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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날벌레 03화

3. 럭키

소설 <날벌레> 3회

by 김영주

5년 전, 무대 위에서 쓰러진 직후 배우는 당시 소속사가 연결해 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어린 시절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착오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속사에서 낸 기사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지만, 그녀의 불안이나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한 단어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히 배우가 아역에서 벗어나기 위한 성장통을 치르는 중이라는 한 연예 기자의 칼럼 덕분에 여론은 그녀에게 한동안 호의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쉬는 동안 찾아온 명주도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


"네가 학폭이나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언니가 도와줄게."


그 말에 그녀는 약간의 희망을 얻긴 했었다.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해 다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게 된다면, 명주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할 자신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재능 있는 또래 배우들의 신작 소식과 수년째 고정으로 맡아온 음료 광고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새로운 소녀의 얼굴을 지켜보는 것은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TV와 매체를 멀리한 채 서서히 외부 활동을 줄여가고 있었다. 회사도 배우와 재계약을 원하지 않았다. 더는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고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일과 관련한 모든 사람의 연락처를 지우고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갔다.


동네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던 그녀의 부모는 딸의 상황을 듣고 한동안 충격받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우가 ‘리나’로 벌어들인 수익은 그들이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노후를 보장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이었지만, 부모는 굳이 극 중 리나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인 햄버거 프랜차이즈 사업을 창업했고, 몇 년도 되지 않아 철저히 실패했다.


그녀의 부모에게도 갑자기 찾아온 리나의 성공은 행운이 아닌 착오였던 것일까. 그녀가 알기로 현재 그들에게 남은 전 재산은 작은 동네 편의점이 전부였다.


한동안 아르바이트생을 대신해 일을 돕던 그녀는 가게 벽 한쪽에 붙어 있던 빛바랜 음료 광고 포스터를 볼 때마다 기분이 우울해졌다.


포스터 속에서 흐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리나'의 얼굴 밑에는 서툰 글씨로 휘갈긴 어설픈 사인과 한때 ‘비혈연 모녀’의 마지막 세트장에서 찍은 다정했던 세 가족의 빛바랜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부모님이 기다린 건 언제나 ‘리나’였다는 것을.


그녀는 집에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극 중 효녀였던 리나가 해내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부모에게는 다시 연예기획사를 알아보겠다는 명목으로 500만 원의 돈을 요구했다. 일을 시작할 때 미성년자였던 그녀는 부모에게 모든 수익 관리를 맡겼었다. 결국 그 돈은 그녀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돈이 되었다. 부모는 그 와중에도 '잠시 빌려주는 돈'이라며 생색을 냈지만 말이다.


다시 상경한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소속되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가까운 역삼동 고시원에 10개월 치 월세를 납부하고 오직 건물 안에서만 지내기 시작했다.


아침에 깨어나면 고시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피시방에 가서 하루 종일 PC 게임을 하며 '나리'라는 ID로 아침을 시작했고, 게임을 중계하는 여러 유튜브 방송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끼니는 고시원에서 제공되는 밥이나 라면, 가끔 건물 내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해결했다. 게임 속에서는 아무나 만났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고시원 복도나 휴게실에서 가끔 마주치는 이들과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스쳐 지냈다.


나리는 리나와 달리 외로웠지만 자유로웠다.


어느 날, 그녀의 유튜브 알고리즘에 '사라진 국민 장녀 리나의 안타까운 근황'이라는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영상은 건물 내 피시방이 리모델링 공사를 하게 되어 몇 달 만에 건물 밖으로 나간 날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동안 카메라는 고사하고 거울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던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오랜만에 화면에 비친 자기 모습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연예계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방치된 피부와 머릿결은 푸석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먹고 전혀 움직이지 않다 보니 몸무게는 어느새 15kg이나 늘어있었다. 초라한 '나리'의 모습을 직면함과 동시에 그녀는 자신을 여전히 '리나'라고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쓰러지지 않았다. 고시원 방이 떠나가라 통곡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가 느낀 괴로움의 크기만큼 지루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부분 제목을 따라 그녀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주를 이었고, 과거 리나의 사진과 현재 모습을 비교한 사진 아래에는 '노숙자가 된 리나의 안타까운 근황'이라는 제목의 뜬소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개중에는 과체중이 된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욕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심장을 완전히 내려앉게 한 것은 리나가 다시는 배우 생활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확정하는 사람들의 댓글이었다. 절망한 그녀는 먼지 같이 남아있던 미련마저도 털어내기로 했다.


거의 1년 만에 집에 전화를 걸자 부모는 편의점 운영마저 적자여서 곧 정리할 예정이라는 숨겨온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빌린 돈’은 언제 갚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돌아갈 집도, 고시원 생활도 지속할 수 없던 그녀는 우연히 숙식이 제공되는 유기 동물 봉사 센터의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오로지 개와 고양이들 사이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다시 몇 년이 흐른 뒤, 그녀는 유기 동물을 주제로 한 독립 출판 잡지와 봉사자의 관점에서 인터뷰하게 되었다. 지면 구석에 실린 짧은 인터뷰였다.


인터뷰 속에서 그녀는 육식을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었고, 몸무게도 조금 줄어든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어느 가십 채널 기자의 SNS에 캡처되었고, 곧 '달라진 리나의 최신 근황'이라는 제목의 쇼츠와 피드로 재편집되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댓글이 줄지어 올라왔고,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동물보호소 봉사자들만큼 사명감과 소양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입소한 아이들을 씻기고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이 많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없던 알레르기까지 생겨서 고생하던 참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시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하루 종일 댓글에만 빠져 일에 집중하지 못하던 그녀는 결국 새로 입소한 유기견을 씻기는 과정에서 가벼운 물림 사고를 당했고, 그 핑계로 보호소를 나가겠다고 선언 후 곧장 명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를 물었던 그 작고 가엾은 개의 이름은 '럭키'였다.



다음 편은 내일 이어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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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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