전됐다고 배울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시퇴근을 하거나 주어진 연차를 모두 소진했을때, 나보다 (일찍 태어나서) 수천, 수만 밥그릇을 더 비운 사람들은  "요새 애들은 자기밖에 모른다"로 시작한 일장연설을 "사명감이 없다"로 끝냈다.


회사가 문을 연 뒤 처음으로 법정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했던 이에 대해서도 '사명감 없는 이기적인 젊은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법으로, 사규로 정해진 근로시간, 휴무를 지키는 것이 사명감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길이 없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한 신입사원은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다 챙겨먹고"는 자신이 꿈꿔왔던, 사명감을 꼭 가져야할것만 같은, 커리어우먼이 될 수 없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 챙겨먹는 사명감 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기로 마음먹고는 야근도, 주말근무도, 휴가 중 업무지시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주로 뒷담화로) 마주했던 '사명감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학교에서 배웠던 사명감, 직업 윤리 등이 사라지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됐다는 점이다.


어느 조직에서선 초년병때는 주어진 임무(사명.使命)를 다른 사람보다, 또 주어진 임무 이상으로 잘 해내려는 마음(감.感)이 넘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마음이 더욱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박탈감과 반감으로 돌아온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사명감의 자리에 열정, 프로의식 등이 수시로 자리를 뒤바꾸며 직원들을 힐난하는 도구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어떤 마음이나 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비판의 이유가 될 수 있다니...


실제로 누군가의 사명감, 열정 등의 유무가 제대로 측정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마음과 정신 등을 측정할 기준과 방법이 없다. 누군가 짐작하고, 여러 사람이 이를 공유하며 공고화할순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면(미수) 더 약한 처벌을 받는 사회에서 일을 열심히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힐난받다니...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했지만 이런 '어른들의 규칙'이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사명감에 대한 정의와 기억의 편린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오늘따라) 대한민국 1등 신문의 기사 속 인용구가 눈에 쏙 들어와서다.


신문은 "학교 현장에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바람이 불면서 보직교사나 장학사(교육전문직)를 기피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교육 당국은 이 같은 현상이 결국 학생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고 적었는데 기사를 보면 대책보다는 보직교사 등을 기피하는 교사들을 향한 우려(feat.질책성) 담긴 목소리를 지면의 상당부분에 할애한다.


기사에 인용된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요즘 젊은 교사 중에는 교사로서 사명감을 발휘하기보다는 최대한 일찍 퇴근해 취미 생활하는 걸 중시하는 이가 많다"며 "특히 생활지도부장 같이 학교 폭력, 학부모 민원까지 처리해야 하는 보직은 아무도 안 하려고 해서 학교 운영이 너무나 힘들다"고 했는데 어디선가 많이들은 말과 문장구조가 같아 그 문장이 금방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이런 말들은 특정한 사람들(아마도 교장선생님같은 어른들)이 (속으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으나) 특정 직업을 선택한 이들에게 해당 직업인으로서 사명감을 발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한 가지 궁금해지는 지점은 주어진 임무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직업 선택의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마음을 지니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교묘한 비판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배려하고...업무 수행 중 받는 이런 피드백들은 누군가들이 목청터져라 외치는 업무를 잘 수행하고픈 마음, 사명감,을 넘치게 만들지 모른다.


감히 단언할 수 있는건 사명감타령, 사명감이 없다며 혀를 차는 것, 사명감을 가지리고 목청 터져라 외치는 것은 절대 사명감을 만들 수 없단거다. 한때 사명감 비스무리한 마음을 갖고 싶었던 장삼이사가 보기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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