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후임, 후임바라기 팀장
분노는 변화를 만드는 가장 좋은 에너지이다.
그 후임에게 난 좋은 도구였다.
불평 불만을 해도 늘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내게 오는 불이익도 감수하며 후임 편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후임이 어떤 사회생활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면에 깔린 자격지심과 거기서 파생되는 사내 정치, 본인을 높이기 위해 다른 동료를 우습게 만드는 일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했다.
정확히는 그게 잘못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함께 긴밀히 일하는 동료이기에 최대한 그 얘기에 귀기울였지만 출근 전부터 출근 후까지 그 불평과 불만을 견뎌내기엔 내가 너무 불쌍했다.
팀장에게 그 동료와 더이상 긴밀한 협업은 힘들 것 같고 각자 자리에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주는 정도로만 업무 분장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그와 점차 멀어지니 불만 대상이 내가 되었나보다.
문제있으면 나한테 말하면 되는데?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옆 자리에서 함께 일할 땐 아무 말 않다가 꼭 내가 퇴근하면 팀장과 다른 팀원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툭툭 던졌다고 한다.
나를 짓밟아야 본인 입지가 안전한건지 꼭 내가 없는 틈을 타 사람을 우습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을 전해 들어도 그에게 직접 얘기하기 보단 오해하는 당사자들에게 찾아가 오해를 풀곤 했지만, 어느 날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로 나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외주업체와 사이트 개선 작업을 할 때 일이다.
ppt로 된 스토리보드는 기획자인 내게 아웃풋이 예상되고 이해가 잘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검토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해서 스토리보드 적절성 판단을 회사 내 이해관계자 누구나 할 수 있게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공유했고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그가 만든 음모론
그는 내가 퇴근한 사이 내가 업무 시간에 공유한 자료가 업체 최종 산출물인 줄 알고 기획사를 그렇게만 받으면 내가 없을 때 본인 혹은 다른 사람이 업무 백업을 못한다며 마치 내가 중요 정보를 확보하지 않는단 식으로 투덜댔다고 한다.
전후상황을 모르는 팀장은 마치 내가 빌런인 것처럼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게 일을 망치고 있는 줄 알고 업체에서 받은 산출물이 무엇이 있는지 취조했다. 참고로 업체와 주고받은 메일엔 모두 후임과 팀장 모두 참조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처음엔 의아해 하며 대체 무슨 얘긴데 이렇게 무게를 잡지? 했는데 들어보니 이런 얘기를 듣는게 너무 부당하고 화가 났다. 우선 걱정할 만한 상황은 없다고 얘기하고 이런 추궁을 어쩌다 한지 캐묻다보니 배후에 후임이 있는걸 알게 됐다.
왜 그 사람 말만 듣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걸까? 이상한 음모론을 만든 그와, 그 얘기를 곧이 곧대로 듣는 팀장에게 화났고 내 감정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팀장도 그 말만 듣고 나에게 적대적으로 쏘아 붙이게 된 점을 사과했다.
난 육아우울증이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몇 사람들이 너무 이상했다.
근데 그 이상함의 화살이 가장 만만한, 육아휴직하고 돌아온 나에게 온 건 아니었을까 싶다. 참고로 그는 나만 공격했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좀 특이하지만 열심히 하는 동료로만 봤다고 했다. 하지만 날 가까이서 보며 부당한 일을 겪는 과정을 지켜보며 감정 동기화를 해준 동료도 있었고 마음이 격해져 바로 사표를 쓰려할 때 말리며 마음을 가다듬어준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리
그렇게 후임의 실체를 겪고 나니 내 프로젝트도 이렇게 뺏어갔겠구나 싶어 분노했지만, 정말 다행인건 복직 후 5개월 차에 정말 좋은 회사로 이직이 확정됐다. 그렇게 내 송별회를 하러 모인 팀 회식에서도 그는 또 자기 불만만 늘어놨다.
듣다 못한 내가 한 소리 했다.
난 너 때문에 나가는데
너 그 프로젝트 진짜 잘해라.
그러자 회식 자리가 싸해졌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다들 내 말에 놀라기 보단 할말은 하고 나가는 구나 싶었다고 한다. 어쨌든 떠나게 되어, 그것도 엄청 좋은 곳으로 떠나게 되어 내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 대체자이니 내가 나가야 본인 입지가 굳어져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힌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훗날 들어보니 나 말고 다른 타깃에게도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점차 적이 늘어났다는 그, 정말 자신이 뭘 잘못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