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날벌레> 5회
명주의 계획대로 배우는 사람들과 업계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굳이 저급하기 짝이 없는 노골적인 의상으로 성적인 면을 부각했다는 의견과 그녀가 성인 배우로 재기하기 위한 각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의견, 모든 걸 다 벗어던지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파격적인 시도였다는 의견 등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해석과 견해가 엇갈리면서 높은 화제성을 끌었다.
다른 배우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신비한 분위기와 난해한 의상마저도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독보적인 눈빛과 미소가 인상적이라는 어느 대중평론가의 평가가 SNS에 리트윗 되면서 호응을 얻기 시작하자 명주는 곧바로 해당 글이 대부분의 견해인 것처럼 보이게끔 각종 SNS 채널에 비용을 투자해 바이럴 마케팅을 펼쳤다.
배우는 평론가가 올린 그 사진이 찍힌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이제 그것은 그녀의 완벽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것을 완전히 삼켜버린 이후, 허기를 전혀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명주가 건네는 약도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도 피부는 날이 갈수록 윤기가 흘렀고, 몸은 보기 좋은 균형과 근육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모두가 감탄한 그날의 사진처럼 배우의 눈빛은 점점 그녀만의 분위기로 깊어졌다. 그 독특한 이미지 때문에 콘택트렌즈 광고에 섭외되는가 하면 톱스타들이 오랫동안 유지한 커피 광고의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제 막 복귀한 데다 아직 차기작조차 정해지지 않은 그녀로서는 놀라운 수확이었다.
정말 ‘그것’ 때문인 것일까?
배우는 ‘리나’로 지냈을 때도 그랬듯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광고 현장에서는 그녀가 실수한 NG 장면마저 너무 좋다며 그대로 쓰겠다고 했고, 짧은 매거진 인터뷰에서 스쳐 가듯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은 그대로 광고 문구가 되었다.
그녀에게 진짜 '옷'을 입혀주겠다는 여러 브랜드의 협찬 제안이 쏟아졌고, 팬들은 매분, 매초 늘고 있었다.
명주의 제안으로 시작한 유튜브는 5분 남짓한 짧은 인터뷰 영상 1개만 올렸을 뿐인데도 벌써 50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첫 영상은 은둔 시절에 노숙자로 오해받았던 가짜 뉴스 쇼츠의 조회 수를 애초에 넘어섰다.
급기야 유명 감독이 연출할 신작의 여자 주인공으로 배우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오디션은 형식적인 거야.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보고 오자."
영화사의 오디션 제안 연락을 받은 명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명주는 이번 배역에 약간의 노출과 연인 간의 사랑을 표현할 격정적인 정사 연기가 필요하지만, 결코 소비적인 방식으로 연출되지 않을 거라며 주저하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배우만이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사람들에게 각인할 대표작이 될 것이라는 게 명주의 의견이었다.
그동안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이긴 했다. 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배역이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톱스타 반열에 올라와 있었다.
또한 배우가 건네받은 시나리오 속 캐릭터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는 비정하고 고독한 캐릭터임에도 읽는 내내 이입될 만큼 입체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작사에서 요구한 전라 노출은 캐릭터가 온몸에 화상을 입었었다는 설정을 보여주기 위한 요소로 사용되었을 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배우의 아름다운 전신에 화상 흉터 분장을 해야 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것은 역시 상대 배우와 깊은 애정 관계를 가져야 하는 장면이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드러내는 게 맞는 것일까.
배우는 과거에 두세 번, 연애 비슷한 것을 한 경험이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배우에게 먼저 다가왔고, 그들과 서툰 관계를 가져보기도 했지만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첫 관계는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끔찍한 쪽에 가까웠다.
"너 내가 처음은 맞지?"
그녀의 반응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제멋대로 일을 치른 후 침대 머리에서 담배 연기부터 내뿜으며 그녀를 보던 쌀쌀한 남자의 눈길에 배우는 상처받았었다. 그토록 친절했던 애인이 만난 상대는 10대 소녀 ‘리나’였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 충격으로 다시는 연애 따위 못 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이번에 배우에게 주어진 배역은 남녀 구분 없이 모든 행위를 과감히 리드하고 즐기는, 개방적이고 노련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명주는 배우가 이런 엄청난 기회를 망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반응이 좋다고 해도 과거 연기력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것이 명주의 주장이었다.
명주는 오디션에 합격하는 대로 감독을 설득해서 최대한 유리한 방식으로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게 만들 거라며 배우를 다독였다.
결국 배우는 오디션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준비 기간은 겨우 열흘 정도였지만 명주는 걱정할 일은 없다며 다시 한번 배우에게 물었다.
"괜찮지?"
"혼자 있을 시간이 좀……. 필요해."
"하긴, 우리가 그동안 너무 붙어 다니긴 했어. 그치?"
명주의 장난 섞인 말에 배우는 연기하듯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명주는 그 반응에 배우가 다시 열정을 되찾았다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기뻐하는 눈치였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도록 경기 외곽에 있는 본인 소유의 독채에서 일주일 정도 배우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 주겠다고 배려했다.
명주는 아직까지 아무 조건 없이 배우에게 전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가족도 아닌 명주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단순한 우정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배우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선의를 베푸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그녀의 부모부터 이를 증명했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명주가 베풀어 준 만큼 자신도 뭔가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배우는 다시 찾아온 불안에 당장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일단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데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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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