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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언니 Oct 10. 2023

출산 휴가 30일 차에 받은 전화 한 통

내가 이렇게 중요한 시람이었나?

“보고 통과됐고 수정된 내용이 많아서 전화로 설명하려는데 시간 괜찮아?”


21년 11월 초, 수술로 아이를 낳고 힘겨운 몸조리를 하며 잠도 못 자며 갓난아기를 키울 때 후임에게 받은 카톡이다.


가뜩이나 잠도 못 자고 피곤한 상태에서 출산 휴가 전 내 불안한 마음이 증폭하는 톡이었다.



#나를 괴롭힌 생각 뭉치

‘대체 얼마나 바뀌었지?‘,

‘내가 방향을 못 잡아서 보고 통과가 안된 거였어?‘,

‘내가 없어야 통과되는 거면 난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이리도 무능한데 복귀해서 잘할 수 있을까?’,

‘경력 쌓고 원하는 직장으로 이직은 가능할까?’,

‘아니, 그전에 이 직장에서 안 잘리고 잘 다닐 수 있을까?‘,

‘내 커리어는 정말 이렇게 끝나나?’


마치 위 생각처럼 나 자신이 정말 쓸모없고 필요 없는, 골칫거리가 된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 뭉치가 머릿속을 헤집으며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갓난아기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울면서 이 톡에 답장을 해야 할지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내가 내용을 듣는다고 의견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설령 의견을 주더라도 반영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묻는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듣지 않으면 휴직 기간 내내 괴로울 것 같아 훌훌 털어버리고자 쿨하게 “응, 가능해.”라고 답하자 바로 전화가 왔다.


꽤 많은 분량의 보고서 중 변경 사항을 듣는데 ‘내가 기획한 거랑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데 뭐가 그렇게 달라졌단 거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큰 변화는 내가 제안한 앱 개발 언어 A가 아닌 B를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B로 바꾼다는 건 후임 의견이었고 내가 조사했을 땐 A가 훨씬 범용적이라 장기간 유지보수를 고려했을 땐 개발 비용이 훨씬 적게 들 수 있을 테지만 그리 정했다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착수 시엔 내가 제안한 언어로 바꿨다는 건 참 웃기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그 사람이 업무를 하는 태도를 알 수 있었고 이 태도로 정말 오래 괴로워했다.



다시 통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그는 내 반응은 안중에도 없이 약 40분 정도 통화로 보고 내용을 훑어줬다. 물론 긴 시간 성의 있게 설명해 준 그에겐 고마웠기에 고맙다고 인사하며 끊고 바로 팀장에게 연락했다.


“공유해 준건 고마운데 출산휴가 중 조리하는 사람한테 업무 내용 공유해 주라고 한 의도가 뭐야? “


시비조가 아닌 정말 궁금한 척 묻고 싶었지만 이미 상처 난 내 마음에서 나온 말은 그리 곱지 않았을 거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임원이 꼭 얘기해 주라고 하셔서.. 우리도 돌아와서 들어도 될 텐데…싶었는데 임원은 너가 이 프로젝트 담당자니까 많이 변화한 거를 나중에 아는 것보단 지금 아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잘 지내고 있지? “



너무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후임을 통해 내게 변경된 보고 내용을 공유하라는 임원의 마음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됐다.

‘네가 거지같이 하고 간 프로젝트 다음 사람이 잘 살려 수정 엄청해서 겨우 통과했다. 그러니 빨리 돌아와서 해라.’


애 키우며 몸 회복하기도 벅찬데, 반드시 연락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한다고?

내가 회사 임원도 아니고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 절대 빠져선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마음을 심란하게 하여 서둘러 복귀하게 해 업무를 마무리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라는 온갖 망상에 휩싸였다. 그날의 화남과 분노가 온몸에 싸늘하게 퍼진다.



내 경쟁력이 필요해.

그리고 그때, 난 다음 직장을 서둘러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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