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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08. 2018

나약해서 우울증에 걸렸다고요?

감기에 걸렸다고 면역력을 키울 의지가 없었다고 비난받거나 자책하진 않는다

내 의지, 네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 매일 울어본 경험이 2번있다. 한번은 2012년 부활절로부터 한달이다. 부활미사가 끝난 뒤 선유도에서 만난 남친은 이별을 통보했다. 그 자리에서 4시간을 울면서, 지하철역까지 따라가 매달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바꿀순 없었다.


그날로부터 한달 동안 출근 전과 퇴근 전 그의 집에 편지를 배달했다.(당시 출근 시간은 새벽 6시였고 퇴근은 자정이었다) 물론 매일 울었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한 아주머니가 휴지를 쥐어주시기도 했다. '우울증이 걸렸나', '병원을 가볼까'고민도 했다.


한달 간 '질척거림'에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달 말, 그의 아버지의 생신때 케익과 선물을 보내며 '이게 마지막'이라고 마음 먹었다. 물론 선물 배달 이후에도 연락은 없었다. '이건 안 되는 일이구나' 거짓말처럼 눈물이 멎었다. (두달 후 그가 연락와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지 않았다. 그를 볼때마다 찌질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사력을 다한 뒤 정리한 마음은 돌아오지 않더라)


다른 한번의 경험은 휴직 전 반년이다. 9년째 격무부서, 쏟아지는 업무에 처음엔 분노했고 이내 체념했다. 격무에 따른 어려움을 아무리 호소해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하루 평균 6시간 이하 수면, 12시간 이상 근무, 주6일 이상 출근.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 이었다.


'몸이 아프면 오늘 출근을 안해도 될까? 얼마나 아파야 할까', '결혼하고 임신을 하면 부서를 옮겨줄까?' 별에 별 생각을 다 하던 날들이었다. 결론은 '어떻게 해도 이곳을 나갈수 없다'는 절망감 이었다. 거의 매일 울었다. '남들은 다 괜찮은데 내가 나약해서'라고 생각했다. 3번째 번아웃, 2번의 응급실행 모두 '내탓'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일부도 '니가 의욕이 넘쳐서', '니가 나약해서'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이러다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달려간 신경정신과에서 의사가 말했다. "어떻게 몸이 아파서라도, 임신해서라도 부서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일을 시키나요. 환자분은 '힘듭니다',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못해서 병이 나셨네요. 하지만 환자분의 상태가 본인이 나약하거나 문제를 극복할 의지가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소화불량때 '소화를 잘 시켜야지'라는 의지를 갖는다고 소화가 잘 되나요?
우울증도 다르지 않습니다.

의사는 일단 우울증이 생긴 환경을 바꾸는 것과 자신을 마음을 잘 읽는 것이 치료에 중요하다고 했다. 또 약물치료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했다. 소화불량때 '소화를 잘 시켜야지'라는 의지를 갖는것 만으로, 감기가 걸렸을때 '감기가 나아야지'라는 의지만으로 소화가 잘 되고 감기가 낫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조정해줄 약과 나 자신을 관찰하며 스스로를 잘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장 시급한 것는 우울증을 유발한 환경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차례의 격무호소에도 인사이동은 없었고 좌절감은 극에 달해있는 상태였다. 의사는 "정신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은 위험할수 있다"며 인사이동이 어렵다면 병가나 휴직을 권했다. 퇴사 대신 일단 휴직을 선택한 이유다.

휴직 전까지 나의 무력감과 우울감은 온전한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미움받을 용기' 등 각종 심리학책을 섭렵(?)하다시피 읽었다. '그래. 결국 의지의 문제구나. 내 문제였어' 심리학책을 읽고 위로받고 호전되기도 했다. 아주 잠시지만.


휴직을 하니 거짓말처럼 '데일리 눈물'이 사라졌다. 당시 진단을 위한 정밀 검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의사에게 "저 요새 너무 기분이 좋은데 진단이 안 나오는것 아닌가요"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의사는 농담섞인 말투로 "이 정도 휴식으로 (우울증) 진단이 안 나올 상황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받아쳤다. 그만큼 내 상황이 심각했단 이야기다)


지금도 누군가 나를 위로해 줄때나 옛날 일을 떠올릴때 이따금씩 눈물을 흘리긴 한다. 하지만 예전만큼 맥락없이 울진 않는다. 휴직 전에는 "독감이 걸려서 고생하다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는 엄마의 말에도 눈물을 펑펑 쏟아 엄마가 어쩔줄 몰라했다.


치료를 시작하고 약을 먹기 시작한 뒤 눈물이 말랐다고 해도 될만큼 줄었다. 가장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고 운 것이 다다. 왜 진작 치료를 하지 않고 반년 동안 말라갔을까(휴직 전 만나는 사람마다 '다이어트를 왜 이렇게 빡세게 한거냐'고 물었었다.)


회사일로 힘들어하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마음의 감기'라는 별명처럼 우울증은 감기나 위장장애 같은 그냥 병이다.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화되면 위장장애가 생길수 있듯 우울증도 다른 여러 질환처럼 생길수 있는 병이라고 말이다. 물론 면역력이 좋은 사람이 자가치유력만으로 병을 이길수도 있다.


우울증의 면역력이라고 한다면 내 마음을 잘 읽고 다스리는 것인것 같다(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므로 이런 정의는 내 생각에 불과하다).마음의 면역력이 약해 우울증이나 번아웃을 경험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통상 면역력 약화 등을 이유로 질병에 걸렸다고 해서 과거 약이나 건강보조제를 먹어 면역력을 키우지 못했던 나를 자책하진 않는다. 아픈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몸이 아플땐 병원으로 간다. 마음이 아플 때도 그래야 한다.


마음이 아픈 이들이 의지박약이나 스스로 그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책하지 않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비수를 꽂으며 더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나와 네가 모두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관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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