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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언니 Oct 16. 2023

회사 문화 망치는, 애 낳고 변한 직원

복직 후 내 포지셔닝은 그랬다.

다니던 회사는 가족처럼 모든 고민을 함께 나누며 친밀도가 높은 조직이었다. 구성원들 모두 친절하고 서로에게 관심이 많은 곳이었다. 평소엔 이런 훈훈한 분위기를 선호했지만, 마치 새 회사에 입사한 것처럼 조직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출산 전 몇 직원이 퇴사하며 출산휴가와 휴직 사이에 대거 채용을 해 절반 이상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 비슷한 결의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적응하면 될 줄 알았다.



진작 말했다면 덜 화났을 텐데


그렇게 복직 후 팀장과 첫 면담을 했고 그 면담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이전에 하던 프로젝트는 후임이 전담으로 할 거고 너는 그 외 모든 일을 해 줘, 그렇게 업무 분장했어. “


그 프로젝트 때문에 일찍 복직한 내겐 충격적인 업무 분장이었다.

“난 그 프로젝트 때문에 6개월 만에 온 건데 업무 분장이 왜 그렇게 된 거야..? “


“그동안 잘 진행해 줬고 너는 앱 개발 경험이 없고 연차도 후임에 비해 낮기에 정은 후임/부는 너로 운영하기로 했어. 또 아이도 키우고 회사에 다시 적응해야 하니 부담 없는 일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어? “

마치 내 반발을 예상이나 한 듯, 생각해 놓은 답을 늘어놨다.


할 말이 없었다. 팀장은 내가 출산하기 전 한 달 전 입사했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건 내부에 나에 대한 평판이거나 혹은 후임의 입김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회사에선 내가 그 프로젝트를 이어가기엔 자격미달로 판단했다.

자존심이 상하고 괜한 자격지심과 함께 심하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표출하는 건 프로페셔널하지 못했고 내가 못했기에 이런 결과를 얻었구나 생각하며 쿨하게 답했다.


“우선 알겠어.”


그렇게 면담 이후 나는 의욕을 잃고 분노했다.

분노의 이유는 업무 분장뿐만 아니라 타이밍 때문이었다. 업무 분장에 대한 얘긴 복직 전에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인사차 회사에 들린 적도 있고 타기업은 휴직자가 복직 전 미리 면담을 하기도 한다 했다. 하지만 아무런 얘기 없이 후임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게, 집중할 수 있게 내가 빨리 돌아오도록 별 말을 안 한 거였다. 집에 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하여 정말 펑펑 울었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덜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됐다.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잘해서 다시 중요한 업무를 맡겠다고 다짐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회사는 다 같이 밥을 먹고 하하 호호하며 티타임도 많이 하고 회의도 정말 많은 곳이었다. 늘 사람에 치여 업무 하는 곳이었는데 업무 분장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마냥 웃음이 안 나왔다.


점심만큼은 혼자 있고 싶었고 그렇게 점심을 거르거나 따로 종종 먹기 시작하며 그때부터 난 찍혔다.



일도 줄여줬는데 왜 그리 힘들어해?


일도 줄여주고 부담도 줄여주며 회사에선 다들 널 위한 배려인데 왜 그리 힘들어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누구보다 일욕심 많은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이런 배려를 하는 게 난 절대 고맙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마움을 강요하고 예전처럼 밝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내가 사측에선 눈엣가시였다보다.

점심 같이 안 먹는다고 혼자 튀는 행동 하냐며 혼나기도 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회사에서 배려한 업무 분장을 떠나서 팀 일이 잘 안 돌아갔다. 팀장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며 이상한 말만 전하러 다녔다.



일을 줄여주는 게 아니라 꼬네?


줄여줬다는, 덜 중요하다는 일은 타 팀과 소통하며 협업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팀장은 중심을 못 잡았다. 내 얘기보단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에 바빴다.


정말 화가 났던 일이 있다.

예산과 대략적인 일정이 정해져 있고, 서비스 개선 요구사항도 40가지 이상 있던 개선 프로젝트를 예산에 맞춰 추리기 위해 두 달간 요구사항 협의를 했다.

40가지 요구사항 중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항목을 서비스 운영 사업팀, 외주 업체와 논의하며 좁혀나갔다. (모든 업무 진행 사항은 각 팀 팀장과 사업 담당자, 내 후임에게 까지 모두 공유했다.)

그렇게 견적서도 핑퐁 하며 프로젝트 착수일까지 논의하던 중,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는 팀장이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불러선 이 개선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  

만일 계약 전 다시 크로스체크를 하는 거라고 해도 그 팀장이 내게 그 얘기를 한 순간 난 두 달간 무얼 한 것인지, 정말 필요한 기능만 추려서 겨우 견적을 맞췄는데 ‘나는 너 못 믿겠어.‘로 해석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일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다. 만일 나를 못 믿거나 본인이 보고할 확신이

안 선다면 차라리 예산 보고를 해야 하니 잠시 홀드해 달라고 하고 팀 논의 후 보고해서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본인은 팀장이고 난 팀원이란 이유로 지위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본인 팀원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날, 나는 분노가 극에 달해 반차를 쓰고 퇴근했고 날 화나게 만든 팀장과 우리 팀장은 둘이 얘기를

하며 내가 너무 예민해졌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팀장은 나에 대해 의심을 하며 문제 직원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너는 예상대로 안되면 크게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
우리 회사 프로세스에 맞지
않아,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겠는데?


그렇게 나는 회사 문화에 맞지 않는, 이상한, 육아휴직 후 돌아오니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다혈질의, 애 엄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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