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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Nov 06. 2024

포근한 완성

| 여름 내내 책상 위에서 찻잔 밑을 받쳐주던 티코스터를 교체하기로 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만, 날씨가 쌀쌀해지니 좀 더 포근한 것을 책상 위에 두고 싶어졌다. 따스한 스웨터 느낌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컵을 올려둘 때, 기분 좋게 폭신할 느낌을 상상하며 패브릭 소품을 파는 쇼핑몰을 살펴보다가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 티코스터는 크기가 손바닥만큼 작으니 뜨개질을 조금만 배우면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검색해서 마음에 드는 털실과 도안, 줄바늘을 샀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주제에 재료와 장비에 대한 욕심부터 생겨났지만, 내 손으로 만든 무언가를 직접 쓰고, 주변에도 선물할 생각으로 마음이 들떴다. 내가 산 뜨개질 패키지는 왕초보용이었고, 별 하나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 부담도 크게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목도리를 짜 본 경험이 있었다. 물론 완성하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 설레는 마음으로 뜨개질 선생님의 동영상을 보며 열심히 따라 뜨기 시작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실 잡는 법을 먼저 배우고 14개의 코를 끼우는 것만 해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몇 번이나 끼웠다 풀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복슬복슬, 귀엽게만 느껴지던 극세사 실의 올이 지저분하게 풀어져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몇 번의 실패 후 시계를 보니 벌써 40분이나 흘러 있었다. 괜히 신경질이 나서 그만둘까 하다가 근래 이렇게 아무 목적 없이 몰두해서 한 일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 봤다. 그래, 이건 어떻게든 완성해야겠어. 완성해야만 해. (갑자기 목적이 생겼다)


|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겉 뜨기로 들어갔다. 단순히 끼우고 걸고 빼는 동작을 반복하면 그만이었는데도 생각이 잠시 흐트러질 때마다 코를 빼먹거나 더하기도 했다. 중반정도 짰을 때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기서 다시 풀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전진. 또 전진.


| 2시간 정도 씨름한 끝에 손바닥만 한 티코스터 하나가 완성되었다. 내가 목표한 모양은 정사각형이었지만, 완성하고 보니 어딘가 찌그러진 사각형이 되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완성이다. 야호! 갓 끓인 작두콩차를 담은 머그컵 아래에 처음 만든 티코스터를 깔아보았다. 작은 잔디같이 푸릇푸릇 귀여운 내 첫 티코스터. 계속 보니 찌그러진 모양도 그럭저럭 귀엽게 보였다. 쓸만해 보였다.


| 어쨌거나 완성했으니 다음에는 더 낫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사각형에 가깝게. 원형, 마름모꼴을 뜨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사각형을 완벽히 뜰 수 있을 때 도전해야지. 이제 시작한 것은 함부로 건너뛰지 않을 생각이다. 사소한 일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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