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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05. 2018

"언제 다 나아?"...재촉해서 미안해

다른사람들에겐 "괜찮다" 위로하며 스스로에겐 "이겨내라"고만 해서 미안해

많이 힘들구나. 내가 너라도 힘들것 같아

20대 시절 읽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 그레이)'를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책을 덮으며 '남자'의 심리적인 특질을 간파했다고 자평했고, 머릿 속으로 여러 시물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했다. (이런 남자가 이렇게 행동하면, 나는 이렇게 반응해야지 등)


'연습과 실전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러 번의 연애의 시작과 끝이 이어진 뒤 책의 내용은 빛의 속도로 잊혀졌지만 '공감'에 대한 대목만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거의 모든 연애에서 싸움의 시발점이 이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신뢰받기를 원하지만 여자는 관심을 원한다. "여보,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자가 물어주면, 여자는 그의 자상한 마음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물으면, 남자는 그녀가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아 모욕감을 느낀다. 남자들은 공감과 동정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동정받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본문중-


공감받길 원해서 어려움을 털어놓았지만, 상대는 신뢰받기 위해 '공감지대'를 뛰어넘어 '해답찾기 영역'을 열심히 누비는 모습을 여러번 목도했기 때문이다. 모든 남자들이 모든 여자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나는 관심과 공감을 원하는 여자였고, 불행하게도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공통적으로 신뢰받기를 원하고 동정받는 것을, 또 (나의 입장에서는 공감히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동정하는 것을 싫어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공감'은 중요한 화두였다. 에너지가 가능한 상대의 처지에, 이야기에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나이를 먹으며 쌓여가는 경험을 '선입견'이 아니라 '동변상련'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기위해 애썼다. 경솔하고 성급한 천성이 갑자기 바뀔순 없겠지만, 이런 스스로를 인정하고 노력한 끝에 겨우 평균치만큼 공감능력을 올려놓은 것 같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힘든 거 빨리 털어내고 일어나" 라고 이야기하는 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본인도 털고 싶은데 못하니까 힘든 거잖아요. 용기를 준다고 한 말이 오히려 상대를 힘들게 하는 잔소리가 될 수 있어요. 대신 "많이 힘들구나. 내가 너라도 힘들 것 같아" 라고 공감만 해 주세요. -혜민스님 페이스북 글-


(상대는 고민끝에 내놓은 조언이었겠지만) 힘든 가운데 들었던 조언들에 (상대가 의도치 않은)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고민상담을 들을땐 그냥 들었다. 대개는 듣기만 해도 절절하게 공감되는 경우가 많아서 "얼마나 힘들었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실은 고민을 듣는다고 해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해줄것이 없었다. 경험도 일천한데다 특별한 재주나, 혜안이 없는 내가 '조언'을 해줄 능력이 안 됐다. 결국은 "힘내라", "잘 될꺼야"는 말 말고는 해줄말이 없었다. 다만 "빨리 극복해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깐.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살을 돋게 하더라.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해내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장애(우울증의 진단명은 '우울장애'더라) 진단을 받고 의식적으로라도 "괜찮다"는 말을 많이 했다. 계획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었는데, 일정이 빗나가거나 계획대로 일이 처리되지 않았도 일부러 소리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괜찮다"고 말했다. 주문처럼 "괜찮다"를 외쳤다.


겉으로는,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실상은 별로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어느새 주치의에게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냐?',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할까?' 등의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괜찮다"가 아니라 "괜찮아 져야한다", 아니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짐짓 상처받아 아파하는 스스로가 문제있고, 비정상적인(물론 건강하지 않은건 분명하지만) 존재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하는 다른 이들에겐 "많이 힘들겠다. 내가 너라도 힘들것 같아"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겐 "힘든거 빨리 털고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아이러니. 나 자신도 털어내고 싶지만, 상처를 털어내지 못하고, 힘듦을 그저 견디고 있는 것인데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왜 다른 사람의 절반만큼이라도 나를 보듬지 못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마음대로 되지 않는것이 마음이예요. '어떻게 돼야한다'가 통하지 않는게 마음이죠.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조금 지켜봐주세요. 언젠가 바닥을 짚고 일어나 손을 툭툭 털날이 있을테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좀 시간이 걸리면 어때요. 건강해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나은것 같았는데 다시 아프면 더 힘들잖아요" 주치의가 차분한 목소리로 다독였다. 근데 그의 말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어쩐담.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잘 해내고 있다.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당신에겐 더 큰 능력이 있다. 당신은 하는 일은 그렇게 엉망이지 않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의미있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 생각보다 당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당신을 봐도 좋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님의 말이다. '당신'의 자리에 '나'를 넣어봤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해내고 있고,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나를 봐도 좋다고. 앞으로 '괜찮다'보다는 '충분하다'는 주문을 해야겠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충분히 더 잘 해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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