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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Jul 29. 2020

#21. 5월 8일 어버이날, 임신 사실을 알았다!

시험관 세 번에도 만나지 못했던 쪼꼬미, 아가를 만나다!

'말할까 말까? 내일 피검해 보고 결과 말해 주는 게 낫겠지?'


"여보, 나 왔어요!"


남편이 퇴근을 했다. 막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데 심장이 막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도 바라던, 우리의 2세가 인공수정도, 시험관도 아닌 자연적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나올 것 같았던 눈물은 눈곱만큼도 생성되지 않았고, 이 기쁜 소식을 말하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할까... 말까... 할까... 남편한텐 해야겠지? 별 생각을 다 하며 그 몇 초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여보, 무슨 좋은 일 있어?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는데?"
"어, 나? 아~ 어 그냥! 좋아 보여?"
"응! 어엄청! 좋아 보여. 나 일단 씻고 나올게!"


아... 말하고 싶다... 이놈의 줏대 없는 심장이 바깥으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통에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기, 여보!"
"응?"
"자기야. 있잖아!"
"응!"
"나 뭐 보여 줄 거 있어!"
.
.
.
"이 것 봐라?"
"뭔데?"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의 표정을 상상하며 '임테기'를 쑥 내밀었다. 어? 반응이 왜 이래?


"(씨익 웃으며)응? 지금 하자고?
"어? 아니이이이! 으이그! 아냐, 이거 '배테기' 아니고 '임테기'야."
"어???? 이거... 이거? 그럼?"
"응! 우리, 임신한 것 같아!!!!"
"진짜?????? 진짜야???? 여보, 이거 오래돼서 그런 거 아니지?"
"그래서 너무 떨려서 지금 막 다시 해 보려던 참이야. 일단 다시 한번 해 볼게!"
"그래, 그래! 너무 떨린다. 진짜면 좋겠다!!!"


잠시 후, 새로 뜯은 임테기에도 어김없이 선명한 두 줄이 금세 나타났다.


"여보! 우리 임신인가 봐!"
"나, 너무 떨려서 미칠 것 같아."
"병원 가자!"
"지금은 너무 늦어서, 내일 S한테 가서 피검해 보게."
"거기서 할 수 있어? 그래 S가 해 주면 더 좋지!"


회사 부속의원의 의사인 친구에게 피검사를 받기로 하고, 새 생명이 보내는 사인을 소중히 도 보고, 또 보았다. 너무 떨리고 실감이 나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첫 소변에 테스트를 또 했다. 몇 시간 사이, 우리는 임테기를 4개나 썼다.


"내가, 나도 정말 엄마가 되는 거야? 나 임신 맞아?" 지금도 그 날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임신 사실이 너무나 실감이 나지 않아 테스트를 네 번이나 했더랬다.



다음 날.


"나 할 말이 있오!"
"어, 왔어? 오늘 엄청 일찍 왔네?"
"응! 회의 끝나자마자 내려왔어. 있잖아, 나... 임신... 한 것 같아."
"어? 진짜야???? 야,,,, 나 내가 너무 떨려!!!! 피검부터 해 보자!"
"응! 나 어젯밤에 이거 하고, 너무 떨려서 잠을 못 잤어. 실감이 안 나서, 임테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임신일 가능성이 높겠다. 거의 확실하고 요즘 임테기들은 정확도가 높아서 거의 맞다고 보면 돼."


나의 주치의 이자, 나의 친구에게 나의 임신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시험관을 하는 동안 병원에 가지 않고 주사를 맞을 수 있었던 것도 부속의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 난임 클리닉에서 처방받은 주사를 맞으며 간호사 선생님들도 간절히 나의 시험관이 성공하길 바랐었다.


"이거, 오늘 결과 들으면 더 좋겠지?"
"오늘 들을 수 있을까? 나야 그래 주면 너어무 좋지. 오늘이 어버이날이잖아!"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부탁을 해 볼게. 우리 전 스태프들이 난리야. 너 임신이면 좋겠다고!"


그렇게 나의 친구와 든든한 의료진들 덕분에 나는 그날 오후 피검 결과를 메일로 받을 수 있었다.


오후 5시가 좀 넘었을 무렵, '임신 확인 혈액 검사 결과입니다'라는 메일이 도착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이 달달 떨렸다.


클릭!


"임신 가능성이 높습니다. 5-6주 정도로 예상됩니다. 그 외 빈혈, 염증 검사는 이상이 없습니다"


시험관을 할 때에는 100도 넘기기 어려웠던 beta-hCG 수치는 2547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기뻐할 나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산부인과 일정을 잡았다.


그날 저녁.


우리 잘생긴 조카가 태어난 지 한 달여. 어버이날을 맞아 가까이 사는 세 가족이 모였고, 동생네 집에서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손주를 안고 계셨고, 아빠는 거실로 향하고 계셨고, 동생과 제부는 먹은 음식과 식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속삭이듯) 자기야~!"
"응!"
"아버님, 어머님! 저희 드릴 말씀 있습니다."


'드릴 말씀'이란 말에 긴장한 엄마, 그리고 '뭐지?' 하시는 아빠.


"저희, 임신했습니다!"


순간 엄마는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리셨고, 아빠도 눈물이 글썽. 그리고 동생 내외는 자신들이 임신했을 때 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얘들아... 정말 고생 많았다. 엉엉엉"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큰 딸의 난임에 속을 끓이며, 둘째 딸의 임신, 출산에도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하셨던 우리 엄마. 어찌나 서럽게 엉엉 우시던지.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꼬옥 끌어안았다.


"엄마, 고마워."
"아니, 나는 너네가 드릴 말씀 있다길래 긴장을 했었어. 얘들이 혹시 어디 아픈가 하고. 너무 잘됐다. 아이고 잘됐다."
"정서방, 축하하네. 정말 고생 많았네."


그제야 엄마가 몇 달 전 꾸셨던 꿈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아마도 '딸'일 거라며 서로 다들 새 생명의 성별을 예측하기도 했다.


"나, 이제야 엄마 그 꿈이 이해가 가."
"그러길래 말이다. 광복아, 네가 복덩이구나! 광복이가 이모네 아가 데리고 온 거지?"
"고마워, 광복아. 이모가 고마워~!"


임신 사실을 알기 몇 달 전, 엄마 꿈에는 남자아이가 더 어린 여자 아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꿈을 꾸셨더랬다. 당시 나는 세 번째 시험관을 했을 무렵이었고, 성공한 배아 세 개를 시술한 상태였다. 우리는 조심스레 남녀 쌍둥이를 예상했으나 결과는 시험관 실패였다. 당시 엄마와 아빠는 "광복이가 동생을 데려다줄 건가보다"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셨고, 위로를 위한 말씀은 현실이 됐다. 그 순간, 걱정이 앞섰다. 베트남에서 매일 마시던 맥주가 떠올랐고, 트레드밀 위에서 8로 마구 달리던 것도 생각났다. "진짜 학교 같다"며 말괄량이처럼 뜀박질하던 것도 생각났다. 그뿐 인가? 진한 커피가 맛있다며, 커피 클래스에서 진한 커피만 돌아가며 마셨던 것도, 비행기에서 마셨던 와인도 떠올랐다.


임신 약 4주차. 나의 배 속에는 작은 아기 집이 생겼고, 세포로 시작한 작은 생명은 신기하리만치 건강하게 쑥쑥 잘 자랐다.



하루하루가 전전긍긍이었던 시험관 시기와는 달리 자연적으로 임신을 하니 걱정이 무색할 만큼 쑥쑥 자랐다. 우리의 새 생명은 엄마에게 입덧도, 부종도, 급속한 살찌움도 주지 않고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랐다.


'나도 드디어, '산모수첩'을 받을 수 있게 됐어!'


정말 갖고 싶었던 '산모수첩'과 '임산부 먼저' 태그.


병원에서는 '임신 확인증'을 발급해 주었고,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산모수첩'을 주었다. 우리는 보건소에 가서 엽산과 '임산부 먼저' 태그를 받았다. 그리고 작은 임신 축하 선물도 받았다. 그렇게 나의 좌충우돌 임신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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