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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Jan 06. 2018

3D 뽀뽀

ep22.

그리지_쓰니랑




내 앞에 앉아있던 그는 갑자기 양쪽 손바닥을 밑에만 붙여서 부채처럼 핀 다음 턱받침을 만들었다. 오른쪽으로 살짝 왼쪽으로 살짝, 손으로 만든 턱받침 사이로 꼭 총을  조준하듯 한쪽 눈을 살짝 찡긋한 채 나와 자기 얼굴 사이에 손 턱받침을 맞췄다.


그리고 앞으로 쭈욱 내민 입술을 오므려서 “슈 우우 욱” 주변의 공기를 빨아드리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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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은 있지만 뭘 보고 있는지는 모르면서 멍하게 아무 생각도 안 하지만 아무 생각이나 하고 있는 그런 상태.


흔히 ‘멍 때리는 상황’이라고 하는 그런 상태에 나는 자주 빠진다.


특별히 어떤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순 있지만 일단 나의 멍 때리는 순간은 그렇다.


일을 하는 순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자리라든지, 신나게 수다를 떠는 상황, 집중을 해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상황 등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쉽게 멍 때리는 나만의 세계 속으로 빠지지 않는다.


보통 자주 만나는, 특히 그냥 가만있어도 좋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그와의 자리에서는 가끔씩 멍을 때린다. 내가 그와 있을 때 멍을 때리는 상황은 만나서 조용히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집중하고 있는 그런 순간에 더욱더 쉽게 발생한다.



그때도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 앞에 앉아있던 그는 갑자기 양쪽 손바닥을 밑에만 붙여서 부채처럼 핀 다음 턱받침을 만들었다. 오른쪽으로 살짝 왼쪽으로 살짝, 손으로 만든 턱받침 사이로 꼭 총을 조준하듯 한쪽 눈을 살짝 찡긋한 채 나와 자기 얼굴 사이에 손 턱받침을 맞췄다.


그리고 앞으로 쭈욱 내민 입술을 오므려서 “슈 우우 욱” 주변의 공기를 빨아드리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뭐 하는 거지’, ‘귀엽네’, ‘오동통한 입술도 귀엽고, 찡긋한 눈매도 귀엽네’, ‘아주 귀여운 표정이야’


그의 잔망스러운 행동에 뭐 하는 걸까 생각 들면서도 쉽게 멍 때림을 끝내고 물어보진 않았다. 그냥 귀엽게 뭔가를 하고 있는 그를 멍하게 보고만 있었다.



“뽀뽀하고 싶은데? 이렇게 얼굴을 잡아가지고 휴우우슈우욱”



내 볼을 감싸는 포즈였구나!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그의 손 턱받침 너머로 보이는 오므려서 쑤욱 내민 입술 사이로 빨아들여지는 공기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뭐 하는 거야, 아 증말 웃겨”


“뽀뽀하는 거야, 이렇게 잡아가지고 입술을 휴우우우슈우우웁”



3D 뽀뽀라니. 눈으로 받은 그의 3D 뽀뽀가 이렇게 좋다니!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3D 뽀뽀를 받는 기분이란. 눈으로 보고 상상만으로 이미 입술이 촉촉해진 그런 가슴 설레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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