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경험담이 될 소재는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고민했다.
8년 차 서비스기획자, 22개월 아기 엄마, 복직 후 6개월 만의 복직, 그리고 정말 강한 강도로 짧은 기간 겪었던 육아 우울증...
이 키워드를 조합해 보니 결국 전 직장에서 내가 겪은 육아 우울증과 이직 후 평범함을 되찾아 살아가는 삶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일을 워낙 좋아하고 지속 가능한 커리어를 쌓기 위해 늘 고민하며 일에 임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런 나에게 임신이란 '절대 하지 않을 것'은 아니었기에, 한 살이라도 어리고 체력이 좋을 때 빨리 낳고 얼른 복직하자는 생각으로 만 29살에 아이를 임신했다.
일에 대한 내 열정과 사랑은 임신 36주 6일까지 매일 출퇴근하며 직장을 다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임신 기간 큰 이벤트는 없었고, 일도 대충 하고 갔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기에
임신기간 회사 생활도 평탄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하루하루 살아가던 나는 늘 마음이 뾰족했다. 뾰족뾰족 등에 가시가 돋친 고슴도치처럼, 그 가시가 가까운 가족을 찌르기도, 어느 날은 나를 찔렀다.
그 가시의 정체는 바로 불안감이었다.
배가 부풀어오는 만큼 내 불안감은 커졌다.
'육아가 힘들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임신 기간 내내 머릿속을 채우며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아마 이 시기 불안감은 흔히 육아 선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허풍으로 인해 더 강해졌다.
'배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
더욱이 나에겐 현시대를 살아가는 가까운 워킹맘이 없었기에,
정말 그런지, 일을 지속할 힘이 있는지, 힘들면 얼마나 힘든지 궁금한 것들이 결국 불안감이 되었다.
임신 기간은 체력은 좀 떨어지지만,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출산 후엔 정말 내 시간을 못 갖는 것인지 그럼 나는 도태되는 게 아닐지 고민이 많았다.
더욱이 나는 회사에서 내가 수행하는 일이 테크 기반 서비스 기획자의 업무와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고 이 회사를 평생 다녀야 하는 건지, 테크 회사로 이직할 길은 영영 없어지는 건지 초조해졌다.
그럼 난 이 회사에서 보고서만 계속 써야 할 텐데... 난 서비스를 만들거나 제대로 운영하고 싶은데 그런 경력은 내게서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임신 기간 동안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들어가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여름휴가 3일을 썼음에도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에 관해 임원이 질문해 온 내용이 팀장 선에서 해결되지 않고 나에게 까지 내려왔고 그 답변을 위해 휴가 도중에 회사로 복귀해 보고 문서를 썼다.
왜 이걸 설명을 못할까? 보고를 올린 거면 충분히 이해하고 올린 거였을 텐데 의문은 있었지만
당시엔 일이 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덕분에 그 흔한 태교 여행도 가지 않고 집 인근에서 보내기로 한 여름휴가도 회사에서 보내게 됐다.
(그렇다고 휴가를 취소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취소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당연한 거였다. 그 프로젝트는 내가 리딩하는 거니까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도 보고가 부족하단 이유로 프로젝트는 딜레이 됐다.
당시 나는 팀장에게 내 서비스 기획자로서 커리어를 생각해서라도 이번 보고 잘 마무리해서 얼른 프로젝트 착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내 머릿속에선 회사의 성장, 직원의 성장은 함께 간다고 생각했고 팀장도 나를 응원한다고 생각했기에 당당히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그건 너 사정이고 회사 사정이 아니잖아.
회사 사정이 뭘까? 그 순간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목표와 회사가 바라보는 목표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 회사에 입사하고 2년이 넘어가는데 오픈한 서비스가 고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내가 시작도 못하고 갈 상황이 됐다.
복직하고 돌아오면 3년 동안 다닌 회사인데 그간 서비스 하나만 오픈한 기획자, 그게 내 타이틀이었다.
내가 역량이 그렇게 부족한 걸까? 이런 보고 하나도 제대로 통과 못하는 게?
이때부터 난 임신기의 직장 적응보다 복직 후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삶을 알려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어 답 없는 불안감만 강한 고민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