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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언니 Sep 30. 2023

임산부는 왜 출장을 못 가?

36주에 제안받은 7일 출장

정말 감사하게도 집 근처에 산부인과 검진과 분만을 함께 할 수 있는 분만 산부인과가 있었다.

(생각보다 분만 산부인과가 집 가까이 있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임신 사실을 안 이후 바로 해당 병원을 예약하고 분만까지 주기적으로 갔다.

임신 기간이 지나고 보면 큰 이벤트 없이 보냈지만 한 주, 한 주 초조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임신기간을 보냈고 병원에 처음 방문한 날, 무슨 일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인터넷을 보기보단 병원에 내방하기를 권했다.


12주쯤에 보였던 피 비침, 이후 배뭉침, 환도 서는 증상 등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신체 변화에 나는 병원을 꽤 자주 갔고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다. 그렇게 안정기에 접어들어 30주 즈음부턴 한결 마음이 편한 임신 생활을 하게 됐다.



36주에 제안받은 장거리/ 장시간 출장

회사는 서울이었고 그 해 9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원거리에서 하는 큰 이벤트가 있어 해당 팀 직원들은 교대로 행사장에 출장을 가야 했다. 당시 나는 30주에 진입하는 시점이고 우리 팀 행사가 아니기에 필수로 출을 가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직원들 퇴사로 출장 팀 인력 부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휴직 전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출장을 가겠다고 했다. 물론 내가 출장이 가능한 시기는 임신 30주에 진입한 9월 중, 임신 34주가 되는 10월 초까지였다. 출장을 가면 일주일 동안 가야 했고 만삭 임산부가 남편 없이 홀로 타지에 출장을 가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해당 팀 팀장은 너무나 당당하게 임신 36~37주인 10월 중순~말에 가는 일정을 제안했다.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됐을 텐데, 그 일정이 본인 팀에서 필요한 일정이고 나에게 그 일정을 제안한 그를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자리에 내 팀장, 다른 팀 팀장과, 나에게 일정을 제안한 팀장까지 총 넷이 있었는데 모두 그땐 내가 힘들지 않을까? 가 아니라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 여자였고 심지어 한 명은 이미 출산을 경험한 사람이었기에 제안 뿐 아니라 반응에 다소 충격받았다. 이런 감정도 잠시, 그 시기엔 아기가 나와도 이상할 일이 없고, 다니던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싶기에 그건 힘들겠다, 고 '설득하고' 출장을 거절했다.


아마 그들 입장에선 내가 그들을 도와준다고 생색은 내며 못 간다고 결론지어 아니꼬왔던 걸까?



나도 임신은 처음이지만, 이 사람들 반응은 대체 뭐지?

이 일은 별 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 당시 내가 느낀 당혹감과 불쾌감은 그 팀장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됐다.

참고로 그 팀장은 이전 화에서 얘기한 회사 사정을 운운한 그 사람임을 밝힌다. 임신과 출산에 내 불암감을 증폭하게 했던 핵심 인물이었다.


참 불안한 시기에 왜 이런 사람과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했는지,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그 사람과 말도 섞지 말라고 과거 내 손 부여잡고 말해주고 싶다.



임산부는 서서히 업무에서 제외되는 걸까?

피해의식을 갖고 싶지 않았지만,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임산부는 서서히 업무에서 제외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회사 입장에선 곧 휴직을 들어갈 사람이고 휴직 이후 돌아온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기에 관두는 사람으로 취급했던 것 같다. 당시 회사가 소규모였고 내가 첫 임신자이다 보니 운영에 미숙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당사자가 된 나는 늘 가시방석이었다.


불안할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더 씩씩하고 싹싹하게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갖은 노력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반드시 6개월 안에 돌아올 거고 이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난 회사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니 내가 마음을 고쳐먹겠다고, 다독이며 하루하루 일했다.

모든 건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선례를 잘 잡아야 다른 동료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을 거라고 내가 가진 무게가 무겁다고 느껴졌다.



왜 6개월만 쉬고 돌아오냐고 묻는다면...

임원분은 부모님 뻘의 나이였다. 그리고 다산을 한 대단한 분이었다.

임신 이후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임원분이 출산할 때는 출산휴가 기간이 지나면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고 한다. 또 출산 경험이 있는 팀장님과 얘기해 보니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고 우울증이 올 것 같아서 아기 낳고 6개월 만에 복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겐 마무리해야 할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모든 걸 종합했을 때, 내 몸이 회복되고 아기를 어딘가 맡기기엔 6개월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6개월 후에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일반 기업처럼 1년 2개월 쭉 쉬는 건 이 회사에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나조차 회사에서 나를 필요로 하기에 기꺼이 6개월만 쉬고 오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결과였지만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놀랍게도 2021년도 회사 이야기이다. 2001년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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