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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13. 2020

콩(시시콜콜한 보람)

봄_3월 17일의 탄생화

매주 한 편의 글을 쌓는 일이란 얼핏 쉬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해야 하는 한편,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는 컴퓨터 앞에 정갈한 자세로 앉고, 책상 위는 깨끗해야 합니다. 따뜻한 녹차나 커피와 함께 초콜릿 몇 조각이 깨끗한 책상 위를 채우고 10여 분 간의 명상을 마친 맑은 정신인 상태에서야 비로소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무지 저는 글을 써낼 수가 없습니다. 그 상태가 아니고서는 명문장을 뽑아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글 쓸 준비를 하는 일이란, 평일은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이면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 저 같은 회사원에게, 몇 주에 한 번이나 일 년에 단 몇 번만 찾아오는 기회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쌓는 일이란 기어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한 편씩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글 쓸 준비를 하지 않고도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 휴대폰으로나마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엔 명문장이 있을 요량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지 일주일에 최소한 한 편의 글을 쌓으려 할 뿐입니다. 명문장은 명문장가에게 맡기고 저는 그저 짧은 제 생각을 한 편의 글에 담습니다. 편하게 써 내려간 글은 그렇게 쌓입니다. 지금의 글은 한 문단을 엎드려 휴대폰으로 쓰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엎드려 아이패드로 쓰고 있습니다. 그저 이렇게 하얀 여백을 채워나갈 뿐입니다. 그러면 곧 당신에게 제 생각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도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썼다고 말입니다. 

실은 이런 식의 글을 시시때때로 쓰는 편입니다. 글을 쓴다고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라도 글을 쓰는 일은 좀처럼 있지 않을 테니까요. 고작 해봐야 몇 주에 한 번이나 일 년에 단 몇 번만 찾아오는 책상 위에서의 기회에서야 글을 쓸 테니까요. 그렇게 하긴 싫으니 시시때때로 글을 쓴다고 이야기하는 글을 씁니다. 그렇게 한 주의 글을 써내고 나면 조금은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그 글을 당신에게 전하고 나면 시시콜콜한 보람이 생깁니다. 그 힘으로 그다음 주도 모든 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글을 씁니다. 누워서도 쓰고, 엎드려서도 씁니다. 그저 쓰는 일입니다.

그저 쓰는 일은 사실 그리 달콤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쓴맛이라고 할까요. 그 씁쓸한 맛을 계속 쌓아둡니다. 달콤하다고만 생각하는 초콜릿이 실은 씁쓸한 카카오의 맛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언젠가 이 씁쓸한 맛이 달콤한 초콜릿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렇게 씁니다. 오늘도 이렇게 씁니다.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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