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힘으로 우리 아가 낳을게! 힘내자!
"아기가, 너무 위에 있네요..."
"그런가요? 그래서 그런가... 가진통도 한 번도 없었어요..."
"주말까지 진통이 없으면, 다음 주 월요일에 입원하는 걸로 하시죠."
"네... 입원이라면..?"
"유도분만을 하시게 되는 겁니다."
"아... 유도분만..."
들어는 봤지만, 유도분만을 하게 될 줄이야... 아기가 제 힘으로 나오지 않을 때, 엄마가 촉진제를 맞고 인위적으로 진통을 걸어 아기가 나오도록 하는 출산 방법이다. 어쩐지... 남들은 배 때문에 허리도 아프 대고, 걸을 때도 아프댔는데... 난 너무나 씩씩하게 속만 좀 안 좋았지 두꺼운 옷 입으면 티도 잘 안 났다. 아기가 너무 위에 있으니,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는 상황.
"S야, 나 오늘 유도분만 일정 잡혔어..."
"아, 그래? 아기가 아직 신호가 없구나?"
"어... 유도분만이 뭐야?"
"S 병원 같은 경우에는 오후에 입원을 하면 밤에 준비를 하고, 담날 새벽부터 촉진제를 맞아. 진통이 잘 걸려서 오후에 분만하면 베스트, 진통 안 걸리면 오후 5시쯤 촉진제 중단, 다음날 새벽에 준비하고 다시 시작. 진통 안 걸리고 양수 터지면 수술. 비 그치면 좀 많이 걸어야겠다."
"으악! 진통 다 하고 수술하는 케이스가 그거구나... 유도하기 싫어..."
"아직 시간 있으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오늘부터 조금씩 걸어."
"응! 알았어!!!"
유도라니... 촉진제 실컷 맞고 진통 안 걸릴 수도 있다는 말에 멘붕이 왔다. 의사 친구의 말을 듣고는 무조건 유도분만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계단 오르자!"
"괜찮겠어? 날도 찬데."
"응! S가 좀 걸으래. 계단 오르면 좀 아기가 내려오겠지!"
"그러자!"
"으~ 떨린다! 일단 한번 정도 해 보고 괜찮으면 두 번 오르자!"
우리 집이 14층이니까 두 번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섹섹 거리며 평소 같으면 쑥!쑥! 올랐을 계단을 천천히 배의 움직임에 신경을 써 가며 올랐다.
"자기야! 나 두 번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아냐, 전혀 신호가 없고, 몸도 괜찮아!"
"그러자, 그럼 일단 한 번만 더 가 보자."
임신 전 꾸준히 홈트를 한 게 여기서 빛을 발했다. 너무도 가뿐하게 14층 계단을 세 번 오르고 아주 오래간만에 몸이 가뿐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목요일은 집 근처 산책을 했다. 겨울밤, 운동하는 기분은 꽤나 상쾌했다. 42층 계단을 오르고 나니 배가 사르륵... 좀 더 묵직한 것이 아가가 아래로 좀 내려오는 느낌이 났다.
금요일 아침.
"여보, 잘 다녀와요!"
"응! 좀 더 자. 아침 챙겨 먹고, 무슨 일 있음 전화하고!"
"응. 아침은 나중에 먹을게. 지금 좀 더 자고 싶어~!"
"그래! 이따 보자!"
남편 셔틀을 타고,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잠을 좀 자려고 했는데..!
'헉! 이슬? 이게 이슬인가?'
드디어 이슬이란 걸 보았다. 약간 코처럼 물컹한 것에 피가 섞인...
'앗, 셔틀 탔는데... 어떡하지?'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여보.."
"어! 왜!!!"
"나 이슬이 비치는 것 같아..."
"헉! 그래? 나 내릴까? 내릴게!"
"아냐, 여보! 나 아직까지 전혀 진통이 없어. 일단 출근하고, 이따 오후에 병원 가보지 뭐."
"알았어. 그럼 내가 오후 반차 쓰고 올게!"
남편은 오후 반차를 쓰고 부랴부랴 집으로 왔다. 여전히 평온한 나의 배. 점심을 먹고, 혹시 몰라 샤워를 하고, 짐은 일단 차에 실어둔 채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차로 약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아, 지금 1cm 정도 열렸어요. 아직 진통은 거의 없으신 상태네요."
"아 그래요? 열리긴 열렸어요? 신기하네!"
"네, 근데 아직 10cm가 열려야 해서요. 여기 입원하셔도 되고, 조금 더 진통 있으실 때 오셔도 돼요.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되어요!"
"아,,, 그러면 저는 더 진통 있으면 올게요! 집이 바로 코앞이에요!"
"아 네~ 그러세요, 그럼 오셔서 바로 응급실에서 분만장 연결해 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네! 아우 좀 떨리네요! 하하하!"
"잘하실 거예요~! 진통 없으신 것보단 훨씬 나은 상황이니까요!"
그러고는 철없는 40대 부부, 눈누난나 친정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시는 맛난 저녁을 배 터지게 먹고, 집으로 왔다. 당시 우리의 '최애'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고 있었다.
"아.. 어?"
"왜? 배 아파?"
"어.. 진짜 사르륵! 아프네? 생리통처럼?"
"가자! 병원 가자!"
"아냐, 자기야. 괜찮어 아직. 일단 앱으로 체크 좀 해 보자."
우리 남편은 마음이 급했는지 당장 병원을 가자했고, 진짜 신기하게도 그날 밤 약간의 생리통 같은 진통이 시작됐다. 가진통인지 진진통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절대 먼저 가서 병원에 있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미리 가도 산모만 너무 고생한다는 유튜브를 본 탓에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진통을 체크하는데 점점 더 배가 사르륵 아파오기 시작했다.
"진진통이 시작됐습니다. 입원 짐을 미리 싸 두세요"
'내가 잘못 체크했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샤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화장실로 갔다. 3대 굴욕을 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고, 일단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본 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여보.. 나 힘을 못 주겠어. 응까가 마려운 것 같은데, 힘을 못 주겠어. 아기가 나올까 봐..."
"그럼 힘주지 말고, 바로 병원 가자. 괜찮아,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얼른 가자!"
"아냐... 나 쫌만 더 있어 보고... 자긴 마저 드라마 보고 있어요."
관장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화장실에 앉아 있었지만, 이 진통이란 것이 마치 'x 마려운 것 같기도 하고 생리통 같기도 한' 느낌이라 엄청나게 괴롭다. 그러는 사이 진통은 점점 더 자주 있었고, 급기야 앱은 "진진통입니다. 병원으로 출발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떴다!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오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자기야..... 자기야... 나 배가 너무 아파.... ㅠㅠㅠㅠㅠㅠ"
눈 앞이 하얗게 변했다. 숨이 헐떡거리고 배를 펼 수가 없었다. 남편이 부축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공용문 바로 앞에 세워둔 차까지가 그렇게도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몸을 90도로 접어 차를 탔고, 남편은 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운전을 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30초 만에 분만장으로 올렸다. 휠체어를 타고 분만장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선생님... 배가 너무 아파요!!!"
"아! ooo 님! 오실 줄 알았어요! 마침 마취과 선생님이 바로 옆에 계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옷부터 갈아입으실게요."
옷을 갈아입어야 무통을 맞는데, 옷을 움켜쥐고 몸을 펼 수 없었다. 담당 교수님은 주말이라 없었다. 젊은 여자 선생님들이 매우 빠르게 움직였고, 옷도 갈아입혀 주셨다. 무통 주사를 맞으려면 하반신 마취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무서웠다. 척추에 주사라니!!!
"선생님, 저 좀 살려 주세요!"
"다행히 지금 5cm 열려서 무통 맞으실 수 있어요!"
낮에 만난 산부인과 선생님이 내진을 했고, 마취과 선생님이 들어왔다. 마취과 선생님 손을 와락 잡으며 울었고, 주사를 어떻게 맞았는지도 모르게, (아픈 느낌은 물론 맞는지도 몰랐다) 무통을 맞았다.
자궁 입구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열리면 무통을 맞고 싶어도 맞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5cm일 때 그래프는 아주 살짝살짝 움직이는 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프는 종이 바깥으로 튀어나갈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말해 주고 있었지만, 나와 남편은 수다를 떨며 편안하게 아기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있었다. 무통은 사랑! 정말 다행 중에 다행. 아니 근데, 이렇게 해맑기 있긔야?
아침이 되자, 드디어 자궁 입구가 10cm가 열렸고, 엄마는 밤새 병원에서 기도를 하며 남편과 번갈아 들어와 나의 상태를 체크해 주셨다. 엄마가 느낌이 있었는지, 그날 밤에 전화를 하셨더랬다. 우리가 병원으로 출발할 때 엄마도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엄마 얼굴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울 엄마는 무통도 안 맞고 날 낳았으니까.... 얼마나 아팠을까... ㅠㅠ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
엄마가 걱정하실까 봐 아주 씩씩하게 웃으며 진통을 했지만, 엄마가 너무 감사했고,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10cm 다 열리셨어요! 이제 양수 터지면 분만 들어가겠습니다!"
마지막 내진이 끝나는 순간, 정말 뱃속에서 풍선 터지는 소리가 났다.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