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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23. 2018

동병상련은 있어도 역지사지는 없다

당신의 입장이 돼보고 나서야 당신을 이해하게 됐다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어?


일을 쉬게 된 뒤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장롱면허 탈출'이었다. 입사 후 얼마되지 않아 운전면허를 땄지만 직후 교통사고가 난 후 한 번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어머니집에서 머물머 요양을 하다보니 기동력이 떨어지기도 했고, 시간부자가 된 만큼 이참에 도로연수를 받기로 했다.


혹시 교통사고의 트라우마가 남아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생각보다 운전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운전을 시작하면서 무단횡단을 하거나 신호위반을 하는 보행자가 이상하게 자꾸 눈에 보였다. 운전을 할때 뿐만이 아니라 걸어다닐 때도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차를 타고가며 멀리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가 보였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어?" "너도 운전자가 되어 간다는 거지. 너도 차 안 오면 무단횡단이나 신호위반 하자나? 언제는 차들이 보행신호 무시하고 달린다고 난리더니ㅎㅎ" 보행자때는 보행자의 눈으로만, 운전자때는 운전자의 눈으로만 도로를 보고 있는 내 좁은 시야가 우스워서 머슥하게 웃었다.



감사하게도 큰 굴곡없이 어린시절을 보냈다. 노력한 만큼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어왔어일까. 좋지 않은 결과를 얻는 이들에 대해 아무런 근거없이 '노력부족', '의지부족'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열심히 하면 당연히 결과가 따라 오는 것인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대해 '컨디션'이나 '운'을 이유로 대는 사람들이 어른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입에 실패하고(당시 노력한 만큼 보상(수능 점수)받지 못했다고 억울해 했었다), 유학(등록금 안 드는 유럽쪽)과 재수를 고민할때 쯤, 대학에서 '추가합격' 통보 받았다. 나름의 우여곡절을 거친 뒤에야 어설프게 누군가를 규정했던 과거를 크게 반성했다. 성실이 곧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성과에 '운'이 노력 못지 않게 큰 영향을 줄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경험들이 없었다면, 아직도 나는 어떤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의지박약'의 딱지를 붙였을지도 모른다. 그를 모르면서, 과정을 모르면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규정하고, 배제하는, 선입견을 갖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뒤에도 크고 작은 선입견 갖기는 계속됐지만, 어린시절 작은 실패의 경험이 가끔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줬다.



우울증(정확히는 '우울장애')과 신경정신과 치료, 정신관련 질병환자들에 대한 선입견도 내가 경험한 뒤에야 겨우 깨졌다. 첫번째 번아웃 증세를 경험한 뒤 생전 처음 정신과 내원당시 휴식과 진료를 권유받았음에도 실천하지 않은 것은 정신과 진료에 대한 선입견이 크게 작용했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 같다' 그래서 2번의 번아웃 증세를 더 경험할때까지, 응급실에 2번 실려갈때까지 다시 병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질병에 대한 근거없는 나의 선입견이 나를 옥죈 셈이다.


"우울증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떠내자 많은 이들이 "실은 나도 치료를 받았다", "우울증도 여러가지 질병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때까지 너무 힘들었고, 받아들이니 후련했다"고 자신의 아픔을 다시 털어놓았다. 내가 아프니 네 아픔이 보였다.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껴안은 것이다.



몇 년 전 몸 담았던 회사가 파업에 들어간 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파업을 해보니 앞뒤사정 모르고 무조건 파업이라면 비판하는 목소리와 죽자고 하는 파업에 사람들이 보이는 무관심이 참 힘드네. 긴 시간 파업을 했던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아. 동병상련은 있어도 역지사지는 없는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 졌다. 스스로 공감능력과 이해능력이 좋다고 자평해왔는데, 그동안 내가 살아온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머리로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별다른 근거없이 내가 만들어 놓은 선입견으로 상대를 대했던 적이 적지 않았던것 같다. 아니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대상없는 분노와 화도 쉴틈없이 분출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왜 나만 아픈거야!' 하지만 아프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내 마음이 조금 생겼다. '아픈만큼 성장한다'는 훈계를 너무너무 싫어하지만, 그저 아프기만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그 깊이와 모양은 다를지언정 상처받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지금의 아픔이 내 인생에 '완벽한 마이너스'는 아닌것 같아 다행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내가 아프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나는 아직 설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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