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괜찮은 척 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갔다.
육아휴직에 돌아온 분들이 내 얘기로 피해를 보지 않았음 좋겠어서 당시 내 상태에 대해 설명을 붙인다.
나는 회사에서 대우도 문제였지만, 내 분노 임계치가 많이 낮아져 있었다. 복직 후 2달 차까지 작은 자극이 와도 폭발하며 예민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복직하며 일상을 지속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회사에서 덜 중요한 일만 하며 제대로 된 경력을 못 쌓는단 불안감이 커 자주 분노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건 외부 상황이 아닌 나를 바꾸는 일이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로 두고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스로 육아 우울증이라고 정의하고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먼저 심리상담센터를 갔다. 난 늘 밝고 의욕있던 사람이라 평생 가보리라 생각치 못한 곳을 갔다. 예약은 육아우울증으로 하고 방문해 두서없이 육아가 힘들단 이야기부터 지난 화 이해가 안가는 회사 업무 얘기를 늘어놨다. 상담사분께서 잘 들으시더니 다면적인성검사를 해보자고 권하셨고 검사지를 받아 다음 예약을 잡고 집으로 갔다. 마음은 어느정도 후련했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 필요했다.
하루 빨리 원래의 나로 돌아싶어 절박했다.
회사 업무에 대한 권태로움과 자격지심을 없애고자, 번아웃 워크숍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나에 대해 알아가는 워크숍을 주 1회, 2시간, 총 4회 진행했다. 이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남들이 보는 내 장/단점 등에 대해 알아갔는데 심리상담센터와 워크숍을 통해 종합한 나는 육아 우울증이라기 보단 회사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는 상태였고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직이 쉽지도 않고 가서 적응하는 것도 너무 큰 일이기에 잘 적응해야겠다 생각하며 동료들과 관계 개선을 하기로 했다.
이전에 언급한 후임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때문인지. 일상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었고 조직 문화와 잘 융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열심히 책임감 있게 일하여 내가 맘편히 휴직하고 올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기에 이 사람의 업무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게 내 업무 시간을 조정하며 협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스트레스를 말로 푸는 타입이었기에 나는 그 불만을 들어주며 함께 해결점을 찾으며 돈독한 동료애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아마도 나는 그에게 감정 쓰레기통이었다보다. 그는 스트레스를 풀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본인 감정이 상하거나 불안할 때마다 나를 찾았다. 그렇게 난 출근 전부터 출근 이후까지, 그의 푸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늘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오는 후임과 함께 지하철을 타며 푸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더 우울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