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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날벌레 04화

4. 먹고 싶어

소설 <날벌레> 4회

by 김영주

언제 잠들었던 걸까.


배우가 눈을 떴을 때도 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배우는 차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얼굴 속에서 '안타까운 나리'는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해냈어.


고속도로로 진입한 차가 속도를 높이자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아까 그것을 보았을 때도 심장이 뛰었지만, 그건 누군가와 깊은 교감을 느낄 때 갖는 설렘에 가까웠다.


이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교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주로 혼자라고 느낄 때가 대부분이었다. 연기를 할 때면 노련한 상대 배우의 아우라에 압도되어 이입할 때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물리적인 연기일 뿐 그걸 교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직 어렸던 배우는 그럴 때마다 외로움을 느꼈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그깟 날벌레 따위와 교감이라니...!


배우는 또다시 떠오른 그것의 생각을 떨쳐내듯 서둘러 차창을 열었다.


윙-


매연이 뒤섞인 차가운 바람이 곧장 얼굴 위로 날아들자 배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 그녀의 오른손등 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물을 살짝 쏟았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뜨고 내려다보자, 연보랏빛으로 반짝이는 투명한 날개가 보였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분명 아까 보았던 '그것'이었다.


"에어컨 켜줄게. 문 닫는다."


명주가 예민한 말투로 말하며 차창을 닫았다. 순식간에 그것이 빠져나갈 구석은 완벽히 차단되었다.


그녀는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4장으로 나눠진 아름다운 날개는 가까이에서 보자 각기 완만한 사다리꼴 모양이었고,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며 영롱한 빛이 났다. 고양이 수염같이 길고 가는 더듬이 아래 흑진주처럼 반짝이는 동그란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무표정하게 자신을 훑던 냉정한 카메라의 눈들과 분명 달랐다.


평소에도 배우는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무서운 건 카메라 밖의 사람들이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은둔 생활을 했던 고시원에는 꼽등이나 바퀴벌레, 모기, 그리마 같은 해충이 자주 나왔고, 그때마다 그녀는 주저 없이 그것들을 잡아 죽였다.


좁은 직사각형 구조의 관처럼 생긴 방에 그것들과 공생할 공간은 거의 없었다.


예외였던 것은 숨구멍처럼 뚫린 작은 창으로 간혹 날아 들어오는 나비나 벌, 파리, 매미같이 날개 달린 것들이었다. 그녀는 그런 ‘부류’는 절대 죽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얼마든지 밖으로 빠져나갈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피를 악착같이 빨아먹고 배를 불린 모기 외에 날개가 있어 날아 들어온 것들은 모두 창을 열어 다시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어쩌면 그때의 보답일까.


그것은 배우의 손등에서 언제까지나 머물 것처럼 기척이 없었다. 부채질하듯 움직이던 날개조차 가만히 멈춰있었다. 멀리서 보면 손등에 새겨진 타투나 액세서리처럼 보일 만큼 그것과 배우는 완벽히 어우러져 보였다.


배우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운전 중인 명주를 살펴보았다. 앞만 보며 달리는 명주는 재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쳇 베이커의 음악에 한껏 빠져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누구도 배우와 그것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다시 그것을 뚫어질 듯 지켜보던 그녀의 입속에 점점 침이 고이고 있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먹고 싶어.


그 생각을 하자마자 배우는 손등을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그것은 그 와중에도 배우를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날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흡입하듯 그것을 입속으로 가져갔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정도의 찰나였다.


급히 앙다문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입천장이 간질간질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입안에서 새 찬 날갯짓을 하는 그것의 움직임을 음미하듯 느꼈다. 온 피부에 소름이 돋아났다. 아직은 입을 열어 그것이 다시 날아갈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예전의 배우였다면 자신에게 날아 들어온 것이 어떤 기회인지도 모르고 무방비하게 내보냈을 것이다.


이제는 뱉고 싶지 않았다. 씹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을 차마 이로 으깨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혀를 움직여 단숨에 그것을 삼켜버렸다. 목구멍에서 식도를 지나 묵직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과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곧 만족스러운 포만감이 전류가 퍼지듯 온몸에 가득 퍼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에 가까운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명주가 백미러로 그녀를 살폈다.


"괜찮지?"


배우는 말 없이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대답이 필요 없는 물음이기 때문이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소설 <날벌레>는 매일 연재됩니다.


*이미지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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