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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Jan 17. 2021

#23. 아쉽지만 '일하면서 태교'

전체적인 천성은 아빠를, 세세한 성격은 임신 중 엄마의 생각과 행동을!

"너무 축하해! 잘 될 줄 알았어. '우리 아가가 엄마 몸에서 편안하게 오래오래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꼭 기도해!"


나의 임신 소식을 들은 친구가 해 준 말이었다. 친구의 말대로 나는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매일 아침 뱃속 아가에게 말했다.


"아가야, 엄마 뱃속에서 오래오래 편안하게 있다가 10개월 후에 건강하게 만나자!"


매일 아침 눈 뜨면서, 잠이 들면서 아가에게 속삭였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서인지 태아 효동이는 편안하게 내 뱃속에서 물놀이를 즐기다가 매우 건강하게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39주 6일 만에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가들은 보통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다 들어준다고 했다.


"건강히 잘 자라고 있겠지?"
"그러엄~ 자긴 걱정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생각 하면서 이 시간을 즐기기만 하면 돼."
"너무 잘 자라주고 있어서 기특하고, 신기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해."


시험관 시술 즉시 붙였던 태명들은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금세 사라졌다. 그래서 임신 사실을 알고도 1-2주가 지나 태명을 지어 주었다. 엄마의 기도와 바람을 들었는지, 우리 효동이는 정말 임신인지 궁금할 정도로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효동이는 병원을 갈 때마다 그 주수에 맞게 쑥쑥 잘 자라 주었고, 그 흔한 입덧도 주지 않았으며, 정밀 검사에서도 한 방에 '정상' 사인을 보내 주었다. 입덧이 없어서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단지 회사에서 점심을 먹다 보면 밥 먹는 중간 즈음 입덧이 올라오려고 했고, 그즈음 식사를 중단했다. 그래서인지 출산일 하루 전까지 몸무게는 딱 10kg만 늘었고 40대 임산부였지만 양수 검사를 하지도 않았다.


"나도 제왕 했으면 좋겠다. 그럼 아기 두상이 예쁠 거 아냐, 광복이처럼!"
"언니, 무슨 소리야. 무조건 자연 분만할 수 있으면 자연분만하는 게 좋아."


출산이 점점 다가오면서 철없는 엄마가 제왕절개를 생각할 즈음.


"으악!"
"왜???? 왜, 여보!!!!"
"아니, 방금 배속에서 엄청 큰 물고기가 스르륵!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래? 효동이가 움직였나? 얘가 뭔가 불편한 건가? 이번 주에 병원 가지?"
"응.. 가. 근데 좀 신기해! 뭔가 엄청 활기찬 느낌이랄까?"


태아는 일정 주수까지는 엄마와 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하고 있다가, 일정 주수가 지나면 태어날 준비를 하기 위해 머리를 엄마 자궁 방향으로 돌린다. 아마 그때 우리 효동이는 몸을 돌려 스스로의 힘으로 나올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아기 머리가 정상적으로 아래로 향했네요."
"아, 그래요?? 그럼 저는 자연분만을 하게 되는 건가요?"
"네, 특이사항이 없다면 자연분만하시게 됩니다."


힘차게 스스로 몸을 돌려 머리를 아래로 향한 효동이는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엄마! 무슨 소리예요! 난 내 힘으로 나갈 거예요!"


나의 직업은 PD다. 쉴 새 없이 촬영과 취재를 다녀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쓴 글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팩트를 체크해야 하며, 스태프들을 두루 잘 움직여야 한다. 임신을 한 나에게 외부 취재는 최대한 맡겨지지 않았다. 임신 사실을 알리는 즉시 인사팀에서는 팀장님에게 메일로 팀원의 임신 중 지켜야 할 가이드가 통보되며, 철저하게 모성보호를 할 것을 주기적으로 체크한다. 그래서 외부 취재는 대폭 줄고 주로 사무실 안에서 기사를 수정하거나 전화 취재로 할 수 있는 기사를 주로 썼다. 취재는 줄었지만 하루에 해야 하는 일의 양이 어마어마했고, 정시 퇴근을 했지만 화장실 한 번 가기도 힘들 정도로 일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임신 내내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 손을 움직여야 했고, 전화 취재였기 때문에 더 꼼꼼히 팩트를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짜증도 나고 힘도 들었지만, 시험관 할 때의 걱정과 힘듦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기사도 많이 쓰고, 취재도 많이 하다 보면 또 아기도 나중에 글 잘 쓰겠지 뭐~' 하며 그저 즐겁게 보내려고 애썼다. 퇴근을 하면서는 모든 일을 잊고 '임산부'임을 200% 만끽하며 10개월을 즐겼다.


참 야무지게도 몸을 돌렸던 태아 효동이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뭐든 스스로 해 보는 걸 매우 좋아한다. 밥 먹여주는 숟가락을 달라고 해서 주면, 그걸로 꼭 스스로 밥을 떠서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숟가락에 밥이 올라가도록 내가 식판을 배배 꼬며 돌려 밥 알 몇 개를 숟가락에 안착시켜 주어야 하고, 겨우 올라간 밥알들이 떨어지지 않고 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티 안 나게 팔을 잘 잡고 조정해 주어야 하고, 입에 성공적으로 들어가면 '우와! 혼자서도 잘 먹네 우리 효동이?' 하면서 칭찬을 해야 비로소 방긋방긋 웃으며 스스로 '작은 성공'에 우쭐(칭찬을 좋아하는 것까지 엄마랑 똑같다)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도 잠들 때까지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잠에 들고, 소리에 매우 민감하고, 뭐든 스스로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매우 매우 좋아한다. 말이 빠르고 흉내를 잘 내며 흥이 많다;; 스스로 '작은 성공'에 도전하고, 성공했다 싶으면 짝짝 소리를 내며 박수를 친다. 태어나 100일 전까지는 매우 밝은 소머즈 귀 때문에 태어난 지 이틀 되던 날 쿠팡에서 쪽쪽이를 주문해야 했고, 남들보다 낯가림을 한 3개월은 일찍 시작한 덕분에 '100일의 기적'이 아닌 '100일의 기절'을 맛봐야 했지만, 직장인 엄마의 업무 태교로 스스로 도전하고 성공을 맛보고 즐거워하는 천성을 타고났다.


임신을 한 상태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기가 힘들어서 차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두 번이나 접촉사고를 당했다. 한 번은 출근 시각, 한 번은 퇴근 시각. 운전대 바로 앞에 푹신한 멍멍이 인형을 두고 벨트를 했고, 앞뒤 간격을 충분히 띄우고 천천히 운전을 했지만, 가만히 서 있는데 와서 박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어디가 부딪쳤는지, 아픈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기가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이가 덜덜 부딪치고 손발이 달달달 떨렸다. 사고 직후 가족들이 달려와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고, 우리 효동이는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두 번이나 태동검사와 정밀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엄청난 '엄마 껌딱지'다. 태어난 직후에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고, 7~8개월까지는 '엄마 착붙이', '엄마 껌딱지'였다. 매일 보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보고도 잉!!! 앙!!!!! 울어대는 통에 늘 안고 있어야 했고, 가뜩이나 엄마 껌딱지가 점점 더 엄마 본드 수준으로 변해 갔다. 껌딱지는 항상 안겨 있어야 했기에 다른 조리원 동기 아가들보다 뒤집기도, 서기도, 기기도 늦었다. 그렇지만 '늦어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 부부에게 속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아빠의 역할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기와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불러주고, 옛날이야기도 해 주는 것이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하다. 효동이의 경우 엄마가 느끼는 감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울면 그때부터 엄청나게 태동을 하며 엄마를 위로하는 것 같았고, 아빠랑 맛있는 걸 먹고 재밌게 놀 때 가장 태동이 강하고 화발했다. 태어난 직후 "효동아~ 안~녕! 아빠야~" 하는 아빠 목소리에 울음을 그치고 겨우겨우 눈을 뜨고 아빠를 바라보기도 했다. 임신을 하고 싶었던 것도, '내 남편이 이렇게 사랑스럽고 좋은데 남편을 닮은 아기를 낳으면 얼마나 더 예쁠까?'에서 시작됐는데, 아기는 정말 신기하리만큼 별 희한한 걸 다 닮았다. 하품할 때 까르르 소리 나는 것도, 몸은 작은데 손은 길고 큰 것도, 반면 발은 좀 작은 것도, 한 번 본 건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뭔가 맘에 안 들면 약간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삐치는 것도, 발가락 모양도, 한번 하자고 맘먹으면 기어코 하는 것도, 태어나 나에게 온 첫날 한 방울도 안 흘리고 맘마를 먹는 것도, 밥을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것도, 손에 묻은 건 바로바로 닦아야 하는 것도 제 아빠를 꼭 닮았다.


조리원에서 정해준 스튜디오 만삭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가서 찍은 우리만의 만삭사진. 출산 직전 겨우 찍었지만 우리만의 '갬성'이 담겨 더 좋았던 순간.



이제 막 돌이 지난 우리 집 꼬맹이는 키, 몸무게 모두 상위 10% 대를 유지하며 잘 자라고 있다. 작게 태어났지만 쭉쭉 건강하게 잘 먹고, 잘 놀고, 잘자며 크고 있고, 쫑알쫑알 말도 빠른 편이다. 남들 다 뒤집을 때 누워서 뒹굴뒹굴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일어서서 침대 뒤로 기어 올라올 정도로 힘도 세고 잘 기어 다닌다. 여전히 걷진 못하지만 포토제닉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흉내를 잘 내고 기억력이 좋다. 살다 보면 늦을 때도 있고, 빠를 때도 있다.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다. 잘 안 되는 것도 있고, 엄청 잘 될 때도 많다. 지금 임신을 하고 있다면, 점점 느는 몸무게와 볼록해지는 배를 짜증 내 하지 말고 그냥 지금을 즐겨 볼 것을 권해 드린다. 임신 중에 잘 티가 안 나서 많이 느껴보진 못했지만, '임산부 먼저' 배려받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죄책감 없이 당기는 것 뭐든 먹을 수 있는 이 시기를 즐겨 보자. 이제 '나만의 남편'이 아니라 '내 아이의 아빠'가 될 '남편 독차지'의 시간도 길지 않으니(만약 딸이라면 더더욱) 대화도 원 없이 나누고, 알콩달콩 깨도 더 많이 볶아 보자. 추운 겨울 패딩 껴 입고 가까운 동네 한 바퀴도 돌아보자.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이 없다. 왜냐면 우리는 아주 소중한 생명을 몸에 품고 있으니까. 아니면 곧 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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