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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Jun 01. 2018

밥 잘 안 사주는 안 예쁜 누나

밥 잘사주는 예쁜 동생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


"여름되기 전에 얼굴 봐야죠!" 아는 동생에게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타사 관계자로 만나 후배, 동생이 된 그 아이에게. "날 잡자!"


회사를 다닐때 선배나 선임에게는 밥먹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동생, 후배, 후임들에게는 먼저 밥먹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떤이에게는 내 제안 자체가 부담이 될수도 있어서.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나오는 식사 요청에도 덥썩 응하지 않았다. 인사치레일 수 있는 말에 덜컥 응해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기 싫었다. "날 잡아요"라는 답이 돌아오면 그제서야 밥먹을 날짜를 잡았다. 밥 잘 안 사주는 안 예쁜 누나였다.


불쑥 연락온 그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김춘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줘서 고마웠다.



대학생 시절, 사회생활 초년병 시절 선배, 선임과 밥을 먹으면 감사하게도 대부분 그들이 밥값을 냈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얻어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선배, 선임이 돼 후배, 후임들과 밥을 먹을때는 항상 밥값을 냈다. (물론 아무도 내게 이런 행동을 요구하거나 압박하거나 당연시한 적은 없다. 그냥 내가 그래야한다고 생각한거다)


일을 쉬게 된 뒤 동생, 후배, 후임들에게 쉬이 연락을 할 수 없었던건 밥값을 낼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아놓은 돈 까먹는 처지이기도 했고, 같이 일하지도 않는 선배, 선임이 괜히 만나자고 나서는 것이 성가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피해의식같기도 하다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먹자"며 연락오는 후배들은 기쁜 마음으로 밥을 사주기 위해 위해 체크카드계좌로 돈을 이체해 집을 나섰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는 일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행운인지 불행인지 밥을 사주기 위해 나간 자리에서 목적(?)을 달성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화장실 간 사이에 밥값을 이미 결제했거나 결제하려고 나설때마다 한껏 목소리를 높여 "이번엔 제가 살테니 일을 하게 되면 그때 비싼 밥을 사시라"며 손사래를 친다.


선배, 선임들에게 늘 얻어먹었으면서 놀면서 돈을 까먹는 처지가 되니 염치없이 슬그머니 카드를 넣게 된다. "돈 버시면 엄청 비싼거 얻어먹을 것"이라는 너스래가 고맙다 못해 감동스럽다.


몸과 마음, 영혼까지 갈아넣었던 직장생활, 몸과 마음을 모두 놓게 만들었던 그 안에서 딱 하나를 챙겨간다면 역시 사람들인것 같다. 항상 감사했지만 밥 잘사주는 예쁜 동생을 만난 오늘, 왜 더 격한 감동이 밀려올까.


아...나는 일을 하나 안 하나 밥 잘 안 사주는 안 예쁜 누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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