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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Feb 09. 2018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연락 받는 남자

ep24.

그리지_쓰니랑



내가 연락을 했을 때, 그는 단 한 번도 연락 안 된 적이 없었다. 아직 길지 않은 연애 기간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언제나 빠르게 내 연락에 답했다. 거의 즉시. 매 번을.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연락을 받는 남자란. 꽤나 사랑스럽다.


나는 이 사실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니 있는 줄 알았다. 어느 순간 그 고마움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인식하기 전에는.




“여보세요”


“웅~ 뭐해?”


“나 지금 샤워해~”


샤워? 물로 온 몸을 씻는 그런 샤워 말하는 건가? 그런데 전화를 어떻게 받지?


“샤워한다고?”


“응”


“그런데 어떻게 전화를 받아?”


“그냥 손만 닦고 받은 건데?”


“왜 샤워 중에 전화를 받아”


“너한테 전화 왔으니까”


“아이참. 다음부터 씻을 때는 전화받지 마”


“알았어. 다 씻고 전화할게.”




이 일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날은 정오가 다 되어가는 휴일의 아침이었다. 지난밤에 온 그의 카톡에 미쳐 답하지 못한 채 잠든 나는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카톡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뭐 하고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지금 나 샤워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다시 카톡을 보냈다.



“지금 샤워하고 있다고?”


“웅”


“그런데 어떻게 카톡을 해?”


“그냥 조심조심히 해”



이게 무슨 말이야. 다 씻고 연락하라는 카톡을 하고 나서도 그는 ‘알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연락을 끊었다. 잠시 후 샤워를 마쳤다는 카톡을 보낸 그에게 나는 전화를 걸었다.



“왜 카톡을 하면서 씻어. 그냥 씻고 온다고 하면 되잖아. 내가 저번에 말했지 씻을 때 연락 안 해도 된다고!”



통화음이 지나고 그의 목소리 들리기도 전에 나는 살짝 짜증 나는 심정을 목소리에 담아 그에게 쏘아 부쳤다. 내 말에 그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냥 끊기 좀 그래서 그랬지. 그런데 씻으면서 카톡 할 수 있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듯이 말하는 그의 말에 방금 전 몰려왔던 짜증이 괜히 미안해졌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는데 어디서 끊기가 좀 그랬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씻는 중에 연락을 했으면 다 씻고 연락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왜 씻을 때 연락을 받아. 하루 종일 씻는 것도 아니고 씻고 나서 연락하면 되는 건데!”


한번 낸 짜증은 계속 커졌다.



“빨리 씻어야 오늘 빨리 만나지.”


내 짜증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날 달래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마음과

달리 입에서는 한숨 쉬듯이 나쁜 말만이 흘러나왔다.


“하 참 진짜 짜증나”


“알았어. 빨리 갈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폰을 귀에서 떼 손가락으로 그냥 '종료'를 눌러버렸다. ‘빨리 씻어야 빨리 만나지’라는 말이 왜 이렇게 다정한 건지.!


짜증이 난 건 아니었다. 모든 짜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의 다정함에 민망함과 미안함 마음이 확 들면서 전화를 끊어버리게 된 것 같았다.


만나면 잘해줘야지. 다짐을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정말 단 한 번도 내 연락에 늦게 답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사실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니 있는 줄 알았다. 익숙함에 당연해진 고마움을 깨달은 난 얼른 준비를 하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흔한 내용의 카톡 하나라도, 아무 의미 없는 ‘ㅋㅋㅋ’ 거리는 답변에도, 잘 때도, 일어날 때도, 언제나 먼저 연락해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의 연락을 우선시 여겨주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내 연락을 받는 남자란. 정말 사랑스럽다.



그리지_쓰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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