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날벌레> 7회
배우는 모두의 기대대로 영화 ‘불 속의 여자’에 캐스팅되었다.
배우 인생의 첫 주연작이었다. 처음에는 유명 감독의 차기작이자, 돌아온 ‘리나’의 첫 복귀작이라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녀는 맡은 역할인 '화진'을 표현하기 위해 일말의 인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잔혹한 눈빛과 특유의 표정, 리나보다 한 톤은 낮아진 중저음의 목소리로 그녀만의 독특한 연기를 펼쳤고 현장에서 지켜보던 제작진의 감탄을 자아냈다.
취재를 위해 현장에서 그녀를 함께 지켜본 한 영화 기자는 개인 SNS에 이전의 '리나'는 완벽히 지워졌고, 이 영화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작이 될 거라는 피드를 올렸다.
덕분에 사람들의 기대는 더욱 증폭되었고, 이제 ‘리나’보다 ‘화진’에 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배우는 이제야 모든 것이 자신이 꿈꾸던 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소식조차 모르던 부모도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모친은 최근 부친이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며 눈물로 하소연했다. 편의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친인척들에게 진 빚을 갚느라 사정이 좋지 않았다며 딸에게 그런 짐까지 지어주고 싶지 않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배우는 단지 지금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명주를 통해 곧바로 거금의 치료비를 송금해 주었다.
이튿날 명주는 '날 버린 부모도 용서하기로 했어요.'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개인사를 기사화했고, 과거 국민 장녀였던 리나의 인품은 여전하다는 찬사까지 얻어냈다.
배우는 조금 불편한 감정을 느꼈지만, 당분간 무슨 짓을 해도 칭찬받을 것이란 걸 알았다.
단지 하나 걸리는 것은 여전히 절식 중인 상황을 외부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이전에 없던 기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영화 현장에서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제작진과의 회식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그녀가 음식을 몰래 버리는 것을 본 현장 스태프가 올렸다는 익명의 댓글이 공론화되며 그녀가 거식증을 겪고 있다는 의문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었다.
실제로 두 번째 그것을 삼킨 이후, 그녀는 이전보다 더 말라가고 있었다. 협찬받은 옷들은 최소 사이즈였음에도 여유가 남아 한 번 더 수선해야만 했다.
배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반년 가까이 먹지 않고 있는데 살아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물론 먹으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식을 막상 입속에 넣으면 심한 악취와 구역감을 느끼게 되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촬영장에서 하루 종일 물만 연거푸 마시는 그녀를 관찰하듯 지켜보던 명주가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먹는 거야? 그러다 쓰러지면..."
"아까 먹었다니까. 정말 괜찮아."
명주마저 속이고 있었지만, 배우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것'의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었고, 그 효과가 사라진다면 과연 다시 먹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요즘은 배우처럼 극단적으로 마른 몸의 연예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덕분에 배우의 안타까울 정도로 말라가는 몸은 하나의 패션이 되어 대중에게 각인되고 있었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몸을 동경하며 무리한 절식을 감행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심각한 관점에서 보도한 공중파 시사 방송에서는 지금 가장 마른 몸을 유지하고 있는 배우로 그녀를 대표적인 예시로 꼽았고, 배우의 인기가 계속될수록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럴수록 대중들에게 배우의 인지도는 더욱 올라갔고, 배우는 이 몸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고작 두 번이었지만, 그것은 늘 그녀가 공황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에만 구원처럼 나타났다.
앞으로 그것을 삼킬 일 역시 없어야만 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까짓것, 먹지 못하는 건 이대로 계속 숨기면 될 일이다. 진실을 말한다고 한들 누가 믿어주겠는가.
드디어 마지막 촬영 일이었다.
이날은 배우가 가장 우려했던,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상대역 배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살인을 저지르는 신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스태프의 긴장 속에 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배우는 이제 거리낌이 없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거침없이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상대 배우인 시호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섰다. 반나절 동안이나 작업한 온몸의 화상 흉터 분장은 앙상하고 연약한 몸과 어우러져 기괴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완벽하게 '화진'이 된 배우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연인을 주저 없이 독살하고,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지른 후 벗은 가운을 다시 걸치고 우아한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불길에 비친 배우의 붉은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흑진주 알처럼 초점 없이 반짝였고, 타오르는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컷! 소리와 함께 제작진의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배우는 확신하며 웃었다.
그깟 날벌레 따위 이제 필요 없어.
소설 <날벌레>는 매일 오전 9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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