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019년 4월 18일. 우리 집에는 내 동생과 제부를 꼭 빼닮은 기저귀 모델처럼 생긴 조카가 태어났다.
여자 아이처럼 예쁘장한 미모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나의 사랑스러운 조카, '광복이'. (사진: @awesomethesoy)
마르고 체구가 작은 내 동생의 뱃속에서 빙그르르 돌지 못하고 역아로 자랐던 우리 집 복덩이 조카 '광복이'는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어머머!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니? 인형이야,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쑥쑥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다.
"여보, 근데 확실히 소이네 보니까 임신하고 애기 생기니까 뭘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많다, 그치?"
"그러게! 우리가 행복한 거야. 우린 고기 궈 먹으러도 맘대로 갈 수 있고, 여행도 맘대로 갈 수 있잖아."
"맞아. 그래서 말인데, 5월 연휴에 샌드위치 돌아가면서 쓰라는데, 자기도 쓸 수 있어?"
"응, 우리도 쓰래. 여행 갈까?"
"응응! 멀리 가긴 그렇고, 여름휴가로 또 엄마, 아빠랑 하와이 갈 거니까. 그때 자기가 말했던 데, 어디지? 베트남?"
"아, 푸꾸옥? 그래. 그럼 이번엔 짧게 푸꾸옥이나 다녀오자. 여름에 하와이 가면 돈 많이 쓸 거니까. 이번엔 걍 베트남으로!"
그렇게 우리는 5월, 부처님 오신 날과 근로자의 날을 끼워 베트남 푸꾸옥 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한 하늘과 공기와 쾌적함을 만끽하며, 간만에 쨍쨍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면 참 너무나 예쁜 곳. 하지만 서비스 질과 수영장 관리, 그리고 식사의 수준이 너무나 받쳐 주지 못했던 '뷰'만 예뻤던 숙소.
하와이로의 여름휴가를 앞두고 우리는 비교적 비싸지 않은 숙소를 잡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 쾌적한 잠자리와 조식이 중요한 우리에게 이 리조트 조식은 사실 상상 이하였다. 숙소를 바꾸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으나, 어차피 이미 다 비용을 지불했기에 계속 머물기로 했다.
"자기야. 나 이 맥주 마시고 싶어."
"그래! 이름이 333이야?"
"응. 나 예전에 베트남 있을 때 많이 마셨던 맥준데, 맛있어! 먹어 볼래?"
"응응! 오~ 진짜 완전 맛있는데? 적당히 톡 쏘는 게 엄청 시원해!"
"그렇지? ㅎㅎㅎ 옛날 생각나네. 나 그때 베트남에서 진짜 재밌는 일 많았어."
남편의 예전 회사 지역 전문가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매일 푸꾸옥 대표 맥주 '333 맥주'를 마셨다. 어찌나 시원하던지. 술을 즐기지 않은 우리 부부는 매일 저녁 333 맥주를 마시며, 5월에도 38도에 육박하는 햇살 아래에서 몸을 까맣게 태우기를 즐겼다.
"자기야! 그만 태워. 안 되겠다."
"아 왜~ 나 더 태울 거야. 좀 더 까매야 예뻐~!"
"안돼. 자기 얼굴 엄청 빨개. 그러다 쓰러져. 안돼."
"치... 하나도 안 힘들어. 엎드려 자서 그래. 나 쫌만 더 태움 안돼?"
"안돼. 지금은 안돼. 그럼 좀 쉬고 와. 안에 에어컨 있는 데서."
"치... 알았어."
남편이 너무도 강력하게 더 이상 태닝은 안된다며 방 안으로 들어갈 것을 종용했다.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돌아왔는데, 아주 숨이 가빴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정말 시뻘갰고, 약간의 현기증도 느꼈다. 핑...! 잠시만 쉰다는 게 그렇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깜빡, 아주 깊게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을 넘게 잠들었다 다시 나오니 남편의 표정이 상기돼 있었다.
"자기야. 나 왜 안 깨웠어. 나 한 시간이나 잤어. 시간 아까워..."
"하도 안 나오길래 가 보니까 자기 너무 곤히 자고 있더라고. 그래서 안 깨웠어. 것보다 말이야! 이것 좀 봐봐!"
"이게 뭐야?"
"여기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푸꾸옥 대표 리조트라는데, 여기 컨셉이 아주 재밌어! 우리 오늘 저녁에 여기 해산물 뷔페 가자!"
"정말? 우와!!! 역시 울 여보 센스 짱이야! 여기 사진으로만 봐도 장난 아니다!"
"그치. 딱 우리 스타일인데. 우리 이번에 너무 소소한 여행을 선택했나 봐."
내가 숙면을 취하는 동안 센스 하나로 37년을 버텨온 나를 114일 만에 결혼의 문으로 골인시킨 나의 남편이 아주 멋진 리조트를 하나 찾아냈다. 대학교 컨셉의 리조트인데, 에메랄드 베이 비치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고, 리조트 각 동은 대학의 학과를 컨셉으로 지어졌다. 세계적 인테리어 건축가 겸 디자이너 빌 벤슬리(Bill Bensley)가 디자인한 이 리조트에서 우리는 아쉬운 대로 석식 뷔페만 경험해 보기로 했다.
"우와.... 으리으리하다. 하와이에서 만큼 좋은 숙소다! 너어어무 좋다, 여기."
"그러게. 좀 더 자세히 알아볼걸..."
"응. 평소 같았음 바로 여기로 오는 건데... 하와이 간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
몰디브, 이태리 소렌토와 마르모라타, 발리와 마우이.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인상적인 호텔을 선택했던 우리가 너무나 안일한 선택을 했다며, 후회를 할 무렵. 남편은 2박 비용을 버리고 그 리조트에서 2박을 하자고 했다. 한두 달 후 여름휴가에서 쓸 비용으로 심적인 부담이 컸지만 당시 직항도 없던 푸꾸옥에 다시 올 일 있겠냐며 우리는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왜 처음부터 이 숙소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볼거리, 놀거리가 너무 많아 1분 1초가 아쉬웠던 푸꾸옥 여행.
그렇게 우리는 매일 베트남 대표 맥주를 마시고, 엄청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기 위해 매일 저녁 짐에서 운동을 했다. 헉헉 거리며 트레드밀 위를 달리기도 했다. 학교 운동장처럼 생긴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정말 숨 쉴 틈 없는 강행군을 했다. 마치 다음번에 놀지 못할 사람들처럼!
"엄마, 나 출근 중!"
"어! 운전 조심하고. 근데 정서방 맞은 홍역 예방 주사, 넌 안 맞았니? 너 지금 임신 준비 중인데 맞아도 돼? 너네 임신 한건 아니지?"
"에이... 아니야. 나 지금 생리 중이야, 엄마. 그리고 선영이가 가임 여성은 절대 맞으면 안 된대서, 난 안 맞았지. 걱정 마여, 남편은 맞아도 애기 갖는 데 문젠 없대요. 근데 엄마, 꿈꿨어? 임신은 왜?"
"아니, 그냥. 그 주사 막 맞아도 되나 싶어서."
"아냐, 나 그때 생리 중이었거든. 걱정 말아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와 출근하는 날, 이상하게 엄마가 임신 아니냐고 물으셨다. 태몽을 꾸신 것도 아닌데, 엄마는 뜬금없이 나에게 임신 아니냐고 물으셨고, 여행 내내 템포와 생리대를 번갈아 써 가며 '생리인 듯 생리 아닌' 듯한 나날을 보낸 나는 '절대 지금 임신 아님'이라고 답했다.
그날 저녁.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항상 화장실 벽장 속에 가득한 '임테기'와 '배테기'가 눈에 들어왔다.
"심심한데, 저거나 해 볼까?"
집에 돌아다니는 임신 테스트기를 뜯어서 테스트를 했다.
어라? 두 줄이다! 사실 너무 실감이 안 나서, 임신 테스트기를 네 번이나 했더랬다.
'뭐야, 이게... 너무 오래돼서 고장 났나?'
언젠가 임테기 두 줄을 보면 눈물을 펑펑 쏟을 거란 상상을 했지만, 너무나 의외여서 눈물보다는 의심이 앞섰다. 시험관을 하는 내내 불빛 아래 매직아이를 하듯 실눈을 뜨고 바라보며 "두 줄이지? 두 줄 맞지? 두 줄이야..." 하며 그렇게 바라던 두 줄이, 연하게만이라도 두 줄이었으면 했던 그 임테기가 테스트를 하자마자 진한 두 줄이 되어 나타났다.
'어?? 어???? 임... 신인가??'
'아닐지도 몰라... 흥분하지마!' 하며 내 심장을 안정시켰지만 줏대없이 내 심장은 심하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여보! 나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