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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남PD Feb 10. 2021

#25. 8시간 만에 분만! 그리고 출혈

"혹시, 피가 필요하면 저한테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엄마예요..."

양수가 터졌다.


"양수가 터졌어요! 이제 분만 시작할게요. 저희가 힘주는 법을 알려 드릴 거예요. 남편 분은 옆에 같이 계셔도 되고, 커튼 뒤에 있으셔도 돼요."
"같이 분만할게요!"
"자기야, 괜찮겠어? 못 보는 남자들 많대."
"내 딸 낳는 소중한 순간이야. 같이 할게요!"
"네! 그럼 분만 시작 전에 힘주시는 방법 알려 드릴게요. 남편 분은 아내 분 상체를 이렇게 받쳐 올려 주시고, 산모님은 아랫배 쪽으로 힘을 주시는데, 숨을 멈추고 10초간 주실 거예요."


무통 주사를 맞고 눈누난나 휴대폰을 보며 놀던 중, 병원에서 온 문자가 있었다. 문자에는 자연분만을 하는 산모들을 위한 영상이 있었다. 분만이 시작되면 아기를 낳을 때 어떤 자세로 어떻게 힘을 주어야 아기가 쉽게 나올 수 있는지, 이때 주의 사항은 무엇인지, 분만 후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인지,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과정을 거쳐 몇 시간 만에 엄마 품에 안길 수 있는지 등이 안내돼 있었다.


"자, 남편 분께서 이렇게 베개를 산모님 등 뒤에 받쳐 주시고 밀면서 올려 주세요. 자, 한 번 해 보실게요!"
"저기... 교수님은 오늘 못 오시는 거죠?"
"네... 아마도 그러실 것 같아요. 오늘이 주말이라...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이 계셔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네, 그러면 한 번 잘해 볼게요!"
"네, 그럼 자, 한 번 해 보실게요! 하나, 둘, 셋 하면 아까 알려드린 것처럼 상체를 세우시면서 숨을 참고, 얼굴이 아닌 배 쪽으로 힘을 줘 보실게요!"


쿵쾅쿵쾅 쿵쾅쿵쾅!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우리 효동이를 곧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친 듯 떨렸고, 설렜고, 동시에 두려웠다.


"괜찮지, 자기야?"
"응! 드디어 우리 효동이 만나는 거야?"
"응! 내가 계속 옆에 있을게. 나랑 같이 우리 아가 낳자!"
"어! 근데 나 약간... 약간... 눈물이 나오려고 해..."
"나도! 감동적인 순간이다, 그치? 근데, 선생님이 아직 울면 안 된대. 갑자기 심박수가 빨라질 수도 있고, 호흡이 가빠질 수도 있대.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내가 있잖아. 지금 효동이도 엄청 열심히 자기 힘으로 나오려고 노력 중이잖아. 자기가 힘내야 돼. 알지?"
"어! 알았어. 안 무서워. 잘할게! 효동아, 엄마 이제 시작할게?"


남편과 두 손으로 아기를 한번 쓰다듬었다.


'엄마 이제 시작할게. 엄마가 밀면, 효동이도  머리부터 쑤욱 나오는 거야? 나올 때 두 손 예쁘게 모으고, 온몸에 힘 풀고 편안하게 나오면 돼. 그래야 쇄골 뼈 안 다쳐. 알지, 우리 아가? 엄마 이제 정말 시작할게? 잘하자!'


미친 듯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내가 잘해야 우리 아가가 쉽게 나올 수 있어. 그 작은 구멍으로 나오려면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두려울까. 얼마나 아플까... 엄마가 있는 힘껏, 가장 우리 아기 힘들지 않게 아빠랑 힘낼게! 기도했다. 내가 힘들어도 되니까, 우리 아가 어느 한 곳도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기도했다. 분만장 바깥에서는 가족들이 숨죽이며 기도했다. 드디어, 남편 손을 꽉 잡고 이를 악 물고 숨을 들이마신 후 상체를 세우고 10초를 버티며 점점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우리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를 상상하며, 젖 먹던 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네네네! 아주 잘하고 계세요! 자, 힘 빼시고, 누우셨다가, 다시 한번 똑같이 힘을 줍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네, 자... 다시 힘 빼시고 누우셨다가, 다시 올라갔다가 열 셀 동안 힘을 서서히 주세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아~주 잘하고 계세요! 남편 분 상체 더 단단하게 받쳐 주세요! 다시 한번 갑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여보, 잘하고 있어, 조금 더 더더더 조금만 참자, 천천히, 잘하고 있어!"
"어!? 벌써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참았던 숨이 뿜어져 나오면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 하, 하, 학.... 아기가 보여요?"
"네, 보여요! 산모님 아주 잘하고 계세요. 엄마가 잘하고 계셔서, 우리 아기가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요. 아직, 우시면 안 돼요. 조금만 참으세요!"
"여보? 어, 진짜 보여! 머리카락이 보여! 아기새 머리 같아!"
"참을게, 참을게, 나 더 할 수 있어!"


'우리 아가, 잘하고 있구나. 효동아 힘내! 엄마가 도와줄게!'


이를 악! 물었다. 울면 안 돼. 우리 아가가 힘들어. 내가 흥분하면, 아가가 힘들 수 있어. 이를 악 물고 다시 선생님들의 구령에 맞춰 상체를 있는 힘껏 천천히 올리며 가쁜 숨을 참았고, 서서히 강하게 힘을 주었다.


"너무너무 잘하고 계세요! 이제 조금만 더 하시면, 아기 곧 나옵니다."


아기가 금세 머리를 쏙 내밀었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왜 빨리 안 빼주지... 아기가 힘들 텐데...'


아기 이마 정도까지가 나오자 본격적으로 아기를 자궁에서 끄집어내기 위한 분만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 본격적인 과정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언젠가 초음파를 봐주셨던 젊은 여 선생님이셨다.


"자, 다시 한번 힘주실게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조금 더더더더더!"
"읍!!! 하...."
"네, 한 번 더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더더더더더더 조금만 더 힘 준 상태에서 버텨 볼게요. 네, 힘 빼시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힘주겠습니다."


"응애!!!!!! 응애!!!!! 응애애애애애애!!!!!!!!!!!!!"

2.72kg의 작지만 건강하고 예쁜 우리 딸, 효동이가 드디어 세상에 태어났다. 아늑하고, 따듯하고, 둥둥 떠 다니던 엄마 뱃속에서 나오니 엄청나게 눈부신 조명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 너무나 차가운 온도에 응애, 응애 하며 잘도 울었다. 정말 효과음 같은 '응애, 응애애애'!



1년이 돼서야 편집한 효동이 탄생 영상.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 그제야 진정한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던지... 사랑해, 엄마...



뭔가가 쑤우욱! 나오는 느낌이 나면서 반질반질 윤이 나는 우리 효동이가 선생님 손에 이끌려 세상으로 나왔다. 목소리가 참 아주 크고 카랑카랑한 게, 여자애 맞았다. 내가 두 눈을 뜨고 태어나는 순간을 보았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여보, 우리 효동이 태어날 때 영상 좀 잘 찍어줘. 풀샷, 원샷, 투샷, OS, 인서트 다양하게 찍어 줘야 해. 내가 못 찍으니깐, 꼭 잘 찍어줘, 여보!"


분만 전, 남편에게 사이즈를 알려 주며 다양하게 찍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잘 찍어서 우리 아가가 태어나는 순간을 정말 생생하게 잘 편집할 수 있었다. 아빠가 된 순간 내 남편이 했던 말, 탯줄을 자르던 순간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말, 우리 효동이가 아빠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던 순간, 엄마 냄새를 맡고 안간힘을 다해 부신 눈을 뜨던 모습, 가족들을 만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외할머니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려고 힘내던 순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아 준 내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아기는 가족들을 만나고 신생아실로 갔다. 곧 끝날 것 같았던 분만의 마무리가 점점 길어졌다. 진통하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 8시간이 걸렸는데, 마무리가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아기를 낳고 남편은 나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홀로 분만장에 있었다.


"출혈이 좀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어요. 거의 다 끝나 가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기가 나올 때 자궁벽을 긁었다고 했지만, 아기는 손을 모으고 있었을 텐데... 아기를 꺼낼 때 긁히면서 상처가 났던 모양이었다. 1차 마무리를 하고 갔던 의사 선생님이 다시 들어왔고, 꿰맨 자리를 다시 꿰매는 것 같았다. 그 시각.


"남효순 님 어머님이시죠? 지금 출혈이 좀 있으셔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어요."


1년 차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셨지만 우리 엄마는 손녀를 만난 기쁨도 잠시, 출혈이라는 말에 가슴을 졸이며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는 3시간이 더 걸렸다.


"저기.. 선생님!!! 혹시, 혹시라도, 피가 필요하면 저 찾아 주세요. 제가 엄마예요. 수혈해야 하면, 제가 할게요."


지혈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에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던 우리 엄마, 지나가는 선생님을 붙잡고 '제 피를 써 달라'며, '내가 엄마'라고 말했던 우리 엄마. 엄마, 나도 이제야 아주 겨우, 아주 조금 그 맘 알 것 같아요.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전해졌는지, 다행히 겨우 지혈이 됐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나는 빈혈에 약을 먹어야 했더랬다.


병실로 돌아오고 두어 시간이 지나자, 우리 아가가 엄마 품에 왔다. 젖병으로 처음 우유를 먹이는데, 어찌 이리도 당찬지!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원샷하는 우리 딸! 너무 신기해서 보고, 또 봤지만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꼬물꼬물. 너, 진짜 엄청 울었어. 알아? 가로로 눈이 크고 길지만 '무쌍'인 그녀!



"여보, 쿠팡에 쪽쪽이 주문 좀 해 줘요... 왜 이렇게 울지?"
"그러니까... 우리 애만 이렇게 우는 거 같아... 목소리는 진짜 크다..."

아기를 낳은 날부터 '모자동실'을 해야 하는 이 병원, 악명이 높았지만, 어차피 할 거라면 먼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아기를 넙죽 받았지만 정말 이유를 모르게 계속 울어댔더랬다. 너무 멘붕이 와서 부러질 것 같은 다리를 살살 잡고 기저귀를 몇 번을 보고, 우유를 먹여야 하나, 트림을 다시 시켜야 하나, 덥나, 춥나, 그것도 아님 그냥 너무 힘이 든 건가... 태어난 지 이틀 된 날, 우리는 쪽쪽이를 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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