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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Nov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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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아침이었다. 냉장고 속의 묵은 음식과 빈 그릇을 꺼내고, 새롭게 채워 넣을 식료품을 인터넷 장보기로 주문해 두었다. 책상과 탁자, 각종 가전 위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청소기로 바닥 청소도 했다. 세탁기에 이불을 집어넣고 빨래를 하고, 다 된 빨래는 건조기에 돌렸다.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빈속을 달래 줄 사과와 빵, 달걀 프라이와 커피를 먹었다.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가기로 결정했다.


| 11시에 오픈하는 동네 카페는 겨우 10분 지났을 뿐인데 작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자리가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적당한 크기의 카페였다. 다행히 내 자리 하나는 남아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자리에 가방을 놓아두고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 앞으로 갔다. 커피는 이미 마시고 나왔기 때문에 차를 마시기로 했다. 따뜻한 얼그레이 한 잔과 집어 먹을 작은 과자 몇 개. 가져온 책과 글을 쓸 도구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 두고 잠시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 카페 안의 음악이 들리다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면 몰입했다는 뜻이다. 마구 얽힌 이어폰 줄처럼 풀리지 않던 소설의 한 갈래가 조금씩 풀어지는 모양을 쓰면서 지켜보았다. 이 길이 아닐지라도 이날은 이 길을 가야만 할 것 같았다. 내일 다시 고치더라도 오늘은 이 문장을 쓰겠다는 마음. 쓰는 동안 조금씩 내 자리를 찾아간다. 전날보다 한 두 줄 더 쓴 것 같아서 기뻤다.


| 넷플릭스에서 아무 정보 없이 짧은 영화 하나를 골라 플레이했다. 주인공이 위기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결말. 예상 가능한 이야기여도 희망적인 마무리여서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망가졌다고 체념하는 주인공에게 누군가 말한다. 망가져도 희망은 있다고. 그녀는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일 처지에 놓였지만, 그 와중에도 눈 깜빡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켜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 한때는 지켜보는 일이, 무언가를 계속 들여다보기만 하는 일이 한심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보고 있다는 것은 다시 밖으로 나갈 구석을 궁리하고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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