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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Sep 06. 2019

#1. 서른일곱에 겨우 결혼을 했다!

워커홀릭의 꽤 재밌는 결혼 생활 이야기

"그럼 너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 혼자 살아!"


서른셋, 서른넷까지 부모님은 "빨리 시집가라"는 말씀을 않으셨다. 딸만 둘 두신 우리 부모님은 굳이 두 딸을 일찍 시집보내고 싶으신 생각이 없으셨고, 그때까지만 해도 '때 되면 가겠지...' 하셨더랬다. 서른이 막 넘을 무렵 우리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고, '입주할 무렵이면 두 딸들이 모두 시집을 가겠거니...' 하며 커다란 집의 방을 단 두 개로 만들어 버리셨다. 그렇게 나는 서른다섯이 되고, 서른여섯이 되고,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시집을 가지 않았다, 아니 못 갔다. 그 사이 부모님은 시집가지 않고 '버티기'에 나선 두 딸들을 책망하며 경기도권을 벗어나 서울로 한 번 더 이사를 했다. 평생을 살 것 같았던 커다랗고 대리석이 깔린 '사진 잘 나오는 우리 집'을 '예비 남편'에게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웠고, 그렇게 또 서른일곱 그 해가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두 딸을 두신 부모님은 '딸들 결혼'을 서서히 포기하셨고, 급기야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라'는 말씀까지 하실 지경이 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물 뚝뚝 흘려가며 '왜 엄마는 내 마음을 이해를 못해!'라며 내 맘 같지 않은 나의 상황에 서러움이 폭발했고, '이렇게 많은 남자 중에 왜 내 건 없는 거야...'라는 마음에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래 처음부터 일을 그렇게 좋아했던 건 아니다. 방송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PD가 됐고, 업무 이동이 있어 글쟁이가 됐다. 취재하고, 촬영하고, 글 쓰고, 출장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됐다. '나도 해외 출장 한 번 실컷 다니고 싶다'는 직장인 로망을 가질 무렵, 두세 달에 한 번씩 출장을 가게 됐고, 꽤나 재밌게 일을 했다.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 촬영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써서 올리면,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이 글을 응원했고, 댓글을 달았다. 서른 즈음 나는 그렇게 일에 '탄력'을 받았고, 그때부터 '신나게' 일을 하기 시작했더랬다. 그것이 나의 '만혼'의 시작이었다.


그냥 일이 재밌었던 거지, 일만 하고 살겠다는 건 아니었다. 늘 바빴고, 하나를 붙잡으면 내 맘에 들 때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라 야근을 밥 먹듯 했다. 주말에도 근무할 때가 종종 있었으며, 소개팅은 틈틈이 나눠해야 했다. 여전히 적지 않게 들어오는 소개팅과 취재 현장에서의 '대시 아닌 대시받기'를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꽤 많은 남자들이 있었고, 연애와 썸을 오가며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나 좋다는 사람' 막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오해했다. 내가 '인기 많은 여자'라고. 지나고 나서 생각한 거지만, 그들에게 나는 그다지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 많고, 직급도 낮지 않고, 하는 일도 '센 언니' 같으니... 젊고, 예쁘고, 착하고, 어딘지 모르게 순진한 20대 상큼한 썸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나 스스로 '나 정도면 꽤 괜찮지!'라는 자만에 빠져 살았었다, 그때는.


"남 PD님, 소개팅하실래요?" 


당연하지! '들어오는 소개팅 막지 않고, 떠나는 남자 막지 않는다'는 것이 철없는 서른일곱, 나의 소신이었다. 심심한데 놀면 뭐해. 소개팅이나 하지! 


2015년 여름, 우연히 한 지인의 소개로 소개팅을 했다. 여기저기 걸쳐 준 썸들을 뒤로하고, 또다시 의미 없는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주말 낮에 만날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이태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음~! 나쁘지 않아!'


동갑내기 소개팅남이 잡은 소개팅 장소를 평가해 가며 이태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탈까 하다 몇 푼 택시비가 아까워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꽤 많이 걸어야 했다.


'아씨... 화장 지워지는데... 멀리도 잡았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나의 자만심은 소개팅 남의 약속 장소에 대한 짜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송골송골 솟아오르는 짜증을 다독이며 카톡에 적힌 약속 장소로 갔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됐던 건, 만나자마자 밥 먹자고 하지 않았다는 점.


"바로 밥 먹는 것보다, 우리 차 한 잔 하고 밥 먹으러 가요!"


남자들이 소개팅을 꺼리는 이유는, 모르는 여자와 밥 먹고, 차 마시고, 데이트하는 비용이 투자 대비 가성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이 남자는 조금 다른 듯했다. '그래도 차 먼저 마시자고 하는 거 보면 센스가 전혀 없는 건 아니야'라며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을 무렵.


'카톡!'


"여기가 약간 골목이라 헷갈리실 거예요. 오시다 보면, 이 골목에서 계단으로 내려오시면 돼요."


그런데 이 남자가 보낸 사진과 똑같은 골목 앞에 두 명의 상인 아저씨들이 거의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는지. 한 여름 더위에 짜증이 정점에 달하기 직전, 80%까지 올랐던 짜증지수가 사진 한 장에 피식! 웃음으로 바뀌었다.


<My Sweet>


꽤 유명한 연예인이 하는 카페였다.


"저 도착했어요!"
"아, 그러세요? 제가 내려 갈게요!"


크지 않은 키에 안경을 쓴 '아기 같은 남자'가 2층에서 후다닥 내려왔다.


'어머... 뭐가 이렇게 인상이 좋아?'


동글동글한 안경을 쓴, 공부 잘할 것 같이 생긴 '똘똘이 스머프'의 모습을 한 소개팅 남이 내려왔다. "오시느라 힘드셨죠?" 하며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고, 그때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날 만난 '주말 낮 시간 때우기 용 남자'와 114일 만에 결혼을 했고, 올 10월이면 결혼 만 4년이 된다.




인연은 두 사람도 모르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 인연을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인연은 참으로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나는 그 인상 좋은 남자의 주니어를 가졌고, 현재 임신 21주를 지나고 있다. 더 신기한 건, 만난 지 2주도 안돼 슬금슬금 결혼 이야길 꺼낸 이 남자의 '끊임없이 변함없는 진정성'이 나도 모르게 그에게 빠져들게 만들었고, 주변에 널브러졌던 '조건 좋은 썸남'들을 모두 정리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여볼 더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야!"


매일 남편의 머리에 세뇌를 시키고 있지만, 아마도 나는 그를 결혼 전보다 백만 배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누구에게나 인연은 있고, 그 인연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부터 우리(나와 남편)는 자타공인 '천생연분'이라 공언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사실 해 보면, 결혼 생활은 그렇게 최악은 아니다. 매일 재밌고, 매일 새롭고, 매일 설레는 '하루의 제2막' 같은 날들이 매일 펼쳐진다. 그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려고 한다. '꽁든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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