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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Nov 25. 2020

#22. "대체 마음은 어떻게 놓는 건가요..."

난임이었던 나에게 사람들이 했던 말, "마음 놓으면 생긴다"

자연 임신은 시험관과 여러모로 달랐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달랐다. 시험관을 했을 때에는 매 순간, '수치가 잘 올고 있을까', '고기 챙겨 먹어야지...', '조심히 걸어야지...', '커피 마시면 안 되지...' 등 숨 쉬는 것부터 잠자는 것까지 매 순간이 걱정과 조심이었다. 그런데 자연 임신을 하니, 내가 걱정할 겨를도 없이 아가는 매일매일 쑥쑥 자랐고, 심지어 노산 오브 노산인 나를 안심이라도 시키듯 내 사랑이는 자기 스스로 몸을 스르륵! 돌렸다. 건강하고 똘똘한 나의 아기 덕에 나는 40대에 자연분만을 하게 됐다.



안녕, 아가? 임신 8주, 완벽하게 '젤리 곰'을 연출하고 있는 나의 '아기 효동'


태명은 정말 많은 고민 끝에 '효동'이라 지었다. 광복절날 임신 사실을 알아 '광복이'가 태명이었던 조카를 따라, 어버이날 임신 사실을 알려온 우리 아가에게는 '효도 선물 같은 아기'라는 뜻을 담아 '효동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약간 촌스러우면서 귀여운 이름 효동이는 곧 돌을 앞두고 있다. 아무튼,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임신 이야기 라기보다는, 시험관 말고, 자연임신을 하기까지 마음 관리했던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한다.




"마음 푹 놓고 그냥 안 생겨도 괜찮으니까, 부담 갖지 마."
"남 PD 님, 마음을 놓으니까 생기더라고요. 저도 시험관까지 했었어요."
"주위에 보니까, 마음 놓으니까 생기는 사람들 많더라고. 그냥 마음 놓고 기다려봐. 다 생길 거야."


라고 했다. 다들 그렇게 말했다. 둘째가 먼저 아기가 생겨 늘 가시방석 같으셨을 부모님도, 주위 친구들도, 지인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마음을 놓으라고. 마음을 놓으면 생긴다고.


"도대체, 마음은 어떻게 놓는 거야, 정말...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말도 너무 싫어.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러게... 근데 여보, 우리 정말 아가 없어도 잘 지내잖아. 이제 엄마가 될 처제는 우리가 더 부러울 거야. 걱정 말고 즐기자. 정말 지금이 가장 편하고 행복한 시기일 수도 있어."
"그래도 싫어. 어떻게 놓으라는 거야, 어떻게 하는 거야 도대체."


 '마음을 놓으라'는 말, 참으로 쉬운 말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답답한 말이다. 마음을 어떻게 놓는 건지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고, 알려 주는 사람도 없다. 방법을 알면 해 보기라도 하지... 마음을 놓을 길이 없어, 과학의 도움이라도 받으면 마음이 편해질는지 해서 얼려 두었던 배아로 두 번째 시험관 시술을 했고, 결과는 실패.


'얼려 뒀던 거라 그런가...'


시험관 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처음 했던 의사보다 더 유명한 원장으로 담당을 바꿨고, 그 원장은 앞에 후배 의사가 담당하던 환자에게 30초 만에 시술을 끝냈다.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냐...'


기분이 참 말할 수 없이 나빴다. 처음부터 안될 것처럼 이야기했고, 그럴 거면 다시 신선 배아로 하자고 이야기했었어야 했다, 의사라면,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결과는 실패였고, 신선 배아로 다시 시작을 해야 했다. 그럴수록 임신에 대한 집착은 커져만 갔고, 나의 마음은 점점 더 작아졌다. 그 무렵, 동생의 예쁜 배는 축구공처럼 동그랗게 커졌고, 그 작은 배 안에서는 작지만 아주 건강한 조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여보, 근데 확실히 소이네 보니까 임신하고 애기 생기니까 뭘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많다, 그렇지?"
"그러게! 우리가 행복한 거야. 우린 고기 궈 먹으러도 맘대로 갈 수 있고, 여행도 맘대로 갈 수 있잖아."
"맞아. 그래서 말인데, 5월 연휴에 샌드위치 돌아가면서 쓰라는데, 자기도 쓸 수 있어?"
"응, 우리도 쓰래. 여행 갈까?"
"응응! 멀리 가긴 그렇고, 여름휴가로 하와이 갈 거니까. 그때 자기가 말했던 데, 어디지? 베트남?"
"아, 푸꾸옥? 그래. 그럼 이번엔 짧게 푸꾸옥이나 다녀오자. 여름에 하와이 가면 돈 많이 쓸 거니까. 이번엔 그냥 베트남으로!"


동생이 문득문득 부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행도 한 번 가기 힘든 상황이 좋지만은 않겠다...' 싶었다. 국내외 여행과 당일치기 드라이브를 즐기는 우리에게 임신은 매우 해피한 상황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음껏 여행 다니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운동했다.



푸꾸옥 여행 중 우리는 매일 몸을 새까맣게 태우고, 매일 두 시간 가까이 운동을 하고, 매일 맥주를 마셨다.


여름휴가 전, 갑자기 얻은 베트남 여행은 부담 없고 참으로 행복했다. 숙소는 비쌌지만 음식이 맛있었고, 준비성 있는 남편 덕분에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고, 다시 못 올 숙소와 뷰를 접했다. 너무나 행복했고, 이대로 쭉 '놀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자기야,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행복한 때인지도 몰라."
"맞아. 이러다 아기가 생기면 이런 거 다 못하겠지? 사실 나 이제 임신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나도 그래. 지금 너무 행복하다, 그렇지?"
"어. 감사해~! 왜 그런 걸 했나 몰라, 몸 상해, 마음 상해. 내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네. ㅎㅎ 괜히 했어, 쓸데없는 거... 오늘 하루도 정말 행복하다. 감사해."
"응! 잘 자, 내 애기야. 사랑한데이!"
"힛! 응! 내가 자기 애기잖아. 응애응애 ㅋㅋㅋ"
"오구오구, 그래그래!"


조카의 출산 예정일이 점점 다가오자 진짜 '이모'가 되는 게 실감이 났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여유로워졌다. <상어 가족>을 들려주며 태동을 느꼈고, 꿈틀거리는 그 녀석이 얼른 보고 싶었다. 동생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애처로웠고, 곧 태어날 내 피붙이, 조카가 너무너무 좋았다.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사기 시작했고, 곧 태어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고, 떨렸고, 기대했다.


그제야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두 번째, 그리고 연말에 세 번째 시험관을 내리 실패하고 우리는 '그냥 둘이 살자'라고 결론을 내렸고, '날 받아하는 부부관계' 말고 사랑하고 싶은 날 마음껏 사랑했다. 물론 틈틈이 '배테기'로 나의 몸 상태를 체크했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


그 당시 우리 부부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편안하니 몸도 편안했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졌다. 그렇게 석 달을 보내다 보니 베트남 여행을 떠나기 직전 우리는 자연적으로 임신을 했으나 몰랐고, 심지어 생리대를 챙겨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사실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임신한 주변 지인들을 보며 날카롭게 타이트해진 나의 마음을 다독여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진심으로 임신한 동생을 챙기며 '임신이란 이런 거구나'를 알게 됐다.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 이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두 사람의 '진짜 사랑' 그것이 어떠한 과학기술보다 중요하다. 마음 편안히 먹고 날 받지 말고 자주 사랑할 것! 그것이 내가 얻은 '마음 놓는 방법'이다. 지금 임신을 준비하는 모든 부부들에게 건강하고 예쁜 아기들이 찾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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